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석학이자 문명비평가인 기 소르망(Guy Sorman)은 한국에도 익히 알려진 21세기의 대표적인 지성이다. 그의 날카로운 관찰이 읽어내는 중국의 베일 속의 모습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동안 서구와 우리 사회가 중국에 대해 갖고 있던 낭만적 환상과 근거 없는 우호적 고정관념들을 많이 거두게 한다. 중국사회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관찰과 비판적 시선이 설득력을 더하는 이유는 학술적 접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가 직접 발품을 팔아 얻어낸 밑바닥의 생생한 현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2005년 1월에서 2006년 1월까지 1년 동안 중국을 왕래하면서 공산당 간부에서 농부, 노동자, 반체제 인사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신분에서 평범한 보통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속하는 수 백명의 중국인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관찰하며 정보를 취득했다. 특히 만나는 대상의 스펙트럼을 넓혀 중국 사회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함으로써 사각을 최소화하려 애썼다.
이 책은 중국 공산당이 감추고 싶은, 그리고 효과적으로 감춰왔던 중국 사회의 그늘 속에 숨겨진 보통사람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그의 통찰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중국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으로 제시한다.
물론 그의 비판의 시선은 중국사회와 중국 공산당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당연히 중국사회, 중국 대중에 대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지도자, 더 정확히는 중국의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공산당 간부들에 대한 것이다. 그는 중국의 공산당 지도부뿐 아니라 반체제 인사들까지 민족주의적 성향이 유별나게 강해서 중국공산당에 대한 비판을 곧 중국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둔갑시켜 중국의 적으로 몰아세우는 경우가 많은 점을 경계한다.
기 소르망의 비판적 관찰과 통찰은 서구세계와 전문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논쟁도 불러일으켰다. 그들 모두 중국이 은밀하게 주입하거나 전파시킨 중국에 대한 착시에 알게 모르게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제적 의존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다수 한국인들은 ‘위대한 중국 문화라는 의상’을 두른 중국과 마주할 경우 유형무형의 압력에 스스로 의기소침해져 중국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이 기 소르망이 들춰내는 중국의 ‘진짜 모습’과 비판을 더욱 의미있게 만든다.
그가 중국기행에서 만난 몇 사람의 모습을 보자. 평범한 노동자 출신의 인권운동가 웨이징성은 여전히 공산당의 압제적 정치 현실을 비판한다. 천안문 사건의 주동자였던 우얼카이시는 1989년 6월 4일 천안문 광장의 참혹한 희생을 기억하며, 지금까지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고 정치적 자유를 원천적으로 용인하지 않는 공산당에 절망한다.
20대에 마오쩌둥 곁에서 일한 공산당의 주동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던 85세의 펑 여사는 인간본성을 부정하고 학식 있는 사람을 배척하며 자식들은 부모에게 반대하도록 훈련시키고, 유교는 물론 중국의 역사적 문화와 유적을 황폐화시켰던 마오쩌둥의 전복과 혁명의 시대에 몸서리쳤다. 기 소르망은 이들을 통해 중국 공산당의 이념이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회의 민주적 변화를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해 왔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에이즈의 발병을 감추기 위해 격리시킨 마을의 관찰을 통해, 에이즈 예방과 치료의 시범인양 외국인들에게 포장했지만, 실제론 인간적 대우를 전혀 해주지 않았던 중국 공산당의 기만적 정책을 들춰내고, 2 자녀 낳기에서 1 자녀 낳기로 강화되어온 국가계획생육위원회의 인구통제 정책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저질러진, 비인도적인 성 억압, 강제 낙태, 재산몰수, 무자비한 폭력 등 당의 범죄행위를 낱낱이 고발한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을 판별해 보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종교다. 특히, 시대에 따라 유교, 불교, 도교가 흥성과 쇠퇴를 거듭하는 과정은 중국 사회를 지배하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변화를 읽는 또 하나의 기준임을 보여준다. 중국은 청황조 말기에 서양인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부터 기술적으로 우월한 유럽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자각한다.
하지만 일본식의 유신과 달리, 청황조의 관료들은 국가 쇠락의 책임을 전통과 미신에 돌리고, 1898년부터 근대화의 명분으로 도교, 불교, 유교 사원들을 파괴했다. 민중의 종교에 대한 정치 엘리트들의 이런 왜곡된 증오는 1949년 중국 공산당 정권이 수립된 이후 더 가속화 되었고, 마오쩌둥의 문화혁명기에 극에 달했다. 기 소르망은 종교를 말살시키고 중국의 전통 유산들을 파괴하던 중국의 반교권주의(反敎權主義)가 자비의 공간이던 불교와 도교의 모임을 말살하면서 수 세기 동안 상업의 번영을 가져왔던 관습마저 박탈해 버렸다고 말한다.
기 소르망은 무너진 도교의 실상을 씁쓸하게 스케치한다. 700여개의 도교 사원이 거의 다 사라지고 베이징에도 백운관 단 한 곳만 남았다. 90년대에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고 도교사원이 재개방되었지만 박물관화된 구경거리에 불과해진 현실을 개탄한다. 그는 중국의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잠재적 지지와 반체제 인사들의 열망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맡아온 세계 도처에 흩어진 중국 도교의 뿌리를 우호적으로 바라본다.
불교의 사찰과 교회도 재건되고 있지만, 더 이상 종교적 예배의 공간이 아니라 박물관이자, 공산당 지부이며, 은퇴자들의 모임 장소일 뿐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었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한 허울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종교의 허용이 이렇게 기만적이 된 이유는 종교 행위 그 자체 보다, 종교라는 수단을 통해 인민이 조직화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공산당의 방침 때문이다. 중국이 파룬궁을 탄압했던 이유도 파룬궁 신도들이 보여준 연대와 결집의 힘이 공산당 지배체제를 위협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이 반동으로 몰아 철저히 파괴했던 유교를 다시 부활시키고 있다. 갈수록 중국인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마르크시즘의 빈 공간을 공자의 유가사상으로 채우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 소르망은 중국 공산당이 다시 유교적 가치를 내세우는 것은 공산주의를 그저 단순한 중국 제국의 계승자로 포장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유교적 가치로 치장된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옷을 입혀 중국 공산당이 영원한 중국 제국을 문화적으로 계승해 나간다는 것을 국민에게 주지시키는 게 숨은 목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예(禮)와 인(仁)을 강조했지만 독재를 반대하는 공자와, 역성혁명을 강조한 맹자의 핵심가치들은 철저히 은닉하고 있는 것으로 반증된다고 말한다. 마르크시즘(Marxism)을 보완 또는 대체할 보편적 가치로서 유교의 가르침을 선택적으로 차용하고자 할 뿐, 유교의 본질적 가치를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중국 공산당이 유교를 현실권력과 기성체제를 정당화하고 국민을 순종시키는 데 가장 적당한 종교로 선택 활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기 소르망은 신유교주의는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에 제3의 길이 된 셈인데, 중국 공산당은 신유교주의의 길을 통해 민주주의의 길을 교묘하게 피해가려 한다고 비판한다. 공자의 가르침의 일부분이 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중국 공산당의 체제 유지에 봉사하게 되는 기구한 운명이 된 셈이다.
기 소르망은 동쪽 해안도시들의 화려한 성장에 가려진 서부 내륙지방의 농촌사회의 피폐한 삶과, 도시인과 이주노동자가 된 농촌인 사이의 비인간적 차별의 현상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해 준다. 태어날 때부터 호적에 ‘농업인’과 '비농업인‘으로 낙인되고 자식에게 전수되며, 이 법적인 차별적 신분이 만들어내는 거주와 결혼, 사회적 출세에서의 제약과 도시인의 농촌이주자에 대한 착취의 심각성을 고발한다. 특히 5%의 중국 공산당이 95%의 중국인을 지배하면서 만들어내는 억압과 불평등, 빈부 격차의 심화, 부패의 구조화를 질타한다.
한편 기 소르망은 중국에게 국가 발전의 대안도 주문하고 있다. 그는 중국이 모든 문제적 상황을 ‘과도기’라는 상투적 변명으로 외면하지 말고, 인도와 같은 자유주의적이고 인간적인 개혁을 추진하라고 주문한다. 거대 인구와 영토, 거대 소비 시장을 가진 인도와 중국의 유사성에 유의하면서, 경제적 진보는 다소 더디지만 민주주의 방식으로 조화로운 성장을 하고 있는 인도를 모방하라는 얘기다.
나아가 그는 중국의 자의적 사형제도의 개혁, 사법부의 독립과 사법제도의 정비, 언론 자유의 확립, 부패의 척결도 주문한다. 특히 유교라는 제동장치마저 사라진 상태에서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공산당의 부패가 더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한다.
중국 공산주의체제의 불변요소는 부패한 당과 반부패라는 이중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당이 채택한 사기업화 방식이 부패의 영원한 지속을 보장하고, 부패의 상호작용을 더 크게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제 규모의 확대와 더불어 공산당의 절대 권력이 더 많은 이권의 배분 권력으로 변질되어 부패를 더 구조화시키고 사회적 불평등과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기 소르망은 ‘권위주의 독재주의’에서 ‘자유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데 성공한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처럼 중국이 ‘1당 독재 전체주의’에서 ‘권위주의적 독재주의’로, 나아가 ‘자유 민주주의’로 단계적으로 변모하길 희구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자유와 법치, 보통선거의 실시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중국 공산당이 이를 결코 용인할 수 없을 것이란 점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소멸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절망한다.
그는 중국 공산당의 미래는 중국 밖의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 않을까 희망하면서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중국 비위맞추기에 급급한 세계 국가들을 향해 자유를 갈구하는 대다수 중국인들을 위해 비판적 목소리를 높여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중국은 민주적 전통이 적용되지 않는 별세계라는 서구의 보수적 환상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프랑스의 지성 기 소르망의 책을 읽으면서, 1831년 9개월 동안 미국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며 대국으로 성장해 나갈 조짐을 보이던 미국사회의 진면목을 파악하면서, 자신의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설계를 확인시켜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행적이 교차해서 떠오른다.
토크빌은 당시 관찰적 경험을 토대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원동력을 자유와 평등의 가치로 기술했다. 구체제 영국에서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의 비원(悲願)이었던 평등의 원리가 다수의 권력이 지배하는 민주주의의 토대를 만들고, 시민들의 다양한 자발적 결사체들이 자유를 신장시키며, 다수의 폭정을 완화하는 제동장치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기 소르망의 중국 순례 또한 토크빌의 미국 기행 못지않은 날카로운 관찰과 예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기 소르망이 관찰한 현상과 사유해내는 통찰들은 토크빌이 희구하던 민주주의와 정반대쪽에 위치한, 제동장치 없이 소수의 권력이 지배하는 전제적(專制的) 체제의 속성과 그 영향들이라는 점이 극적으로 대비된다. 그는 <중국의 전체주의>를 기술하면서, 그 은밀한 작동체계와 권력자들의 행태를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공산당 소수 지배 권력의 공고화를 최우선 가치로 신봉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전제적 통치 방식과 경제적 성장에 비해 발육이 지체되고 있는 정치적 민주화의 불균형적인 모든 현실이 명확하게 이해된다.
기 소르망은 중국의 유구한 역사, 거대한 외형에 덧붙여진 약진하는 경제 발전의 양상에 서구세계가 지나치게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중국’이 만들어내는 신화와 착각의 실체를 중국사회에 뛰어들어 직접 검증하고자 했다. 중국 공산당이 아닌 중국의 민초들을 만나 중국 통치체계가 작동되는 말단의 현실을 직접 보고, 중국인들의 고통과 갈망에 귀를 기울이고자 했다.
중국사회의 밑바닥 깊숙이 저인망을 내려 훑은 기 소르망의 그물엔, 중국과 이해관계를 가진 정치인, 기업인, 전문가들이 아무리 수없이 중국을 드나들고 중국인들과 절친한 관계를 유지해도 파악하기 힘든 살아있는 중국의 불편한 진실들이 그득하다. 일반인들은 물론 중국 전문가들마저 놓치고 있는 중국의 박제된 모습 뒤의 맨얼굴이다.
최근 중국은 공산당 1당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G2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패권국가의 힘을 더욱 확장해 나가면서 미국과의 대립각을 세우고, 주변국가와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이런 국가 운영전략은 크게 바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중국이 정치적 민주화를 진전시켜 자유민주적 체제로 전환되어 정치, 사회, 문화의 영역에서 자유, 평등, 인권 등 보편적 가치들을 구현해 나가지 못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진정한 리더십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중국 내부에서도 전제적 정치체제 속에 억압된 사회의 다양한 욕구와 열망이 언젠가 한꺼번에 분출할 압력으로 축적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의 최대 교역국으로 우뚝 선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 소르망이 들춰내는 중국의 낯설고 비정한 모습들은 한국의 입장과 시선에선 너무나 민감하고 거북한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이 출판되고 난 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내부 분석에서, 이 책에서 언급되는 사실들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있겠지만, 정확한 사실들이며 틀린 내용은 없었다고 밝힌 점에서 기 소르망의 객관적 권위를 더해 준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몰랐던, 아니 외면하고 싶은 중국의 진면목을, 특히 중국 공산당의 본질을 직시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좌파 로맨티시즘의 환상이 결부되어 아직까지 중국을 예외적 존재로 보는 경향이 심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우리의 냉정한 시선과 성찰을 촉구하는 죽비소리와도 같다.
더욱이 중국과 한국은 경제적 이해득실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전통적 우호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 국민들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글/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출처 : 데일리안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291421&sc=naver&kind=menu_code&keys=6
'법륜대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진정한 대법수련으로 (산책님께) (0) | 2015.11.05 |
---|---|
[스크랩] 최선을 다하자! (0) | 2015.10.03 |
[스크랩] 원자바오 中 총리 “파룬궁 명예회복시켜야” (0) | 2015.06.19 |
[스크랩] 중국정치의 핵심문제, 파룬궁 탄압 (0) | 2015.06.19 |
[스크랩] 中, 노벨평화상 후보 인권변호사 가오즈성이 말하는 파룬궁수련생 (0) | 2015.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