유럽법회설법
(1998년 5월 30~31일 푸랑크푸르트에서)
※제자: ‘삼점일선(三點一線)’의 생각이 나로 하여금 아주 빨리 잡념을 배출하게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보아하니 당신은 책을 보지 않았다. 우리 『전법륜(轉法輪)』이란 그 책은 당신에게 일체 문제, 특히 초급적인 문제를 해답해 줄 수 있다. ‘삼점일선’은 도가의 연공에서 채용하는 방법이다. 지금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므로 이 동작과 방법은 모두 가지면 안 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히 잡념을 배제하는데 도달하게 할 수 없다. 인위적으로 어떤 방법을 취하여 입정(入靜)에 도달하도록 하려는 것은 모두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영단묘약이 없다.
진정하게 입정할 수 있게 하려면 다만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바로 당신이 끊임없이 대법 중에서 자신을 제고하고 각종 집착심을 제거해야 한다. 당신의 집착심이 적어질수록, 당신은 당신이 그 곳에 앉았을 적에 마음이 갈수록 청정(淸淨)해지는 것을 발견할 것이고, 최후에 당신이 원만에 가까웠을 때 당신은 어떤 집착심도 다 없는가 하면, 당신이 그곳에 앉기만 하면 곧 定(띵)에 드는 것을 발견할 것인데 그것은 이렇게 제고해 올라온 것이다. 과거 기타 종교 중에서 또는 기타 고대 그 심산 속에서 수련한 것은, 그는 副元神(푸왠선)수련으로서, 主元神(주왠선)으로 하여금 마비되게 하였다. 때문에 그는 속인사회 중의 사람이 수련하도록 할 수 없으며 더욱이 主元神(주왠선)을 수련시킬 수 없다. 중국의 일부 도가 수련인은 술을 많이 마셔야 하는데, 당신들은 이걸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술 주전자를 들고 술을 마셔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다가 나중에 그곳에 누워 잠이 들면 3일, 5일, 일주일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왜 이렇게 하는가? 그는 곧 主元神(주왠선)을 마비시키고 副元神(푸왠선)을 수련시키는 것을 채택하였다. 당신이 보건대 그는 거기에 누워서 잠들었고 취했지만 그의 副元神(푸왠선)은 나갔다. 이런 신선들은 역사상에 많고도 많은 신기한 기적을 남겨 사람들은 아주 위대하고 대단하다고 여겼다. 나는 그 사람이 아직도 아주 가련하다고 여긴다. 그는 여전히 내세 중에 윤회전세(輪迴轉世)하게 되는데 나는 그가 또 전생되어 나온 것을 보았다. 바로 이러하다.
여러분은 꼭 기억해 두어야 한다. 수련은 반드시 전일(專一)해야 하는 것으로, 어떤 다른 공법의 생각도 하지 말라. 갖고 온다면 당신을 교란할 것이며, 당신의 공을 불순하게 할 것이다. 당신은 되돌아 갈 수 없고 수련하여 올라갈 수 없으며 원만할 방법이 없다. 또 인위적으로 무슨 방법을 취하고 지름길을 걸어 자신을 입정(入靜)하게 하거나 제고해 올라오게 하려고 하지 말라. 그럼 수련에 문제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당신은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당신의 이 마음을 제고해야 한다. 뭇 신들은 모두 당신들을 보고 있다. 절대 무슨 다른 방법을 취하지 말라. 모두 당신의 마음을 제고함에 이르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이 제고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동작은 원만을 이루는 보조적인 수단이지 절대로 진정하게 제고하는 원인이 아니다. 바로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오면 당신의 공도 올라오게 된다. 다시 말해서 동작수법에서 공으로 하여금 그의 연련(演煉)을 가속하여 제고해 올라오게 한다. 만약 당신의 心性(씬씽)이 요만큼 높은데 당신이 나는 연련(演煉)을 가속하여 그에게 더욱 높게끔 하려고 생각한다면 높일 수 없다. 단지 당신 心性(씬씽)의 위치에 도달할 수 있을 뿐이다. 때문에 心性(씬씽)제고를 첫자리에 놓는다. 즉 사람이 얼마나 높은 표준이 있으면 공이 그만큼 높은데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이다. 어떤 수련방법을 막론하고 당신은 모두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우주의 절대적인 진리로서, 어떤 종교 또는 어떤 수련방법도 모두 따라야 한다.
※ 제자: 집에 있는 애완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사부: ‘총애’란 바로 사랑이고 바로 좋아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좋아하며, 그것에 집착하고 있다는, 이 뜻이 아닌가? 때문에 당신이 이 문제를 제출할 때에 당신은 이미 당신의 이 집착심도 써넣었다. 우리가 생물을 애호하고 대자연 중에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일체를 애호하는 이것에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어떠한 일이든 모두 지나치면 안 되는데, 정말로 지나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이야말로 이 지구상의 가장 고급적이며 가장 완미(完美)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신 역시 이렇게 보고 있다. 그러나 모든 동물(대소를 막론하고), 식물과 모든 생물은 모두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만약 사람이 없다면 이러한 것들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 지역, 어떤 나라든 동물에 대한 총애가 이미 극단으로 나아갔으며, 동물에 대한 애호가 사람을 초월하였다.
나는 방금 신이 사람을 만들고 이 지구를 만든 것은 사람이 생존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했다. 이런 생물 역시 사람이 감상하도록 공급한 것이고, 사람이 놀도록 공급한 것이며, 사람이 생존하도록 공급한 것이고, 사람에게 음식물을 공급해 주는 동시에 지구를 번영시키는 것으로서, 일체가 모두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다. 반대로, 사람이 동물보다 못하다면 이것은 천리(天理)를 위반하는 것과 같다. 물론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이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비를 말하는데 일체에 대한 자비이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이 자비를 초월하여 한 가지 집착을 생기게 해서는 안 되며, 지나치게 이런 것을 애호하면 안 된다. 지나치게 어떠어떠한 것을 강조한다면 이는 옳지 않다. 근대부터, 특히는 유럽에서, 나는 미국 역시 이러한 것을 발견하였는데, 사람들은 그 개를 지나치게 사랑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신이 사람에게 개를 만들어줌은 개에게 사람의 집을 봐주도록 한 것이지, 절대 그 개로 하여금 당신의 아들이 되게 하거나 또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친구가 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절대 개와 동등할 수 없다. 때문에 당신은 어떠한 일이든 모두 지나쳐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은 부처로 수련될 수 있지만 동물은 어떻게 해도 될 수 없고, 사람은 신으로 수련될 수 있지만 동물은 어떻게 해도 안 되며, 사람은 천국세계로 갈 수 있지만 동물은 어떻게 해도 안 된다. 동물이 가려면 그것이 내세에 사람으로 전생하여 다시 수련해야만 비로소 갈 수 있다. 내가 생각하건대 나는 방금 이 문제를 명백히 말하였다.
※제자: 이미 돌아가신 부모와 친구가 저의 수련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매 한 사람, 그가 출생할 때부터 일생은 다 배치된 것이다. 그가 어느 날에 좋은 일이 있고 어느 날에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며, 그가 성장한 다음에 어느 학교에 가고 어느 대학에 가며, 졸업한 후에 어떤 사업을 하는가는 사실 내가 보건대 모두 정해져 있다. 사람의 노력 역시 그의 필연적인 것이 성사시킨 것이다. 사람 자신이 자신의 일생을 좌우지할 수 있는가? 당신이 무엇을 하려한다 해서 당신이 해낼 수 있는가? 당신이 대통령이 되려한다 해서 당신이 될 수 있는가? 안 된다.
실천 중에서 우리 사람은 모두 자신이 해낼 수 없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사회가 유도하는 것과 이 과학은 또 당신으로 하여금 분투하도록 한다. 때문에 일부 사람은 그가 어떤 것을 얻었을 경우, 마치 분투하여 얻어온 것으로 여긴다. 사실 당신이 너무 집착할 필요 없이 여전히 정상적으로 사업하고 생활을 해도 당신은 여전히 얻을 수 있다. 당신의 분투 역시 단지 당신이 이것을 얻게 되는 필연적인 것이 변했을 뿐인데, 사람 자신이 그것을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전체 사회가 모두 이처럼 이른바 노력을 하고, 이처럼 고생스럽게 분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가 모두 이런 식으로 밀어가고 있기 때문에 당신도 이렇게 해야만 당신이 얻어야 할 것을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이는 한 사람의 변화가 아니라 전체 사회의 변화이다. 하지만 사람 자신은 자신의 일생을 개변할 수 없다.
그럼 당신은 자신의 인생마저도 다 개변하지 못하는데 당신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일생을 개변시킬 수 있겠는가? 개변시키지 못한다. 그럼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나의 친척과 친구, 나의 자녀를 나는 권력으로, 혹은 금전으로 그가 행복하게 하며 잘살도록 하겠다고 한다. 사실은,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아마 당신의 아들딸이, 돈이 있는 당신의 집으로 전생됨은 그 역시 그의 전세의 복이다. 만약 그에게 이 복이 없다면 그 역시 물려받지 못하며, 그 역시 당신의 노력을 현실로 되게 할 수 없는바, 틀림없이 이러하다. 그는 혹시 당신의 지나친 노력 때문에 그의 생명이 아주 짧게 변할 수 있으므로 당신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는가 하면, 혹은 당신의 노력으로 당신이 그에게 많은 재산을 남겨준다 해도 그가 도박을 하거나 주식투자로 단번에 다 잃어버릴 수도 있는가 하면, 또는 다른 무엇으로 돈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만약 그가 이 복이 없다면 그는 물려받을 수가 없다. 어떤 부모는 자녀에게 얼마나 되는 돈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잘 살고 행복하게 지내도록 하려고 한다. 사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그것은 그리 간단하고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이러한 복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다. 만약 그들에게 이런 복이 없다면 절대 안 된다. 당신이 그에게 아무리 많은 돈을 줄지라도 그는 또 큰 병이 생겨 이런 돈을 모두 치료비로 변해버리게 할 수도 있다. 인간세상은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람은 보아내지 못하지만 나는 아주 선명하게 본다.
그럼 어떤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수련을 통해 그들로 하여금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 수련인의 눈에는 행복의 함의가 달라진다. 속인중의 행복은, 사실 그에게는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그는 다만 금전으로 바꾸어 온 한 가지 잠시간의 안일(安逸)로서 그것은 영원할 수 없다. 당신이 그로 하여금 진정으로 영원토록 행복하게 하며, 영원토록 사람의 몸을 유지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수련인이 바라는 것으로서, 영원히 고생을 겪지 않는 것이다. 천국세계에는 고통이 없다. 하지만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당신 자신이 아직 수련되지 못했는데, 당신이 또 다른 사람에게 이처럼 많이 주려고 한다면, 단지 한 가지 집착일 수밖에 없다. 집착이 있으면 그것은 또 당신의 수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마음을 내려놓고 수련하는 것이지 또 무엇이나 다 상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평상시와 같이 속인 중에서 생존할 수 있고 가족들과 같이 있을 수 있다.
나는 당신이 이 한 점을 해낼 수 있도록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남겨주었으며 가정을 잘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수련을 통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행복해지게 하자면 오직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바로 그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래에 그 역시 제도를 받게 되는데 당신보다도 수련을 더 잘할지도 모르는바, 또 당신이 그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럼 어떤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나는 나의 수련을 통하여, 나는 나의 특수한 재간으로, 나의 신통으로 그를 행복해지게 할 수 있는가? 안 된다. 만약 그가 업력이 아주 크면 당신은 그를 대신하여 소업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당신도 수련하여 원만(圓滿)에 이를 수 없다.
나는 불교에 이런 말이 있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석가모니의 고향 도시가 홍수에 잠겨 온 도시 사람들이 다 죽게 되었다. 나중에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 한 제자가 그의 신통을 펼쳐 온 도시 사람들을 모두 손에 잡아 쥐었다. 저녁이 되어 잠을 잘 때 이 사람들은 모두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이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손에 있으니 죽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 큰물은 역시 발생했고 도시는 모두 잠겼다. 이튿날 아침, 그는 이제는 문제가 없겠구나, 도시는 비록 물에 잠겼으나 사람은 문제가 없겠다고 말했다. 이때 그가 손을 펴보니 온 도시 사람들이 모두 재가 되어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수련층차가 제한되어 있어, 그보다 더욱 미시적이고 더욱 방대한 신의 존재를 그로서는 알지도,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말한 그 분자와 대분자, 소분자 사이의 관계처럼 그는 다만 그의 이 경지 중에서만 신통을 펼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그의 경지를 초월한 신이 무엇을 하는지 그는 여전히 모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제각각 제 명(命)이 있게 마련이므로 수련중의 사람은 마음을 단지 수련에만 두고 정진할 수밖에 없다.
그럼 또 어떤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만약 내가 수련하여 원만에 이른다면 나는 되돌아와 꼭 나의 육친을 제도하겠다고. 당신이 지금 이런 생각이 있다면 나는 당신이 집착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당신이 늘 이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곧 강대한 집착이다. 거의 원만에 이르러 이런 집착이 있다면 원만을 이룰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원만에 이르렀고, 당신이 대단히 큰 신, 혹은 대단히 큰 부처로 수련되었다면 당신은 이런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 당신은 정말 있다. 당신이 당신의 육친을 제도함은 물론, 당신이 지구를 손에 쥐는 것 역시 식은 죽 먹기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마치 내가 방금 말한 이치와 마찬가지로서 이러한 일을 함부로 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당신이 당신의 사람을 제도하려 하고 당신이 그를 제도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방법을 생각하여 그로 하여금 제고하게 해야 한다. 당신이 그를 제고하도록 하지 못하고서 그를 천국으로 가게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절대 안 된다. 천국세계의 일체 것은 모두 더욱 미시적인 물질입자로 조성된 것이라 표면상에 아주 반들반들하고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빛을 뿌린다. 왜냐하면 물질이 더욱 미시적일수록 그의 에너지가 더욱 크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땅위의 것을 갖다놓는다면 그것은 가장 성결한 전당(殿堂)에 쓰레기를 갖다놓은 것과 같으므로 그것은 안 된다. 당신은 반드시 이 쓰레기로 하여금 가장 좋은 것, 신선한 것으로 변하게 해야만 비로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사람을 책임지려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좋게 변하도록 해야만 책임질 수 있다.
여러분 알다시피 예수가 속인 중에 와서 사람을 제도할 때, 그는 사람을 위하여 고생을 겪었으며 그는 최후에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당신들은 이것이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 당신들은 다만 유태종교가 이런 좋지 않은 일을 하였다는 것만 알 뿐이다. 사실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 그것에는 별개의 요소가 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일 당신들이 방금 말한 이 뜻과 같다면 그 예수는 그처럼 큰 능력이 있고 백인들의 천주(天主)가 그의 아버지인데, 그렇다면 그가 하고자 하면 무엇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또 그렇게 큰 힘을 들여 지상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일을 하게 하는가 하면, 사람들에게 진리를 알려주고 또 사람을 대신하여 그렇게 많은 고통을 감당하는가 하면, 바로 또 다른 종교의 압제와 파괴를 받기도 했는데, 그가 구태여 이렇게 할 필요가 있는가? 다시 말해서, 그에게 비록 그처럼 큰 능력이 있을지라도 그 역시 사람의 마음이 좋아져야만 비로소 이 사람을 제도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자리에 앉은 당신들, 당신들 어느 사람이, 자신의 心性(씬씽)으로 하여금 수련 중에서 원만에 도달하도록 하지 못한다면 나 역시 방법이 없다. 나는 당신에게 법리를 말해줄 수 있고, 당신을 도와 공을 연화(演化)할 수 있으며, 또 당신을 대신하여 일부분 업을 없애버릴 수 있고, 또 당신을 보호할 수 있으며, 또 당신에게 당신이 모르는 많고 많은, 원만 중과 원만 후에 필요한 일체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의 그 한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고, 그 마음이 제고되지 않으면, 이 일체는 모두 인정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한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면 부처 역시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당신을 제고시킬 방법이 없다고 한 것은, 이 사람이 나쁘게 변했는데 그에 대하여 속수무책이라는 말이 아니다. 어찌 속수무책이겠는가? 그를 아래로 떨어뜨리거나, 없애버리거나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신은 자비(慈悲)하기에, 예수가 말한 그 “사랑하는 마음”은 절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이 아니다. 이는 예수가 한 말을 모욕하고, 예수를 모욕하고, 신을 모욕하는 것과 같다. 사람의 사랑을 예수가 말한 그런 사랑,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주하다니. 예수가 말한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자비(慈悲)”이다. 다만 그는 서양 사람의 언어로 말했는데 당시 서양문화에는 “자비”라는 이런 개념이 없었으며 “자비”라는 이런 낱말이 없었다. 이것은 이 부동한 시기, 부동한 지역의 문화적인 차이로 말미암아 조성된 것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 문제에 대하여 나는 이미 아주 전면적으로 말했다. 바로 이러한 일인즉, 속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수련 중에서 어떻게 대할 것인가, 최후에 당신이 수련되면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제자: 우리들은 어떤 조건을 구비해야만 법을 널리 선전할 수 있습니까?
사부: 어제 나는 각 지역에서 대법 일을 하는 수련생들이 함께 모여 교류하는 것을 들었는데 나는 정말로 아주 기쁘다. 첫째로, 나는 법에 대한 당신들의 그 확고한 마음, 당신들 자신에 대해 책임지려는 그 마음을 보았다. 동시에 당신들은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하려하고 있는데 나는 참으로 당신들을 위해 기뻐하고 있다. 교류를 통하여 당신들은 아마 부동한 지역의 상황에 근거하여 점차적으로 당신들의 경험을 풍부하게 할 것이다. 어떤 조건을 구비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건대, 어떤 조건이라고는 전혀 없다. 또 어떤 물질적인 조건 또는 기타 권력 방면의 조건을 구비할 수도 없다. 단지 한 가지가 있다. 당신이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열정을 가지고 하면 당신은 할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이든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점을 잘 파악해야 한다. 즉 당신은 사람에게 너무 높게 말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내가 오늘 한 이런 말을 포함하여 현재 당신의 법에 대한 인식을 그에게 말한다면 그는 곧 겁을 먹을 것이다.
당신들은 느끼지 못하는데, 당신들은 수련 중에서 점차적으로 제고하여 이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처럼 높은 이치를 인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속인이라, 그의 사상은 아직도 속인 중에서 어떻게 돈을 벌겠는가, 어떻게 이런 사업을 하겠는가, 어떻게 사장의 환심을 사겠는가 하는 따위의 이러한 것들이 그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첫자리에 놓인다. 당신이 이처럼 높은 것을 말하면 그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당신이 그에게 가장 간단한 이 글자의 표면적인 이치를 말해주면, 내가 생각하건대 연분이 있는 사람은 듣기만 해도 그는 배우려할 것이고, 연분이 없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그에게 어떻게 권해도 그는 역시 배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점이 있다. 여러분은 절대 억지로 사람을 끌어당기지 말라. 남이 배우려하지 않는데도 남에게 배우라고 하거나, 당신은 나의 친구이고 당신은 나의 육친이기 때문에 배우지 않으면 안 되며 꼭 배워야 한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는 여기에 와서 또 좋지 않은 말을 할 것이며 나쁜 역할을 할 것이다. 때문에 여러분은 반드시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제자: 어떠한 상황에서 우리 法輪功(파룬궁)이 사람과 지구의 발전에 대하여 기독교와 일치할 수 있습니까?
사부: 물론 신수련생인지라, 나는 여러분이 법 공부가 깊지 않다고 탓하지 않는다. 내가 말한 것은 우주의 이치일 뿐만 아니라, 우주의 위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우주의 중생, 부동한 층차의 신과 사람에게 생명환경을 창립해 줄 수 있는 이런 대법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기독교와 일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마치 아주 화려하고 웅장한 대궁전이 어떻게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집과 같을 수 있는가 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서, 함께 논의할 수 없다. 이 우주대법, 그는 부동한 층차 중에서 부동한 층차 중의 생명에게 생존환경과 조건을 창립해 주었다. 다시 말해서 그 층차 중의 생명은 그 한 층의 이치에 부합되고 그 한 층 우주의 법에 부합되어야만 비로소 거기에서 생존할 수 있다.
더 간단히 말하면 바로 당신들이 장래에 그런 환경 중에서 생존하고자 한다면, 당신들이 그만큼 높이 수련될 수 있는가에 달렸다. 당시 예수가 말한 이치는, 사회중의 속인이 어떻게 수련되어 그의 세계로 가는가 하는 이치였다. 그의 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좀 정확하게 말한다면 우리 이 은하계 중의 한 작은 범위, 우리 이 은하계에 대응되는 천체(天體) 중에 있다. 예수의 층차는 동양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부처의 층차와 같다. 하지만 서양 백인이 말하는 천주(天主)는 훨씬 높아 이 층차를 몇 배나 벗어났다. 그러나 모두 소우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이 대법은 끝도 한정도 없는, 헤아릴 수도 없는 이런 우주를 만들어냈는바, 온 세계의 모래보다도 더 많다. 그러므로 당신이 말해보라. 그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예수가 말한 이치는 다만 끝없는 대법 중 소우주의 여래 이 한 층차 중의 법(法)일 따름이다. 그들은 이런 관계이다.
예수는 대단히 좋은 신이다. 이것은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신이 모두 이렇게 인정하고 있다. 그럼 당신들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는 사람을 제도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이는 어떤 문제인가? 하지만 기독교는 이 십자가를 신의 상징으로, 천국세계의 상징으로 삼아 기독교의 상징으로 삼고 있는데, 이는 신에 대한 최대의 불경이다. 이것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지 신이 이렇게 하라고 한 것이 절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십자가는 무덤에 박아놓은 것으로서 그것은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죽음을 대표하지 신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 중의 모든 신은 다 사람이 이런 일을 한 것을 질책하고 있다. 또 기독교는 예수가 십자가에 박힌 고통스러운 형상을 표지로 삼는데 이는 신이 용서할 수 없는 것으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아직도 이렇게 하고 있다. 몇백 년이 되도록 사람은 이렇게 신에 대하여 불경(不敬)한 일을 계속해 오고 있다.
예수는 많은 위대한 형상이 있으며 속인 중에 많은 기적을 만들어냈다. 당신들은 그의 그 휘황하고 위대한 형상을 상징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그가 십자가에 박힌 형상을 상징으로 삼는바, 당신은 신을 존경하는 것인가, 아니면 신을 증오하는 것인가? 그에게 영원히 십자가에 박혀있으라는 것인가? 사람, 당신들은 당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어느 날 내가 미국에서 텔레비전 뉴스를 보았는데 대만에 유리공예를 만드는 두 사람이 있었다. 듣건대 대단히 유명한 부부였다. 그들은 불상을 예술품으로 삼아 많고도 많은 유리예술품 불상을 만들었다. 부처를 예술품으로 간주하는 자체가 이미 부처를 욕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불상을 모두 몸이 없고 머리가 하나이고 얼굴이 반쪽인 것으로 만들어냈는데 부처를 그 현대파의 형상과 그 인상파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위대한 신이다. 과거의 사람은 신을 말하고 여래부처를 말할 때면 모두 공경하고 우러러보는 마음이 생겼는데 어찌 감히 그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는가? 당신은 당신이 그를 표현하고 불교를 선전하며 좋은 일을 한다고 여기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엄숙하지 못함이 아니라, 이는 최대의 불경이다. 사실 당신은 부처를 욕하고 있고, 부처를 비방하고 있으며, 부처의 위대한 형상을 왜곡한 것으로서 가장 나쁜 일을 한 것이다. 나는 그 날 사람의 관념이 모두 거꾸로 되었다고 말했는데 사람은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착한 것과 악한 것, 바른 것과 사악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지 못하는바, 일체 관념이 모두 거꾸로 되었다.
※제자: 저는 왜 法輪功(파룬궁)을 수련하면서 기독교 일을 할 수 없습니까?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의 기독교 일은 다만 사업일 뿐이라, 완전히 거기에서 사업할 수 있다. 내가 보건대, 나 역시 지금의 종교를 수련으로 여기지 않고 그것을 종교 사업으로 여기는데, 사람을 제도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확실하고도 확실한 사업이지 수련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의 진정한 제고를 보증하고, 당신을 이끌어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나는 당신에게 전일(專一)하게 수련하라고 하는바, 이는 당신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좋은 점이 있다. 불이법문(不二法門)의 문제는 내가 『전법륜(轉法輪)』 중에서 이미 아주 분명하게 말했다.
비록 이 법이 아주 클지라도, 그런 큰 법에 당신은 여전히 그 속에 무엇을 섞는데, 낮은 것을 섞으면 안 된다. 당신 자신이 수련한 신체와 당신이 수련해 내는 일체를 모두 난잡하게 할 수 있고, 당신으로 하여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 있는바, 당신은 당신 자신이 나아가는 길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관차이고 당신들은 모두 열차 속에 앉아있는데, 당신이 레일을 모두 헐어버렸다. 이 레일은 이 기차에 맞춰 설계한 것인데, 만약 당신이 이 레일을 좁은 레일로 바꾸어 놓는다면 당신이 보건대 당신이 그래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어떤 것도 그 속에 섞을 수 없으며, 순수하고 올바르게, 단일하게 수련해야만 비로소 원만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할 때에 이 문제는 당신이 마음을 써서 『전법륜(轉法輪)』의 ‘불이법문’ 그 한 편을 보라. 마음을 조용히 하고 보라. 나는 여기에서 더 말하지 않겠다.
나는 정말로 당신들을 잘되게 하려는 것이지, 어느 종교를 비방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여기에 앉아있게 됨은 연분(緣份)이라, 내가 만일 당신에 대하여 책임지지 못한다면 나의 문제이고, 당신 자신이 자신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의 문제이다. 때문에 나는 당신에게 똑똑히 말해야 한다.
※제자: 저의 다리와 무릎에 모두 문제가 있는데 결가부좌를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만약 당신이 병이 있다고 하는 거라면 나는 여태껏 ‘병’이란 이 개념을 모두 승인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업력이 조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어떤 병은 외래적인 영체가 조성한 것이다. 만일 당신이 외상(創傷)이 있는 거라고 한다면 내가 생각하건대 오로지 당신이 자신을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으로 간주한다면 당신이 생각지도 못하던 기적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 예전에 어떤 사람은 못을 박고 철판을 넣었지만 나중에는 모두 결가부좌를 하였다. 못과 철판은 다만 이 가장 큰 입자로 구성된 신체에 박혀진 것일 뿐이다. 물론 내가 말한다면 이것은 수련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천천히 연마하노라면 8, 90세 되는 사람도 나중에는 모두 다리를 틀어 올렸다. 하지만 나는 또 당신이 지나치게 강제로 하는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 지금 아직 그리 조건이 구비되지 않아 분명히 반가부좌도 아직 틀지 못하는데 기어코 결가부좌를 하려고 하다가 마지막에 다리를 부러뜨린다면 그건 안 된다. 집착심이 강해지기만 하면 곧 문제를 조성할 수 있다. 급히 이루려는 그 마음 역시 좋지 않다. 수련은 용맹 정진해야 한다. 이 점은 맞는다. 그러나 다만 법에서일 따름이다.
※제자: 제5장 공법에 의념을 가해 넣을 수 있습니까?
사부: 절대로 가하면 안 된다. 만약 조용해지지 못하면 우리도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당신은 때로, 나는 실로 방법이 없다, 교란으로 인해 나는 입정(入靜)할 방법이 없다, 이 머릿속은 그야말로 혼란하기가 그지없다고 말할 것이다. 왜 조용해지지 못하는가? 이는 당신이 속인사회 중에서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과 업력이 조성한 사상 상태지, 이는 당신의 진정한 사상이 아니다. 당신은 수련하기에 그것을 모두 제거해 버리려 한다. 때문에 그것이 말을 듣지 않고 그것이 혼란을 피워대어 당신으로 하여금 입정(入靜)하지 못하게 하고 당신에게 어떤 혼잡한 생각이든 다 하도록 한다.
수련하자면 반드시 자신을 찾아야 하며 자신을 수련하여야 한다. 만약 당신이 자신을 똑똑히 분별할 수 있다면, 당신은 생각하기를, 이건 내가 아니다, 너는 생각하라, 나 자신은 입정하겠다, 나는 네가 언제까지 망상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한다. 그것을 다른 사람의 사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당신이 정말로 당신을 찾고 그것을 똑똑히 분별할 수 있다면 이런 방법도 괜찮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자신을 제3자로 여기고 내가 볼 테다, 네가 난잡하게 허튼 생각을 하는데 나는 네가 언제까지 생각하는지 볼 테다라고 한다면 아마 많이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단지 자아를 분별하고 主意識(주이스)를 강화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지 절대적인 입정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왜 이렇게 해야만 될 수 있는가? 왜 방금 말한 것을 채용하면 안 되는가? 왜냐하면 그건 모두 소도(小道)의 방법이기 때문에 당신으로 하여금 집으로 돌아가게 할 수 없으며 모두 心性(씬씽)이 제고되지 않고 인위적으로 올라가고자 생각하는 것인즉 그것은 안 되며, 해낼 수 없다.
왜 나는 당신에게 이런 방법을 알려주는가? 그것은 절대적으로 입정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한 가지 좋은 면이 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어느 것이 당신의 사상이 아니고 어느 것이 당신의 사상인가를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좋지 못한 사상을 당신은 당연히 승인하지 않을 것인데, 그렇다면 제거함도 당연히 빠르다. 그것 역시 수련은 자신에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린 것이 아닌가? 왜 내가 당신에게 그것을 승인하지 말라고 하는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 신체의 어느 부위가 당신이 아닌가? 당신의 손은 그에게 어떻게 움직이라면 그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면, 당신의 팔은 그에게 어떻게 움직이라면 그는 어떻게 움직이고 당신의 머리는 그에게 어떻게 움직이라면 그는 어떻게 움직이는데 그는 당신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 사상을 당신이 그에게 조용하라고 하지만 그는 왜 조용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그는 당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당신은 깨끗한 것이다. 모두 후천적으로 오염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닦아(修)버리고 포기하고자 한다. 이것이 곧 그것을 배척하는 것이다.
※제자: 저와 제 남편은 1997년 9월부터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했는데, 1998년 3월 제 남편이 갑자기 심장병으로 죽었습니다. 저는 제 남편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만약 그가 정정당당하게 진정으로 수련할 수 있고 진정하게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겼다면 내가 생각하건대 이런 문제가 절대 나타날 수 없다. 물론 내가 만일 그가 수련한 것이 아니고 전혀 수련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당신은 아마 또 그렇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수련은 엄숙한 일이다. 당신이 말해 보라. 평범한 속인이 수련하여 초상(超常)적인 고급생명이 되고, 부처가 되고, 신이 되어, 서양인이 말하는 것처럼 천국으로 갈 수 있다면, 인류의 어떤 일이 그에 비하여 더 엄숙할 수 있겠는가? 모두 그보다 엄숙하지 못하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여 수련인은 마땅히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마땅히 진정으로 엄숙하게 그를 대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을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으로 대하는가? 수련 중에 그가 마음속으로 여전히 자신의 병을 생각하고 여전히 그가 동경하는 아름다운 생활 중의 그 일부분을 생각하며 속인사회의 이러한 것이 아쉬워 아주 집착한다면 곧 정진(精進)하지 못한다. 사실상 예전에 죽을 지경인 병을 얻어 마땅히 생명을 잃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나았고 진정한 대법제자가 되었다. 바로 진정한 수련은 사람을 죽게 할 수 없으며, 그는 흔히 모두 수명을 연장한 것이다.
연공은 사람에게 수명을 연장해 줄 수 있다. 끊임없이 연공하면 끊임없이 수명을 연장하게 된다. 그러므로 노인도 연마함에 늦지 않다. 이것이 우리 이 성명쌍수(性命雙修) 공법인 대법의 특징이다. 그럼 왜 속인중의 환자는 마찬가지로 생명을 연장할 수 없는가? 당신이 생각해 보라. 우리가 연장한 생명은 그에게 속인의 생활을 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그에게 엄숙하게 수련하라는 것인가? 만약 그가 이 관계를 바로 놓지 못하고 그럭저럭 수련한다면 어찌 될 수 있는가? 사람에게 생명을 연장해 줌은 절대적으로 수련하라고 해주는 것이다. 그가 여전히 원래 그 모양이라면 그가 생명을 잃지 않는다고 보증하기 어렵다.
무수한 암 환자가 다 나았다. 하지만 또 어떤 암 환자는 죽어버렸다. 무엇 때문인가? 내가 여러분들에게 예를 들겠다. 어떤 사람은 정말로 한번 보고 이런 법을 얻었다. 그는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고 그는 병상(病床)에 누워서 생각한다. 나는 다 죽게 되었는데 나는 그래도 이러한 것을 보게 되었구나.
참으로 왜 일찍이 보지 못했던가? 그는 이것으로 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는 시간을 다그쳐 책을 본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며칠 못산다, 나는 빨리 보자, 빨리 보자, 되도록 남은 생애에, 남아있는 날에 좀 많이 보고 몇 번 더 보자고 한다. 그러나 부지불식간에 그는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게 되었고 그의 암 덩어리도 없어졌으며 그는 걸을 수 있게 되었고 그는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갑자기 온몸이 가벼워짐을 발견하였다. 병원에서 다시 그의 병을 검사하여 보니 그의 암은 이미 전부 없어졌다. 그러나 의사는 흔히 대법이 그에게 병이 낫도록 치료하여 주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인정한다면 현대과학이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곧 “아, 이전에는 오진(誤診)이었소.”라고 말한다. 이런 일은 그야말로 너무나 많다.
물론 또 이런 사람도 있다. 그는 대법을 수련하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들었다. 자, 그는 왔다. 그러나 그는 또 당신이 만약 병을 치료하려는 목적을 품고 온 것이라면 당신의 병이 잘 나을 수 없기에 헛되게 연마한 것과 같다는 것을 들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적은 수련이지 사람에게 병을 치료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오로지 대법을 얻었다면 당신의 병은 나을 수 있다. 하지만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가 우리 대법의 요구에 따라 수련하려고 하지 않고 수련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으며 그는 오로지 병을 제거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이처럼 엄숙한 대법을 그에게 전해주었는데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일 수 있겠는가? 아니다. 그럼 그도 알았다. 오, 내가 오로지 병 치료를 말하지 않고 사부님을 찾아가 병을 치료해 달라고 하지 않으면, 때가 되면 사부님께서 꼭 나를 잘 치료해 줄 것이다. 당신이 보라. 그는 입으로는 말하지 않고 그는 심지어 누구와도 병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긴 시간이 지났는데 그는 마음속으로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내가 오로지 연공하기만 하면 때가 되면 사부님은 꼭 나를 치료해 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곧 그렇게 조그마한 차이가 나는 것이 바로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고, 곧 그렇게 조그마한 차이가 나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진정한 본질이라, 그는 여전히 그의 병을 치료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암 환자가 오면 흔히 그의 시간을 모두 지연시켜 그에게 한 차례 한 차례 기회를 준다. 병원에서는 2개월, 3개월이면 죽는다고 선포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게 시간을 주어 1년, 1년 반, 2년을 주었다. 그는 여전히 그의 관념을 고치지 않고 그의 병을 걱정한다. 나의 병이 재발하지 않을까? 사부님은 정말로 나를 책임져 주어 나에게 철저히 고쳐주었는지? 당신이 보라.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있다. 그는 입으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나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부님은 꼭 나를 도와 병을 치료해 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표면상으로는 연공하지만 그의 본질은 여전히 병 치료를 위한 것이다. 그는 나를 속이고 사람을 속이고 대법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누굴 속이든지 모두 가짜이다. 사실은 바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진실한 심리적인 전변(轉變) 그것이 비로소 진짜 수련이다. 우리 많은 수련생이 바로 그의 천명에 이르렀기에, 즉 수명이 다되었기 때문에 그의 일생은 곧 이만한 나이까지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때가 되어서도 그가 아직 자신을 연공인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곧 죽게 된다. 그러나 흔히 모두 그의 원래의 기한을 훨씬 벗어났다. 그에게 기회를 주고 그에게 시간을 주며 그로 하여금 전변하도록 한다. 정말로 전변되지 못한다면 곧 그가 갈대로 가게 놓아둔다. 표면상에는 그가 여전히 우리 책을 보고 또 공을 연마하고 있지만 그는 죽을 것이다. 이를테면 내 말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대법을 수련하여 모두 원만에 이를 수는 없다는 것인데, 내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다시 말해 당신이 자신을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못하고 당신이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나이가 많은 사람은 곧 가게 된다.
당신 일생 중에서 당신이 마땅히 지내야 할 인생의 생활을 다 지냈으므로 당신은 현재 있는 생명에서 꼭 다그쳐 수련해야 한다. 당신이 자신을 완전히 투입하여 수련하는 사람이 되게 하면 당신의 생명은 연장될 것이다. 물론 이런 연장을 당신은 그것이 연장인지 아니면 원래 있는 생명인지 모를 것이다. 당신이 끊임없이 연공하면 당신의 생명을 끊임없이 연장해 주므로 곧 당신의 연공시간을 증가시킬 수 있으며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하여 원만을 이룰 충분한 시간이 있도록 한다. 당신이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못하면 무릇 생명을 연장해온 사람은 수시로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당신이 수련할 수 없다면 대법은 이렇게 함부로 한 속인의 생명을 연장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은 정해놓은 숫자가 있다. 그가 어느 때에 이르면 마땅히 죽어야 하고 마땅히 전생해야 하는데 저쪽의 사람이 이미 임신하였고 그가 전생하여 출생하기를 기다리는데, 그가 출생하지 않는다면 이건 될 말인가? 그가 출생한 후에 속인사회에서 몇 년 간 생활한 후 그는 일을 하게 된다. 그의 일 역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그로 하여금 가지 못하게 한다면 될 말인가? 당신은 전반적인 사회순서를 혼란시켰다. 오직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어야만 우리는 당신에게 이렇게 해줄 수 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수련하려 하고 되돌아 승화하려 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로소 당신에게 이 일체를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대신 배치하고 당신을 빼내온다. 때문에 수련인은 속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속인인 그에게 이런 일을 해줄 수 있는가? 우리는 이 문제를 엄숙하게 보아야 하지 않는가? 바로 이러하다. 때문에 나는 대법이 이렇게 좋다고 말한다. 당신은 내가 말한 것이 좋다고만 보지 말라. 우리 여러분은 어떻게 원만을 이룬다는 것을 듣고는 모두 박수를 친다. 반대로 만일 당신이 진정하게 수련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당신이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역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心性(씬씽)의 제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제고이다. 그가 날마다 연공(練功)함은 마치 체조를 하는 것과 같은데 죽지 않을 수 있는가? 내가 말한다면 그건 웃음거리이다. 그가 날마다 연공하지만 그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지 못하면 나는 그의 연공은 체조하기와 같다고 말한다. 단지 그 아주 조그마한 차이에도, 그는 그것을 개변하기를 아주 어려워한다. 당신이 개변되었고 당신이 속인의 관념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다면 당신은 곧 신이다. 당신이 할 수 없다면 곧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말처럼 쉽겠는가? 천천히 수련하는 과정의 사상기초가 없이는 당신이 그에게 내려놓으라고 해도 그 역시 내려놓지 못한다!
오늘 당신이 죽음에 직면하여, 어떤 죽음형식이라도 그 죽음 앞에서 추호도 겁내지 않으며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아마 죽은 후에 천국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죽음의 일은 정말로 있을 수 없다. 관건은 사람의 마음을 봐야 한다. 우리 대법수련은 곧바로 직접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수련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닦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외의 모든 표현이 다 가짜이며 형식은 다 가짜이다.
나는 문제를 제기한 이 수련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한 가지 이치를 말하는 것인데 이 문제를 빌려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이치를 말해준다.
※제자: 우리가 법을 널리 전함이 순조롭지 못함은 열정과 방법상의 문제입니까 아니면 법 공부가 깊지 못한 문제입니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깨달은 본성은 자연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알 것이다.”라고 하는데 맞습니까?
사부: 한 말은 맞다. 그러나 지금 이런 상황에서 아직 도달하지 못한다. 때문에 지금의 상황에서 아직도 지금의 상황에 근거해야 한다. 당신이 남에게 법을 얻게 하자면 당신은 그에게 이 가장 낮은, 가장 표면적인 법리를 알려주어야 한다. 그가 배우려고 하는가 하지 않는가를 보라. 왜냐하면 당신이 가장 좋은 것을 남에게 알려주려고 하는 것이잖은가. 그가 배우려면 그가 배우고, 그가 배우려 하지 않으면 당신도 그가 배우도록 설득하지 말라.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그를 설득하여 기어코 그로 하여금 인정에 끌려서 배우게 한다면 그건 모두 가짜이기 때문이다. 그가 친구의 체면을 봐서 오는데, 그것은 가짜이며 그 역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당신에게 법을 얻게 하는 데는 무슨 구체적이고 유형적인 규정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도무형(大道無形)이라는 이 길을 걷기 때문이다. 법을 널리 전함도 역시 자주적으로 해야 한다. 사람이 배우려면 배우고 배우지 않으려면 그만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에 대한 요구, 그것은 전부 당신 자신에 달려있다. 물론 당신은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가면, 그 외의 것은 물론 모두 사부가 책임져 준다. 心性(씬씽)이 제고되면 사부도 당신에게 조건을 창조해 줄 것이다.
또 법 공부가 깊지 않다고 하는 문제도 아니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문제가 바로 우리가 한 기간의 수련을 거친 후 여러분은 경지와 인식 문제에서 속인과는 모두 무척 큰 차이가 있게 마련인데 당신이 당신의 이처럼 높은 경지중의 말을 그에게 해준다면 효과는 좋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도 속인이기 때문이다. 속인은 매일 주식에 주목하며, 다른 사람과 암투를 벌이고 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서로 빼앗고 조금만 얻어도 기뻐서 야단인가 하면, 조금 잃으면 고통스러워 야단이다. 속인 중에서 제멋대로이고 칠정육욕이 구전(俱全)한 이것이 바로 속인이다. 만약 당신이 속인에게 아주 높은 수련의 일을 말한다면 그의 관념은 당연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당신이 그에게 단지 이 대법의 글자 표면상에 나타나는 것을 알려주고 내포는 그로 하여금 스스로 보게 하라. 내가 생각하건대 그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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