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되기 손자병법
1. 10억 만들기? TV부터 당장 꺼라.
“부자가 되려면 먼저 부자를 제대로 이해하라.”
부자학 개론이라는 이색 강의로 화제를 모았던 서울여대 경영학과 한동철 교수가 책 <부자도 모르는 부자학 개론>(씨앗을 뿌리는 사람)을 펴냈다. 과연 부자가 되는 비법은 존재할까. 수많은 부자들과 만나며 그가 관찰하고 느낀 ‘부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한 교수는 먼저 부자의 개념에 대한 이해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가 쉽게 ‘돈이 많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떠올릴 수 있는 인물에는 누가 있을까. 한 가지 예를 들자.
노무현 대통령과 이건희 회장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1백조원이 넘는 정부예산을 관리하고 있고, 수십만 명의 정부 산하 공무원을 지휘한다. 이 회장은 1백조원이 넘는 삼성그룹의 매출을 관리하며, 수십만 명의 임직원을 이끌고 있다. 노 대통령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천하의 이건희 회장도 노무현 대통령만은 두려워한다.
그러나 부자를 정확히 ‘장기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건희 회장은 부자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일시적으로 부유한 사람에 불과하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현재 할 수 있는 사람’, 이것이 한 교수가 내리는 부자의 정의다. 부자의 반대말은? 바로 일반인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미래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일반인이다.
부자는 ‘자립적인 돌파력’과 ‘현실 적응력’을 통해서 가능해지는 법이다. 고학력자일수록 시스템에 대한 적응력은 상대적으로 높아질지 몰라도, 그만큼 현실적인 자립력은 떨어진다.
우리나라 부자들의 60% 이상은 ‘자수성가형’인 자영업자들. 이들은 스스로의 자립력과 상황 돌파력에 의해 적응력을 높인 사람들이다. 부자들은 자신들의 이 힘을 최대한 활용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습관들을 가지고 돈을 벌었다. 지식이 부자를 만든 것이 아니라 습관이 부자를 만든 셈이다.
부자가 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그것은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 성취욕구가 얼마나 강한가에 있다. 모든 사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아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에 매진해 부자가 된 것이다.
한국의 빌 게이츠라 불리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대연 교수. 열세 살 때 소년가장이 되어 야간상고를 나온 그가 13년간 은행원 생활을 하다가 미국 유학을 결행해 교수가 된 것만으로도 박 교수의 삶은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조수 2명과 함께 모험을 감행했다. 일본과 독일 및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수천억원을 쏟아붓고도 실패한 ‘미들웨어(컴퓨터 환경에서 서로 다른 서버와 클라이언트들을 연결해 주는 소프트 웨어) 원천기술’에 매달린 것. 시작 당시에는 곳곳에서 비아냥댔지만, 혼을 쏟아내는 도전정신으로 굴지의 벤처기업을 일궈냈다.
일반적으로 성취욕구에 근거해 자신이 정한 방침이 원칙이 되고, 이러한 원칙을 준수하다 보면 습관이 된다. 이러한 습관을 수년 넘게 수행하다 보면 자신의 일부가 되게 마련. “부자가 되는 것은 습관을 준수한 결과”라는 게 한 교수의 말이다.
그는 부자들의 습관을 관찰한 토대로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다음 세 가지를 주문한다.
▲ 지금 당장 인적 네트워크를 점검하라
▲ TV를 꺼라
▲ 신용카드를 쓰기 전에 세 번만 참아라.
부자들은 단기적 또는 장기적으로 관계를 형성하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주로 만난다. 성취해야 할 목표와 일에 집중하기 위해선 TV도 시간 잡아먹는 기계일 뿐. 거기다 무의식중에 소비심리를 조장하기까지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시간은 부자에게나 거지에게나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자본’인 셈이다. 그 자본의 가공은 시간의 효용성 감각에 달려있는 것 아닐까.
다음으로 신용카드의 무서움도 빼놓을 수 없다. 부자들이 신용카드를 잘 쓰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낼 때는 돈 꺼낸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한 장 두 장 돈을 구체적으로 세는 대신 사인이라는 간편한 방식으로 소비를 대행해 주는 것.
한 교수는 ‘부자학 개론’ 강의 때에도, 부자들에겐 남다른 결단력과 통제력이 있음을 강조한다. 소비지출의 문고리를 확실히 통제함으로써 돈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절제력, 이는 부자를 만드는 기초다.
“부자는 하루 24시간 중에서 눈 뜨고 있는 17시간 정도를 부자가 되겠다는 ‘부자의 관점’에서 사고하고 생활해요. 일반인은 하루 한두 시간 정도 돈 생각을 하면서 왜 돈이 안 모일까를 생각하지요.”
한 교수가 만나본 부자들 중엔 배금주의자도 있고 아닌 이도 있었지만, 모두 돈을 사고의 중심에 두고 생활하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부자가 되려면 생각의 중심에 늘 돈을 두어야 한다.
또 하나, 부자가 되려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 한 교수의 제자 중에는, 고등학교를 시골에서 졸업하고 서울의 대학교로 입학하면서 ‘졸업할 때까지 아파트를 하나 사야겠다’는 목표를 세운 여학생이 있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다 직접 벌었고, 3학년 2학기에는 통장 잔액이 무려 8천만원이었다는 ‘전설’은 부자학 개론 수강생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 그녀의 대담한 목표는 하나였다. 바로 ‘내’ 아파트에서 편안히 자고 싶다는 것.
한 교수는 국내외 수천 명의 부자들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를 분석해 다음 여섯 가지 방법으로 명쾌하게 정리했다. ▲장사(자영업) ▲절약 ▲정보 ▲출생 ▲결혼 ▲행운.
이 중 부자가 되는 확률은 ‘장사’가 60% 정도로 가장 높았으며, ‘행운’은 1% 미만으로 가장 낮았다. 장사란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동기유발’이 강하다는 점이 순위 1위의 이유다. 99년 계란빵 장사에서 시작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체인업계의 1천원 신화를 만들어낸 ‘영철버거’의 이영철 사장 같은 이가 대표적인 사례.
‘절약’으로 부자가 된 이들의 정신력은 무서울 정도다. 수백억원을 가진 경상남도의 한 할아버지는 은행에서 거래를 마친 후, 은행원에게 꼭 1천원짜리 한 장이라도 받아서 버스를 타고 집에 간다. 수십억원을 맡긴 손님이 몇 천원을 받으려고 기다리니 은행원도 미칠 지경이라고 한다.
강남 대치동의 어느 알부자 부부는 독특한 ‘일심동체’를 보여준다. 같이 TV를 보다가 부인이, “여보, 화장실 갈 일 없어요?” 하고 묻는다. 그러면 남편이 화장실에 다녀오고 뒤를 이어 부인이 일을 본 뒤에야 화장실 물을 내린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 부부가 이렇게 생활한 지는 한참 되었다고 한다.
그럼 ‘정보’를 통해 부자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자신이 새로운 정보를 창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터넷과 서적 등 주어지는 정보보다는 만들어지는 정보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자칫하면 ‘10억 열풍’은 그냥 지나가는 사회적 꿈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한 교수는 말한다.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빼앗아 내 돈 10억을 만들려고 하면 ‘제로섬(zero-sum) 사회’ 아니겠어요? 새로운 사용가치를 창출해서 돈을 모아야죠. 타인의 재산은 그대로 유지한 채, 창조적 업무들을 수행해서 10억원어치의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며 돈을 모으면 사회 전체가 같이 발전하는 겁니다.”
한 교수는 ‘당당한 부자’가 많아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고 진단했다.
공격적 부자의 습관
두 배는 힘든 상황에 자신을 밀어 넣어라.
일에 미쳐라.
성공 확률이 낮은 일에 자신을 던져라.
수비적 부자의 습관
안전제일주의- 최선의 수비는 최고의 공격이다.
마르고 닳도록 돈만 세는 게 취미.
철저하게 자신을 통제하라.
2. 빌딩부자 사모님 원칙대로 돈 버는 법: 차곡차곡 불리는 게 부자되는 지름길
부자는 원칙주의자다. 부자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일반인들에 비해 많은 성과를 낸 사람이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자존심이 무척 강하다. 후천적으로 다듬어진 자신의 고집과 우월감 때문에 생긴 자신의 원칙을 그대로 따르려는 성향이 상당히 강하다.
“불필요한 것은 안 산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은 산다”고 나름대로 기준을 정하면 꼭 준수한다. 택시기사가 거스름돈이 단돈 1백원이라고 해서 안 주거나 하면 단단히 화를 내는 것이 부자들의 단면이다.
반면 희끗희끗해지는 머리칼을 보면서 몸에 좋은 것이 있다고 하면 수십만원이라도 아낌없이 그냥 내는 것 또한 부자들의 모습이다. 다시 안 볼 택시기사에게는 1백원이 아까우나, 자신에게 수십만원을 투자하는 것은 절대로 아깝지가 않은 것이 부자다.
‘신부자열전’ 그 두 번째 주인공으로 소개할 강남 부잣집의 한 사모님 역시 철저한 원칙주의자다. 자신의 중요한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고(여성의 몸으로 힘든 일을 하고), 자신의 헛된 욕구를 절제하려고 상당한 인내를 하는(여성의 입장에서 하기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다.
50대 초반인 O여사의 부모님은 이북에서 월남한 뒤 서울에서 검소한 생활을 했다. 공직에 몸담고 있었던 부친의 영향으로 O여사는 알뜰하면서도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하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부모님은 당시의 일반적인 경향대로 부동산을 재테크 수단으로 삼았고, 무남독녀였던 O여사가 이를 물려받았다.
남편이 전문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한 뒤에도 O여사가 부동산을 직접 챙겼는데, 여성의 몸으로 당차게 관리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부동산 재산을 증식해 나가는 수완을 발휘했다.
집에서는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남편과 함께 1남1녀의 가족을 알뜰히 챙기면서도 O여사는 자신이 직접 세입자 관리도 하고, 환경개선부담금도 걷고, 정화조 청소도 관리하고, 심지어는 빈 점포를 채워넣는 부동산소개소의 일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전체 부자 중 약 35%가 거주한다는 ‘부자특별구’인 서울시 강남구에 아파트와 빌딩을 가졌지만 O여사는 여성으로서 재산관리인 없이 자신이 빌딩 관리를 직접 챙겼다.
세입자들만 족히 수십 명이 넘는 데다 그들을 일일이 직접 상대한다는 것이 상당히 버거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른 빌딩들이 흔히 해오는 식의 중간관리인을 채용하지 않고 직접 나섰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빌딩은 항상 빈 점포 없이 세입자가 꽉꽉 찼고, 그 관계도 원만했다고 한다. 인건비를 줄이는 대신 다른 곳보다 월세를 단 일이십만원이라도 더 싸게 해주고, 또 주인이 직접 매일 관리하면서 챙긴다는 사실이 세입자들에게 믿음을 줬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자녀를 돌봐야 한다는 사명감(성취욕구)을 가지고 여성으로서 힘든 일을 수행했다. 그러나 자신의 생활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다. 필자는 O여사와 대화를 하면서 그의 원칙적인 생활에 감동을 받았다.
“교수님, 저는 제가 얼마를 모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다른 것을 다 줄이면서 꼭 달성합니다.”
“금전 목표를 정해 놓고 성취하신다는 것이 힘드셨을 텐데 몸이 힘들고 정신적으로 피곤하지 않았습니까?”
“아니요. 괜찮아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몇 년 전 IMF다 뭐다 해서 3천만원 정도의 월세 수입금이 2천5백만원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러면 그녀는 약 5백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절반으로 줄이고, 또 나머지 지출을 최대한 줄여서 이 손실금을 보완하곤 했다. “당장 한 달에 5백만원 적게 들어온다고 큰일 날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물어도 그냥 웃기만 한다.
부자들 중에는 초인적인 인내를 하는 이들도 많은데, 심지어는 화장실을 사용할 때도 서너 명이 다녀와야만 물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직접 만나본 서울 평창동의 한 부잣집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필자가 이런 이야기를 O여사에게 하자, “저희도 부부끼리는 그래요”라고 태연하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O여사의 재산 증식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고전적이고 구태의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녀는 전형적인 소극적 방어적 방식의 재테크를 추구한다. 남편의 월급으로 생활하고, 빌딩 임대료 등 수입금은 고스란히 저축한다. 돈이 쌓이면 인근 상가를 분양받고, 그것이 쌓이면 또 작은 빌딩을 하나 인수하는 식이다.
무리하게 대출을 받고 빌딩을 구입하거나, 주식을 하거나 하질 않는다. 이리저리 정보력을 동원해서 분양권을 따내기 위해 쫓아다니고, 또 그것을 금세 되팔고 하는 것도 체질상 맞지 않는다고 한다. 차근차근 불려나가는 재미가 쏠쏠하지, 한꺼번에 왕창 목돈이 굴러오면 왠지 돈이 돈 같지가 않아서 별로 돈 모으는 재미도 없을 것 같다고 한다.
현재 수백억대 재산의 근간이 된 강남역 부근 대형 빌딩 역시 당초 가족이 거주하던 집이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아파트로 이사가면서 그 집을 허물고 작은 빌딩을 짓고, 다시 증축하고 늘리고 해서 지금의 대형 빌딩이 되었다는 것.
O여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 쉬운 강남의 부자 사모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흔히 말하는 사교 모임 같은 것도 없고, 고급 승용차나 명품과도 거리가 멀다. 굳이 모임이라면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신도들과의 모임 정도. 골프나 여행, 쇼핑 등도 그다지 취미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들을 위해서, 살림 장만을 위해서 쓰는 돈은 또 행복을 느끼며 기꺼이 꺼내놓는다.
필자는 기독교의 자선정신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부자들은 청바지를 수십 년씩 꿰매어 입으면서 아낀 돈으로 아프리카에서 페니실린이 없어서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수백만달러씩을 쾌척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저도 아는 분들 소개로 몇 군데에 제가 정한 액수를 보내드립니다”라며 겸손하게 웃었다.
우리나라에 부자는 아무리 많이 쳐야 전체의 5%가 안 된다. 길거리에 걸어다니는 20명의 사람 중에 소위 부자라고 불릴 만한 이는 한 명뿐이라는 이야기다. 20 대 1의 경쟁을 이긴 경제적인 승리자인 부자들은 자신이 세운 원칙에 철저하다. 내 신념이 옳고 그리고 신념에 따른 행동이 옳다는 관념이 강하다.
자신의 원칙에 나름대로 철저하고, 보통 사람이 하기 힘든 인내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자신의 자녀에게는 엄격하게 용돈을 주면서도 불쌍한 타인들의 이야기에 기꺼이 온라인 송금을 하는 부자들도 있다. 반면에 필자는 또 두 시간에 90만원짜리 스파에 몸을 담그고 나서는 8천만원짜리 모피를 입고 불우이웃돕기 행사에 참석해서 1만원짜리 두 장을 내놓는 부자도 실제 목격한 적이 있다.
필자가 만난 O여사는 그 여러 부자들 중 굳이 분류를 한다면 전자에 속하는 유형이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게 되는 ‘강남의 부자 사모님’에 대한 편견을 그녀를 통해 상당히 바꿀 수 있었다.
3. ‘부부합심’ 부자되는 법: 새는 바가지 고쳐야 돈이 고인다.
미국에서 부자가 된 사람들 중에는 ‘부부 간의 합심’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경우가 많다. 미국의 한 부부는 젊었을 때 온갖 고생을 다했다. 어느 날 약간의 돈을 모으자 부부가 합심하여 회사를 차렸다.
남편과 부인이 주식을 공동출자하였고, 운영은 남편이 맡았다. 부인은 집에서 정말로 알뜰하게 생활했다. 5센트를 아끼려고 집으로 매일 우송되는 온갖 쿠폰을 오려 모으고 허드렛일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수십 년이 흘러서 남편이 운영해온 회사가 공개되었고 주가총액이 수천만달러를 넘어섰다. 남편은 그동안 온갖 뒷바라지를 해준 부인의 주식을 처분한 뒤 그 모든 돈을 부인의 통장으로 입금한 후에 어느 날 저녁에 부인에게 주었다. “여보, 이게 당신이 수십 년 동안 고생하면서 나를 뒷바라지 해준 보람이요. 당신의 돈이니 당신이 알아서 쓰시오”라는 남편의 말에 부인은 그저 “알았어요”라고만 대답하였다.
그 다음 날 아침에 남편이 눈을 뜨니 부인은 여전히 부엌에서 온갖 신문들에 끼어온 쿠폰들을 오려서 지갑에 넣고 있었다. “여보, 당신은 이제 천만달러를 넘게 가진 부자니 이런 일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하는 남편의 말에 부인은 다음과 같이 대꾸하였다. “이것은 내가 평생을 해온 일입니다.”
필자가 아는 서울 강북의 한 부부는 정말 아무 것도 없이 빈손으로 시작했다. 남편은 이북에서 홀어머니와 누이들을 데리고 서울에 와서 명문대학에 합격했다. 대학생이면서도 실질적으로 가장이었다. 손위 누이들이 직장을 다녔지만, 손아래 여동생들도 역시 줄줄이 대학에 진학하였던지라 등록금이 없어서 학업을 중간에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가졌다. 자신도 대학생이면서도 이리저리 돈을 빌려서 어린 누이의 대학등록금을 대주었다.
부인은 전라도에서 홀어머니와 여섯 명의 동생들을 데리고 서울에 와서 의과대학을 다녔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에 만나 결혼을 했다. 부인은 산부인과를 개원했다. 부부는 양쪽 집안의 장남과 장녀로서 자신들의 집안은 물론 동시에 상대방의 집안도 책임져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부부는 아무런 다툼 없이 세 집안(남편의 집, 부인의 집, 공동의 집)을 잘 유지해 나갔다.
그러던 중 은행에서 근무하던 남편이 어느날 부도난 대출에 어쩌다 관여하여서 강제 퇴직을 당했다. 남편은 퇴직금으로 목욕탕을 시작하였다. 성실하게 목욕탕을 운영하면서 벌어들인 돈으로는 항상 부동산에 투자했고, 상당한 재미를 보았다.
부인은 산부인과를 운영하면서도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양쪽의 집안을 보살펴야 하는 부부의 헌신적인 고생에 대한 보답인지 매입하는 부동산마다 엄청나게 뛰었고, 병원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갔다.
이 같은 수십 년 동안의 노력의 결과로 부부는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그러나 이 부부 또한 앞서 소개한 미국의 한 부자 부부의 경우처럼 알뜰한 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다. 남편은 자신의 누이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으나, 별로 쓸 필요가 없는 일에 돈을 쓰는 것에는 불호령을 내렸다. 누이동생의 집에 생일잔치가 있어서 참석한 자리에서도 그는 조카들에게 “내일 아침에 맥주병과 소주병을 꼭 슈퍼에 가지고 가서 공병 환불을 받아오라”고 채근한다.
필자는 부부가 합심하여서 부자가 된 커플들을 많이 보아 왔다. 한마음으로 서로를 믿은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교수님, 저는 워낙 배운 것이 짧고 초등학교만 나와서 막노동을 하였으나, 제 집사람은 고등학교를 나와서 회사에 다녔습니다. 저한테 시집 와서 선지국에 배추 넣고 끓인 국이 값이 싸고 양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십여 년을 그 국만 먹고도 큰 불평 한마디 없었던 우리 집사람 덕분에 오늘날 제가 헬스센터와 빌딩 두 개, 아파트 세 채를 갖게 되었습니다.”
필자 앞에서 말을 더듬는 부자남편의 ‘애처가’(부인을 아끼는 노래)는 감동적이었다.
“교수님, 어렸을 때 돈이 없어서 제 자식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먼저 보냈습니다. 돈을 벌겠다고 30여 년 동안 못을 고르고, 시멘트포대를 날라준 제 마누라는 천사입니다.”
집안에 현찰을 십억원 이상 쌓아둔 어느 사장은 돈이 없어서 자녀를 병원에 못 데려갔던 과거의 가난을 떠올리며 가슴에 못이 박혔지만, 지금은 아내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옛이야기를 하고 사는 처지가 되었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하여도 남편의 말을 믿고 아무런 불평 없이 묵묵히 내조를 해 온 어느 주부는 결국 ‘50억 재산가의 사모님’이 되었다. 하루에 18시간 동안 택시를 몰면서 소변을 참고 운전하느라 방광염에 걸리기도 한 남편과 그런 남편이 벌어오는 돈을 꼬박꼬박 모아서 부동산에 투자해온 한 주부는 훗날 아파트 십여 채를 가진 부자가 되었다.
부부가 결혼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같이 돈을 모으면 저절로 돈이 들어온다. 남편이 바람을 피울 것이라고 의심이 드는 순간에 신문의 할인쿠폰을 모으면 부자가 된다. 부인이 쓸데없이 자녀의 사교육비를 너무 많이 쓴다고 의심이 드는 순간에 야근을 하면 부자가 된다.
평균적으로 20쌍의 신혼가정이 생기면 수십 년 후에 단 1쌍만이 부자가 된다. 손을 맞잡고 시작한 부부생활에서 같이 벌고, 같이 아끼고, 같이 노력하여서 결국 성공한 부부만이 부자가 된다. 부부간의 공동의 노력이 ‘플러스시너지’(plus synergy: 둘이 합해서 더 좋게 되는 것)를 창출하는 경우는 ‘나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결혼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부자부부가 된다.
4. 부자 되려면 부자와 친해져라: ‘혼’ 바치면 ‘돈’ 나온다.
부자가 되는 방법 중 한 가지는 ‘부자에게 팔아서 부자가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부자에게 고급 저택, 비싼 명품, 고수익 펀드를 팔아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꽤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 국민의 5%가 안되는 부자들에게 ‘제품이나 서비스를 팔아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다수 있다.
이들은 부자와 안면을 트고 난 이후에는 부자의 손발이 되어서 부자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면서 ‘부자의 집사’(serviceman/ servicewoman)가 된다. 그러면 알아서 부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해 준다. 1백억원어치 팔고 나면 연봉이 10억이 넘게 된다. 몇 년 지나면 갑부가 된다.
필자가 가끔 만나는 정아무개씨는 보험회사에 일반 사원으로 취직했다가 보험세일즈맨으로 직업을 바꿨다. 전업한 지 1년 만에 부자에게 보험을 많이 팔아서 연봉 10억원이 넘었다. 몇 년째 연봉 10억원을 넘기면서 현재는 그 보험회사의 ‘No.1’이 되었다.
필자가 보기에도 감탄스러울 만큼 정씨는 그야말로 ‘부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는 특기’를 가졌다. 부자가 원하면 10여 시간을 들여서 어렵사리 구한 굴비를 전달해 주고, 부자가 원하면 한 번도 쳐본 적이 없는 골프도 같이 치러 간다.
필자가 정씨를 관찰하면서 느낀 것은 ‘부자가 원하는 것을 채워주는 데 대해 스스로는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부자가 던지는 말을 귀담아듣고 꼭 수행해주는 것이 정씨의 세일즈 비법이다.
그는 필자와 어느 날 아침 7시에 호텔에서 아침을 먹기로 약속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새벽 5시30분쯤에 “제 고객이 호출해서 오늘은 못 뵙겠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아마도 전날 밤에 늦게 잤나보다 하였는데 아침 9시쯤에 필자에게 전화를 해서는 “실제로 부자고객과 아직도 같이 있다”는 것이었다. 부자가 원하면 선약을 깨면서까지 부자를 쫓아다니는 그의 성향을 필자는 탓하지 않았다.
필자가 아는 어느 여성 세일즈우먼은 20여 년 동안 가전제품을 2백억원어치 이상 팔았다. 맨 처음에는 평범한 주부사원으로 시작했으나, 처음부터 부자 손님들과의 관계를 강화해 나가는 데 주력하면서 자신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부자고객의 숫자가 몇 십 명이었을 적부터 손님의 집안 대소사를 항상 챙기고, 손님의 자녀가 대학입학시험 보는 것까지 관심을 가져주면서 손님으로부터 “가족과 같은 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감동한 몇 십 명의 고객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아는 부자친구들에게 전화해서는 “TV 사라”, “김치냉장고 바꾸어라”라고 알아서 세일즈를 해 주었다.
그녀는 20여 년을 부자고객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항상 부자의 편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원칙’을 준수하였다. 절대로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냉장고를 부자에게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가 실제로 좋아할 만한 것을 면밀하게 생각한 후에 부자가 물어보면 대답하는 방식이었다.
많은 세일즈맨(우먼)들이 그저 평범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은 것을 부자에게 주입시키려는 잘못된 사고’ 때문이다. 부자와 다퉈서 이길 수 있는 세일즈맨(우먼)은 이 세상에 없다. 따라서 부자가 요구하는 것에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부자에게 1억원어치 팔면 적어도 1천만원 이상은 그냥 남는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의 ‘사모님’에게 직원용 추석선물로 김치냉장고를 1백 개 정도 팔면 몇백만원이 그냥 남는 것이다.
필자가 아는 어느 명품 판매 여직원은 한 부자여성과 친하게 지내다가 약혼을 파혼당한 적도 있었다. 물론 그 대신 일년에 3억원을 챙긴 적도 있었다. 웃지 못할 사연인즉슨 이렇다.
어느 날 부자고객이 명품숍에 와서 구매를 하고는 자신의 아파트로 배달을 해 달라고 하였다. 며칠 후에 아파트로 오후 4시께 찾아가자 이 사모님이 “우리 아저씨가 올 때까지 고스톱이나 치자”고 하였다. 같이 앉아서 고스톱 판을 벌였다. 그런데 남편이 귀가를 하지 않아 저녁 8시까지 계속 쳤다.
이 여직원은 약혼자와 8시에 명품숍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그곳에는 가지 않고 계속 고스톱을 친 것이다. 휴대폰이 오면 꺼버리고 계속 고스톱을 친 대가로 약혼자와 사이가 틀어지고 결국은 헤어졌다. 물론 그 부자고객을 확실하게 감동시킬 수 있었다. 눈물의 대가는 돈으로 돌아왔다.
필자가 아는 어느 수입차 세일즈맨은 나이트클럽을 경영하는 사장에게 수입차를 팔았다. 손님이 까다롭게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새벽 2시에 휴대폰이 계속 울렸다. “차가 이상하니 지금 우리 가게로 오라”는 손님의 요청에 할 수 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이트클럽으로 달려갔다.
그날 따라 나이트클럽에 손님이 별로 없자 사장이 장난 삼아 자신에게 수입차를 판 그 세일즈맨을 부른 것이다. 이 고객의 이상한 호출에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나이트클럽으로 새벽에 달려갔고, “온 김에 술이나 한잔하자”는 사장의 말에 같이 마셨다.
심지어는 술값을 세일즈맨에게 떠넘기는 사장의 얄팍한 속셈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러 참으면서 그냥 술값을 내고 나왔다. 그런데 이 사장은 며칠 후에 다시 전화하더니 자신의 친구들인 다른 나이트클럽의 사장 세 명을 소개해줬고, 이 세일즈맨은 그 덕에 한꺼번에 세 대의 수입차를 팔았다. 하룻밤 잠을 설친 대가로 결국 그 해 2억원을 챙길 수 있었다.
필자가 아는 어느 여행사 사장은 대그룹의 ‘회장님’을 고객으로 모시고 있었다. 회장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대가로 그 그룹의 모든 비행기표를 도맡아서 팔았다. 어느 날은 회장이 “젊은 여성과 해외 여행을 하고 싶다”는 은근한 요청을 넌지시 던져왔다. 이 여행사 사장은 온갖 곳에다 줄을 놓아서는 결국은 회장의 욕구를 충족시켜 줬다. 물론 그 대가로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그 그룹의 여행 일을 도맡을 수 있었다.
필자가 소개한 이들 다섯 명은 전부 부자다. 현찰만 10억원 이상에, 고배당 우량주를 몇 만 주 이상씩 가지고 있고, 1kg에 2천만원 정도 하는 금괴도 상당히 있고, 수억원짜리 미술품도 가지고 있고, 8억원짜리 빌딩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전부 ‘부자와 친해져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다.
부자와 같이 있어야 부스러기라도 건진다. 부자와 같이 있어야 떡고물이라도 만질 수 있다. 부자를 상대로하는 세일즈는 겉으로 보기보다는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으나, 한번 성공을 시키면 부자들이 스스로 세일즈를 해 주면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고수익 비즈니스’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자에게 팔아라.
부자가 되는 비법 II
5. 부자마인드의 힘: 맨땅에 헤딩해도 봄날은 온다
부자가 되는 데는 ‘자기최면’이 매우 중요하다. 좋게 표현하면 ‘강한 의지력을 가지고 부자가 되려는 꿈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나쁘게 표현하면 ‘돈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는 전문적인 ‘머니 컨설턴트’가 있다. 이 직업은 사람들에게 부자마인드를 심어주고 부자가 되는 길을 코치해주는 것이다. 이들이 가장 강조하는 말 중의 하나가 “부자가 되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쳐라”라는 것이다.
60년대에 경상도에서 올라와서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두 평짜리 솜이불 가게를 시작한 K씨는 ‘부자가 꼭 되겠다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 죽은 조카를 보고 난 후 상경을 결심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이 많은 곳으로 가야 했기 때문.
서울에 올라와서 그는 지독한 고생을 했다. 생일날 딱 한 번 ‘계란 두 알’을 먹는 것이 그의 삶에 유일한 낙이었다. 장사를 몇 년 해서 돈이 좀 모였는데, 어느 날 옆 가게의 사람이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급전을 융통해주고 고리를 받았고, 이에 재미를 붙이면서 사채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꼭 돈을 벌겠다는 마음에 장사보다는 사채놀이에 더 열중하게 됐고 급기야는 가게에 있는 시간보다 다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돈이 필요한 사람들과 만났다. 80년대에 들어서는 아예 가게를 접고 전문 사채업자가 돼서 1백억원 이상의 부동산과 현찰 수십억원을 챙겼다.
하지만 그는 3층짜리 건물에 건평이 1백 평 정도 되는 단독주택에 살면서도 겨울에는 보일러를 안 돌려 온 가족이 이불을 덮고 산다. 그는 아직도 죽은 조카의 혼이 어른거린다고 한다. 하지만 그 덕택에 부자가 되었다.
전라도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도망하다시피 올라온 L씨는 있는 것이라고는 몸에 걸친 옷밖에 없었다. 건장한 신체 덕에 막노동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었으나, 잠자리가 없었다. 그는 한 허름한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주인아저씨에게 제안을 했다. “여기 식당에서 밤에 잠 좀 잘 수 있겠냐”는 것. 주인은 “대신에 밤 2~3시에 끝나는 가게 청소를 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식당에서 의자 다섯 개를 붙이고 잠을 자고, 낮에는 노동판을 전전하였다. 한 3년쯤 그런 생활을 하자 제법 돈이 모였다. 그는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밤 늦게 포장마차에서 팔고 남은 ‘불어 빠진 우동’을 먹는 생활이었지만 그는 “ 반드시 부자가 되고야 만다”는 주문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외워대면서 포장마차를 했다.
어느 날 스포츠센터를 운영하는 한 단골 손님이 그에게 “이번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데 스포츠센터를 인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동안 성실한 L씨를 눈여겨 본 이 손님은 스포츠센터 대금의 10분지 2 정도만 선불을 내고 나머지는 벌면서 갚으라고 하였다. 파격적인 제안에 L씨는 가진 모든 돈을 털어넣고 스포츠센터를 인수했다.
스포츠센터 수입으로 몇 년 후 빚을 모두 갚고는 이후에는 매년 벌어들이는 돈으로 무조건 아파트를 사대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오늘날 아파트 다섯 채를 가진 스포츠센터의 부자 사장이 되었다. 마음속으로 ‘부자되겠다’는 결심을 수십만 번 이상 한 후에 얻은 결과였다.
용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역시 가난 때문에 서울로 ‘도망친’ O씨의 사례. 우여곡절 끝에 그는 용산전자상가에 취직했다. 리어카 행상과 배달로 성실하게 일했고, 한 허름한 도매 점포를 맡게 되었다. 용산과 청계천 세운상가에 점포 세 개를 가진 주인아저씨는 매일 등산을 가고, 대신 O씨가 용산의 점포를 맡아서 관리해 나갔다. 엉덩이가 밖으로 다 삐져 나오는 좁디좁은 화장실에 갈 때마다 그는 문고리를 잡고는 “나는 부자가 된다”를 속으로 외워댔다.
도매 매출이 계속 늘자 주인아저씨가 아예 제안을 했다. 테크노마트에 가게를 하나 알아봐 줄 터이니 알아서 키우고 집세만 내라는 것이었다. 강변역 테크노마트의 가게를 맡는 날 그는 하도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나는 부자가 된다”는 일념하에 하루에 열다섯 시간 이상 일을 하였고 그래도 전혀 피곤한 줄을 몰랐다. 하루에 세끼를 먹어대는 라면도 전혀 질리는 줄 몰랐다. 라면을 먹을 때 그는 ‘국내 최고의 재벌인 이병철 회장은 라면 먹고 싶어서 비행기 타고 일본 가서 먹었고, 아들인 이건희 회장도 어떤 때는 하루 세끼를 라면만 먹었다는데 나 또한 그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스스로 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라면 인생’에서 현재 십억 이상을 강남의 모 은행에 현찰로 맡기는 어엿한 PB 고객이 되었다.
이들은 전부 ‘의지의 화신’들이다.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고 달려든 사람들이다. 이런 이들만이 부자가 될 자격이 있다. 우리나라의 전체 부자 중에서 자수성가형 부자가 약 60% 정도 되는데 그 중의 대부분이 위에서 소개한 이들처럼 독한 마음을 먹고 온갖 고생을 다 한 결과로서 부자가 된 것이다.
부자 세미나에서 필자가 청중들에게 “부자가 되고 싶으면 아주 독한 마음을 먹어라”라고 강조를 하면 대부분이 열심히 듣는다. 그러나 막상 강의를 끝내고 대화 시간에서는 대부분이 금방 나약한 마음을 드러낸다. “사실 말이 그렇지, 그게 어디 쉽느냐”는 반문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필자는 ‘그렇게 나약해서 어떻게 부자가 되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에 있는 부자는 전체 인구의 고작 1~2% 정도다. 아무리 넓게 잡아도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5%가 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오늘 태어난 신생아 20명 중에서 수십 년 후에는 단 한명만이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20대 1의 경쟁을 뚫은 사람만이 부자가 될 수 있다.
필자의 말을 잘 믿으려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학교 제자 가운데 필자가 직접 그 과정을 목격한 생생한 실례를 하나 들어주겠다. 시골에서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여대에 들어온 이 제자는 졸업 후 집에서 단 한푼도 받지 않았다. 서울여대를 3년 다니면서 학비, 생활비를 스스로 벌고 그리고 통장에 현찰로 8천만원을 모았다.
그 제자가 어느날 필자에게 제출한 리포트에는 “교수님, 제가 서울여대 들어올 때의 목표가 졸업할 때 아파트를 한 채 산다는 것이었는데, 벌써 3학년인데 아직 8천만원밖에 모으지 못했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집에서 한푼도 받지 않고 대학 3년의 학비(약 1천8백여만원), 최소한의 생활비(약 3백60여만원, 월 10만원씩)를 쓰고도 8천만원을 모은 22세의 가냘픈 여대생의 이야기다.
이 제자는 어떻게 돈을 벌었을까? 그녀는 학교에서 근로학생(한 학기에 40만원)을 계속 했고, 편의점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시간당 3천원 정도)를 하였고, 번화가에서 좌판을 펼쳐놓고 액세서리를 팔았고(하루에 약 십만원 정도의 매상) 그리고도 돈이 되는 일은 아르바이트를 쉴 새 없이 하였다. 그녀는 학교 교과서를 샀을까? 아마 전혀 사지 않고, 선배에게 떼를 써서 얻어서 보았을 것이다. 식사는 아침과 점심은 대충 굶고 저녁만을 라면에다가 찬 밥을 말아 먹었을 것이다.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미국의 베스트셀러인 <부자 되는 법>이란 책에는 글이 적혀 있다. ‘부자가 되려는 생각을 열심히 하면, 부자가 되려는 행동이 저절로 나온다’라고. 부자마인드란 부자가 되겠다는 독한 마음이다. 미국의 초강력 베스트셀러의 결론은 ‘부자가 되고 싶으면 독한 마음을 먹어라’라는 것이다.
6. 눈속임도 마다않는 부자들: ‘개’처럼 벌었다면 ‘정승’처럼 쓰자
‘부자가 되고자 한다면 눈속임 능력도 필요하다?’
필자는 이번 주제를 잡으면서 적지않은 고민에 빠져야 했다. 하지만 어차피 필자는 도덕 선생이 아닌 부자학 선생이고, 이 코너는 부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이기 때문에 그냥 이 주제에 관련된 ‘특이한’ 부자 두 사람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부자가 되는 길은 전부 긍정적이거나 바람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니 좀더 솔직히 들여다보면 부정적인 요소가 더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은 남들에게 부풀려서 다소 개운치 않은 이득을 취해서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나쁘게 표현하면 ‘사기성이 농후한 이’들이 부자가 되는 일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 강북에 거주하는 김아무개씨는 3~4개월마다 사업자등록을 새로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변에서는 “신규사업자 등록에 관한 한 세계기록보유자일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필자가 전해들은 김씨의 재산 불리기에 대한 ‘독특한’ 방법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그는 새롭게 건축된 빌딩의 1층을 세 얻어서는 슈퍼마켓을 개업한다. 보통 슈퍼마켓은 지하가 보통이다. 이유는 슈퍼마켓의 마진이 보통 15~20% 이내로 비교적 적기 때문에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한 지하가 유리하기 때문이란다. 물론 대기업이 뒤를 받쳐주는 소위 메이커 슈퍼마켓은 1층에 버젓이 자리를 잡기도 하지만 일개 개인이 신축 건물의 1층에 슈퍼마켓을 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김씨는 보증금 1억원에 월 임대료 1백만원을 내고 50평을 얻어서 슈퍼마켓을 차리고는 온갖 생필품(라면, 분유, 휴지 등)들을 근처의 경쟁 슈퍼들보다 약 10% 정도 싸게 판다. 개점 첫날은 4만5천원 정도 하는 쌀 20Kg을 3만5천원에 개점 축하행사 명목으로 팔아대고는 지나가는 할머니를 불러들이면서 “어머님 반갑습니다”를 연발해댄다. 이렇게 약 보름 정도 개점 행사와 엄청난 세일행사를 해대면 50평짜리 슈퍼마켓은 바글바글해지고 엄청나게 성황을 이룬다.
보름쯤 지나면 김씨는 동네의 부동산업소에 아무도 몰래 가서는 브라질행 비행기 티켓을 보여주면서 “브라질에 이민 간 동생이 모시고 계신 어머니가 위독해서 브라질로 바로 가야한다”는 이야기를 꾸며댄다. 김씨의 이런 가게는 목돈의 퇴직금을 싸들고 부동산 중개업소를 기웃거리는 정년 퇴직자들이나 명퇴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유혹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매시간 수십 명이 바글바글대는 슈퍼마켓의 매력에 금세 빠져들게 된다. 이들은 눈 앞에서 하루에 수백만원 넘게 매출이 나는 것을 보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비록 일 매출은 수백만원을 육박하나 순익은 오히려 마이너스 수십만원이 나는 슈퍼마켓이다.
어리숙한 이들이 권리금으로 5천만원을 내겠다고 하면 “너무 쉽게 넘기는 것 같다”고 하면서 마지못해 넘기는 듯 시늉한다. 하지만 그 순간 바로 3천만원 이상(개점행사와 세일로 손해본 약 1천5백여만원을 제외하고도)을 챙기는 김씨는 이 방면의 ‘프로’인 셈이다.
김씨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슈퍼마켓 넘기기, 목욕탕 넘기기, 술집 넘기기를 10여 차례 해서 10억원이 훨씬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목욕탕 넘기기는 ‘무료목욕권’을 남발해서 손님을 끌어들였고, 술집 넘기기는 미모가 뛰어난 전직 탤런트급의 여성을 마담으로 활용해서 손님을 당긴 다음에 넘기는 것이다.
재미를 보고난 후에는 모은 돈을 아파트와 빌딩 매입에 투자하고 또 파는 과정을 10여 차례 하면서 꽤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현찰로 50억 이상이 모이자 ‘이제는 어느 정도 되었으니 쉬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으나 그것도 마음뿐, 지금도 가끔 왕년의 실력을 발휘해서 ‘추억의 점포 넘기기’를 하곤 한다고 필자에게 고백했다.
서울 강남에 사는 박아무개씨도 역시 가게 넘기기의 달인급 선수인데, 그 방식은 좀 다르다. 그는 종업원에게 넘긴다. 조그만 점포를 오픈하고 종업원을 세 명 정도 고용한 후에 어떻게 일을 하는지를 면밀히 관찰한다. 그중에서 쓸 만한 친구를 점 찍어두었다가 열심히 훈련시킨다.
점포가 어느 정도 돌아갈 정도가 되면 자신은 새로운 점포를 물색한다. 그리고 이 점포는 미리 점찍어둔 성실한 종업원에게 넘기면서 대신 물건대금을 받는 것이다. 물론 돈이 없는 종업원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외상도 해주면서 소유권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가 물대를 전부 갚으면 점포를 완전히 넘겨주는 방식을 택했다.
박씨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점포를 열고 키워놓고는 쓸 만한 종업원에게 넘기고 더 큰 새로운 점포를 신규로 열고 이를 또 다른 종업원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해서 안전하게 키워놓은 값(권리금 형태)과 물건 값에 이윤을 붙여서 이득을 챙기는 방식으로 돈을 모았다. 물론 점포를 넘겨받은 종업원도 사장이 될 수 있으니 서로 좋은 방식이긴 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또 ‘경제의 논리’인 셈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점포에 팔리지 않는 물건들이 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에도 돈 벌어들이는 데에 귀신 같은 재주를 가진 박씨는 눈속임 수법으로 이런 위기를 극복한다.
팔리지 않은 물건들에 대해 종업원들에게는 매입 가격을 절대로 노출시키지 않고 자신이 직접 도매상에게 결제를 한다. 종업원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점포와 창고에 쌓여 있는 물건 값이 얼마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든 점포는 운영이 잘 되니까 점포 주인인 박씨의 “인수하라”는 말에 선뜻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박씨는 거의 팔리지 않은 물건까지 종업원에게 넘겨서 세 배 이상 이득을 챙기는 일도 있었다. 제법 재산을 모으고 업계에서 명성도 제법 쌓은 박씨인지라 ‘이제 더 큰 욕심 내지 말아야겠다’ 하면서도 가끔 추억의 ‘종업원 넘기기’를 한다고 한다.
남으로부터 너무 많은 이득을 빨리 보려고 하는 경우에는 김씨나 박씨와 같은 일들을 가끔 저지르게 된다. 이들은 술자리에서 술이 좀 과해지면 “교수님, 제가 나쁜 놈입니다”라며 자기 반성인지, 푸념인지 명확치 않은 하소연을 쏟아내곤 한다. 그렇다고 필자가 그들을 크게 나무라거나 탓할 수가 없다. 대신에 그들의 심적 안정을 도모해 주려고 이런 말을 전한다.
“미국에서도 1800년대에는 엄청난 과오를 저지르면서 부자가 된 이들이 많습니다. 부자가 되고 나서 그들은 자신이 축적한 부 가운데 상당수를 자발적으로 사회에 돌리면서 심적 안정과 사회적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한때 문제가 있었던 미국의 부자들은 거의 전부 종교를 절대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필자는 김씨와 박씨 같은 이들이 종교에 심취해서 마음을 순화하고 벌어들인 돈 중의 일부를 고아원과 양로원 등에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특이한’ 부자들이 범부인 필자의 평범한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7. 알부자의 ‘블루오션’ 전략: 가시밭길 개척해야 ‘좁은 문’ 들어간다
부자가 된 사람들의 상당수는 ‘경쟁을 하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가는 블루오션 전략’을 사용하여 왔다. 다른 사람들이 한 것과 비슷한 일들을 수행해서는 결국 비슷한 정도의 이익밖에 올릴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은 일들을 수행하게 되면 그들보다 수십 배, 아니 수백 배의 이익을 올릴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걸어가지 않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새로운 부자의 길’이 된다. 타인들보다 훨씬 더 험난한 길을 스스로 찾아서 걸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부자다.
김아무개 여인은 어린 시절부터 지긋지긋한 가난을 겪으면서 살아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등으로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의 액수는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아껴주는 선생님들 덕택에 학교의 모든 장학금을 싹쓸이 하다시피 해서 받는 방법으로 간신히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교 시절 역시 장학금 수혜와 함께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간신히 졸업했다. 대학 진학 역시 자신의 성적보다 한참 낮춰서 등록금이 아주 저렴한 국립대학을 선택했다.
졸업 후 작은 중소기업에 취직해서는 받는 월급을 몽땅 저축하였다. 김 여인이 중소기업을 다니던 그때만 하더라도 국내에는 부자에 관련된 책이라고는 단 한 권도 없던 시절이었다. 매일같이 퇴근길에 부자의 길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대학 때 배운 경제원론과 경영학원론의 책을 수십 번 다시 읽으면서 ‘돈을 모으는 데에는 저축과 동시에 새로운 투자가 절대적’이라는 점을 외우고 또 외웠다.
월급을 몽땅 저축하고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쌀과 반찬은 시골의 부모님이 보내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한 달에 자신의 돈으로 사는 것은 ‘소주 한 병과 라면 2개뿐’이었다. 가끔씩 혼자서 라면 안주에 소주를 한잔씩 마시는 것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화장품은 무료로 나눠주는 샘플을 죄다 주워 모았고, 옷은 월급 받는 다음날 몇 천원짜리 한두 벌 사는 것이 전부였다.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만난 아주 비슷한 처지의 남자를 유심히 관찰하였다고 한다. 점잖고 말은 없으나 척 보면 가난의 때를 전혀 씻지 못한 남성이었다. 김 여인은 ‘바로 저 남자다’라는 생각이 들자 곧바로 결혼 결심을 했다.
결혼은 쉽게 성사되었으나, 김 여인은 아주 독한 마음을 품었다. 남편에게 가장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길이 사우디에 가는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결국 망설이던 남편을 기어이 사우디 건설현장에 파견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직후 그녀는 곧바로 모든 짐을 정리해서 시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사우디에서 보내는 돈은 몽땅 통장에, 자신이 버는 월급도 몽땅 통장에 집어넣고, 생활비는 시집에서 해결하겠다는 것이 김 여인의 원대한 계획이었다. 시집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독한 마음을 먹었고,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부자 되는 길이라는 것을 내심으로 강조하였다.
80년대 들어서니 그동안 모은 돈이 꽤 되었다. 당시 국내에서 ‘새로운 투자’의 방법으로는 부동산밖에 없다는 점을 주변을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아파트는 물론 상가, 원룸과 오피스텔 까지 손댔다. 결국 오늘날 김 여인은 아파트 10여 채에, 30여 개의 원룸이 있는 빌딩도 소유했고, 상당한 돈이 예금되어 있는 통장도 여럿 갖게 됐다.
그녀가 ‘알짜 부자’라는 소문이 나면서 주변에서 유혹은 끝없이 들어왔다. 한창 주식이 붐을 이룰 때 “주식에 한번 투자해 보시라”는 여러 번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내 주식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위험’이 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 김 여인이 주식을 회피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김 여인은 대학 때 배운 경제원론과 경영학원론의 기본적인 원칙에 아주 충실했던 셈이다. 위험이 있어야 수익이 커진다. 그러나 위험을 내가 통제할 수 없을 때에는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다는 원칙이었다. 김 여인이 경험으로 나름대로 터득한 ‘부자학 개론’은 이렇다.
“부동산은 일단 매입한 이후에 내가 처리를 하지 않는 한에는 위험이 상당히 낮다. 물론 부동산 거품이 일시 꺼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절대 한없이 지속적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한국은 땅이 유한한 국가다. 인구가 늘어나면 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늘어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부동산값은 인구가 느는 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김 여인은 왜 주식 투자는 철저히 외면했을까. 주식의 가격은 회사 내부의 가치와 경쟁상황, 그리고 다른 외적인(정치적·세계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경제원론과 경영학원론에서 가르쳐주는 기본 시사점은 주식가격의 결정요인은 너무나 많고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김 여인은 복잡한 것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데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확신을 가졌다.
인생은 ‘단순하면서도 강한 방법들’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래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김 여인의 전략이었다. 김 여인이 택한 단순하면서도 강한 방법들은 ‘장학금을 계속 타는 것, 들어온 돈은 무조건 아껴서 모으는 것, 벌 수 있는 대로 계속 벌어들이려면 남편을 사우디에라도 보내는 것, 인구가 증가하는 대로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부동산을 계속 매입해 두는 것’이었다. 그녀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 힘든 그녀만의 독특한 블루오션 전략을 개발하고 이를 충실히 실행한 끝에 부자의 반열에 올라섰다.
일반인들은 인생에서는 실패가 허용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부자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부자들은 조금이라도 나태해지면 곧바로 자신이 부자의 반열에서 밀린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항상 새로워져야 한다. 매일같이 블루오션 전략을 찾고 그리고 매일같이 실행하여야 한다’라고 철저하게 믿고 있다.
대한민국은 현재 국민소득 1만달러의 문턱에 걸려 있다. 물론 1만달러는 넘었으나 당분간 2만달러에 자력으로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은 지금 ‘일반인병’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부자국가(wealthy nation)가 되려면 우리는 1960~70년대의 산업화시대보다 훨씬 더 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아무 것도 없어서 고속도로를 내고(아무 것도 없어서 사우디에 인력을 파견하고), 아무 것도 없어서 전국민이 절약하는 새마을운동을 하는 블루오션 전략으로 성장했다.
2000년대에는 그때보다는 규모가 수백 배 더 커졌으나 이제는 더 강하고 새로운 블루오션 전략들(고난도의 기술개발 지속화, 대체에너지의 끊임없는 탐구, 해양자원의 무조건적 개발, 개인들의 부자정신화 교육 전파, 전국가적인 절약운동 등)이 박정희 정권 시대보다 더 강렬하게 전개되어야 부자국가가 된다. 해이해진 심리적 인플레를 과감히 버리고, 김 여인처럼 매일같이 새로운 길들을 찾아야 부자가 될 수 있다. 개인도 그리고 국가도 역시 마찬가지다.
부자가 되는 비법 III
8. [자수성가형 vs 상속형]
3천원짜리 밥 먹는 아버지, 매일 외제차 바꿔타는 아들
자수성가형 부자들은 한마디로 ‘짠돌이’다. 그러나 그 자손들은 반대로 또 ‘헤픈 이’들이 많다. 왜 그럴까?
필자가 분석하기로는 ‘부자가 되는 데 걸린 기간’과 ‘부자로 사는 기간’이 이런 일과 큰 상관관계가 있다.
이 두 가지의 시간 개념으로 우리나라의 부자들을 분석해보면 부자가 되는 데 걸린 기간이 상당히 길고 부자로 사는 기간이 비교적 짧은 사람들은 거의 전부 자수성가형 짠돌이다. 반면 그 자손들은 부자가 되는 데 걸린 기간이 상당히 짧고 부자로 사는 기간은 비교적 길다. 이들은 또 거의가 어김없이 ‘상속형 헤픈 이’다.
부자가 되는 데 걸린 기간(PBW: Period for Becoming Wealthy)이란 부자가 되겠다고 마음 먹고 나서 실제로 부자가 되기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통계적으로 볼 때 20세에 결심을 하고 열심히 돈을 모은 이들이 대략 45세쯤이면 10억원 정도를 모은다. 20세부터 45세까지 약 25년이 걸린 것이다.
부자로 사는 기간(PWL: Period for Wealthy Living)은 부자가 된 이후에 이 세상을 하직하거나 혹은 몰락하기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45세에 부자가 된 사람이 70세에 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 사람은 약 25년 동안 부자로 산 것이다.
서울 강북에 사는 K씨는 재산이 수백억원대에 달하나 60세가 넘은 현재에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짠돌이다점심은 3천원짜리만 먹는다. 한 달 내내 3천원짜리만 먹다가 어느 날 옆 좌석에서 먹는 것이 하도 먹음직스러워서 보여 큰 맘 먹고 5천원짜리 제육볶음을 시켰더니 식당 아주머니가 “그거 비싼 건데, 5천원짜린데”라고 두 번씩이나 얘기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K씨가 어느 날 30여 년 만에 우연히 전남의 고향친구를 만났는데 너무나 반가워하며 데리고 간 곳은 동네의 허름한 찻집이었다. 이 찻집에 와서 항상 맥주를 달랑 두 병만 시키고 안주는 절대로 시키는 법 없이 공짜로 주는 팝콘만 먹고 가던 K씨가 이날은 국산양주인 딤플을 시키자 주인 여자는 “별일이야. 어쩐 일이지”를 연발하였다.
평소 맥주 2병만 시킬 때는 인사도 잘 안하던 주인 여자가, 딤플을 시킨 이후 옆자리에 앉아서 술도 따르고 친절하게 대하자 K씨는 주인 여자의 손을 은근히 잡고는 “내가 자주 와서 딤플 먹을게”라고 속삭였다나.
K씨 부부는 대학 근처에도 못 가봤다. 배움에 대한 한이 맺힌 이들 부부는 아들 3형제의 교육만큼은 절대 돈을 아끼지 않았다. “아들 셋을 반드시 다 서울대학에 보내겠다”고 공언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 달에 수십만원 이상 하는 과외선생을 10여 명씩 끌어댔다.
하지만 돈으로만 안되는 것도 있었다. 결국 장남은 전문대를 졸업하고 사업하겠다고 나섰고, 차남은 3수를 한 이후 군대 갔다와서 그냥 사업하겠다며 학업을 접었다. 막내는 아예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보내봤으나 10년째 살면서도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아들 삼형제’ 또한 엄연히 부자다. 부자도 큰 부자다. 이들은 아버지가 가진 빌딩이 여덟 개라는 사실을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다. 큰아들은 “요새 텔레콤들이 뜨니까 나도 텔레콤(회사)이나 하나 차려야겠다”며 사무실을 내고는 명함에 ‘XX텔레콤 대표이사’라고 찍었으나 막상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침에 여직원 혼자 있는 사무실에 나와서 전날 술친구들에게서 전화 온 것을 체크해두고는 기사가 모는 BMW를 타고 나간다. 차를 타고 다니다가 길거리에서 ‘스타일이 괜찮은 여성’을 발견하면 바로 명함을 주면서 “연락하라”고 유혹한다. 전화가 걸려오는 낯선 여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현재 K씨 장남의 삶의 낙이다.
둘째아들은 하루에 양주 ‘발렌타인 30년산’을 서너 병씩 작살내는 것이 하루의 ‘업무’이자 취미다. 아침에도 술에 취해 있고, 점심과 저녁 때도 마찬가지다. 취미는 ‘카 컬렉션’(car collection: 자동차를 여러 대 가지고 심심하면 바꾸는 것)이어서 자기 소유 차량만 여섯 대다.
페라리, 아우디, 푸조, 렉서스, 다이너스티, 쏘나타 중에서 아침의 술기분에 따라서 그날 탈 차를 고른다. 항상 취한 눈으로 보면 세상 모든 여성이 ‘환상적인 미모’를 지닌 것으로 보이니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하고 내적(?)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 차남의 하루다.
셋째아들은 10년 이상을 다니는 미국대학이 왜 이렇게 졸업하기 어려운지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으라고 경영학공부를 하라고 해서 하기는 하는데 “영어가 별로 필요없는 경영수학이나 회계원리 과목은 할 만한데, 맨 영어로 하는 기업법이나 마케팅은 무슨 소리인지 도저히 안 들린다”며 푸념이다.
그동안 수없이 다닌 라스베이거스나 아틀랜틱시티의 도박도 이제는 별로 재미없다. 가끔 걸려오는 큰형과 작은형의 전화를 들으면 ‘형들은 한국에서 인생을 즐기며 사는데 나는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만 들고 그때마다 외로움을 달래려고 수많은 여성을 찾아나선다. 어머니가 매월 5천달러 이상씩 꼭 부쳐주니 술값은 충분하다.
필자가 국내외에서 아는 수천 명의 부자들 중에서 ‘자기절제’(self-discipline)가 안되는 부자들은 거의 전부 ‘물질적으로는 풍요하나 정신적으로는 너무나 빈곤하여서 생활은 돈없는 일반인들에 비해 너무나 허망하고 덧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거의 모든 자수성가형 부자들은 돈을 버는 과정에서 겪었던 자신의 참혹한 과거사를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소비하는 법을 잘 모른다. 과거 1천원을 아끼려고 수km를 걸었던 기억이 남아서 손자에게 과자값 1천원을 주는 것이 아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반면 상당수 자수성가형의 자녀들은 돌이 되자마자 ‘돌선물(?)’로 자신도 모르는 주식을 몇 억원어치나 물려받고, 초등학교 입학 때 수만 평의 땅을 상속받고, 중학교 졸업선물로 1kg에 2천만원 정도 하는 금괴를 수십 개 받고, 고등학교 졸업선물로 1억원짜리 스포츠카를 받고, 그리고 미국 유학 가서 두 명의 도우미를 두고 산다.
그들은 부자가 되는 데 몇 년 안 걸렸기 때문에 부자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눈물과 한숨이 필요한지 모른다. 생이 편안하다고 느끼게 되면서 생각나는 것은 24시간 동안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증과 그 무료함을 달래줄 자극 같은 것들이다. 그러다 마약과 도박의 향락을 찾아나서기도 한다.
물질이 가져다 주는 헛된 즐거움을 자제시키려면 어떠한 형태든지 ‘종교’에 귀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종교를 불문하고 사이비 종교만 아니라면 거기에 귀의해서 ‘세상은 물질과 정신이 혼합된 조화’라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절제하는 방식을 터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도, 또 계속 부자로 살기 위해서도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절제의 미학이다.
9. [부자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그들에겐 뭔가 ‘이상한’ 것이 있다
부자는 특이하다. 자수성가형 부자든, 전문가형 부자든, 상속형 부자든 부자들에겐 일반인들과는 상당히 다른 ‘이상한’ 구석이 있다.
부자의 관점에서 보면(through the eyes of the rich) 부자들은 ‘정상’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관점에서 보면(through the eyes of the general) 부자들은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행동을 한다.
필자가 20년 전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도 미국부자들의 ‘특이한 행동’을 많이 보았다.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오늘날 국내의 부자들을 두루 접하면서 역시 마찬가지의 느낌이 든다. 그런데 정작 부자 자신들은 그것을 하나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여기서 소개하는 몇 가지 사례는 단순한 해프닝이나 순진함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부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부자들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들의 사고와 행동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데서 부자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을 발견할 수도 있다. 먼저 부자를 알아야 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당한 재력가인 어느 중소기업체의 사장은 아주 특이한 버릇이 하나 있다. 자신의 발을 여성이 씻어주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다. 아침에 출근하면 여직원 둘이 대야에 물을 떠와서는 양발을 정성껏 씻겨준다.
그리고 여직원 둘은 자신의 업무를 시작하고, 사장은 그때부터 자신의 일을 시작한다.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 않고 그냥 발만 씻어주는 것이다. 내가 주인인 회사의 월급을 받는 여직원에게 발을 씻겨달라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장의 행태였다.
어느 부자에게 외동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과외선생을 모셨다. “과외비가 얼마냐”는 질문에 이 과외선생이 “일주일에 두 번 나오고 20만원”이라고 하자 이 부자가 10%만 깎아달라고 하였다. 과외선생은 과외비 깎는 부자는 처음 보았지만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한 달쯤 지나고 과외선생이 통장을 정리해보니 부자가 일주일에 두 차례씩 매번 18만원을 한 달 내내 입금한 것이 아닌가. 다음날 과외선생은 부자에게 “어떻게 과외비를 매번 18만원씩 입금하였느냐”고 물어보니 부자는 “과외비가 일당 18만원이 아니었냐”고 하는 것이었다. “한 달치가 18만원이라고 하자 부자는 웃더니 그 다음달에 10%를 도로 인상해서 20만원씩 매월 입금하였다. 이 부자는 과외비가 하루치인지 한 달치인지를 몰랐던 것.
강남의 고급 레스토랑에 어느 부자가 들어왔다. 혼자 앉아서 식사를 시켰는데 주위가 너무 산만했다. 이 부자는 평생을 자신의 숟가락, 젓가락만을 가지고 항상 조용하게 밥을 먹는 습성을 갖고 있다. 그 날도 역시 마찬가지로 주문한 음식이 자신의 전용 수저와 같이 나왔다.
막 수저를 들려는데 아무래도 주위가 너무 산만해 신경 쓰였다. 그는 식당 매니저를 불러 “이 식당에 있는 사람들의 식사비를 전부 내가 계산할 테니 전부 내보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매니저는 VIP 고객의 요청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주변 손님들이 하나둘씩 나가기 시작하였고 한 5분쯤 지나니 레스토랑에는 그 부자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수저로 식사를 한 뒤 계산을 하고 그냥 기분 좋게 레스토랑을 나섰다. 혼자 즐기려는 부자의 특성이 고스란히 나타난 것이다.
부자 여성들을 주로 상대하는 명품점의 한 여성 샵매니저로부터 들은 얘기다. 거액을 상당히 쉽게 번 어느 부인이 있었는데 취미는 쇼핑이었다. 그것도 자신을 대하는 세일즈 여성들의 태도를 보고 쇼핑의 양을 결정하는 것을 즐겼다.
어느 날 이 명품점에 부인이 나타나서는 몇 가지의 옷을 눈에 찍었다. 부인의 눈길이 자주 가는 것을 눈치 챈 매니저는 “사모님에게 아주 잘 어울린다”며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평소 이 부인은 자신이 대학을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열등감이 있었고, 특히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 여성 매니저에게는 남다른 열등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부인은 일부러 이 매니저에게 “어디 의상학과 나왔어?”라며 넌지시 떠보았다.
“예, ○○여대 의상과 졸업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이 부인은 “나랑 여고 동창이 한 명 있는데 그 대학 의상과 나왔어. 그런데 요새 이혼당하고 그냥 놀아. 내가 가끔 도와주어서 먹고 살아. 대학 다닐 필요가 별로 없어”라며 비꼬듯 말했다.
눈치 빠른 매니저는 “예, 맞습니다. 대학 다닐 필요 별로 없습니다. 저도 돈만 썼지 배운 게 하나도 없어요”라고 재빠르게 받아줬다. 그 부인은 그날 수백만원어치 옷을 샀다. 만약에 이 매니저가 자존심을 좀 세우겠다고 “아닙니다. 그래도 대학을 나오는 것이 좋지요”라고 했으면 바로 발길을 돌리고는 다시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 부인은 쇼핑해주는 대신에 자존심을 대접받는 것이다.
대기업체의 CEO를 5년 이상 하다가 퇴직한 어느 기업가의 이야기다. 퇴직금만 10억원을 훨씬 넘게 받은 그는 그룹에서 건설한 고급아파트도 하나 챙겨두었고, 그동안 받은 월급도 어느 정도 모아두었으며 퇴직금도 두둑히 받았다. 그런데 이 부자는 수십년간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 모든 것을 회사에서 다 처리해준 탓에 자신이 직접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사장에서 고문으로 일년 남짓 대접받다가 그것도 끊긴 며칠 후 어느 모임에 나갔는데 지하철을 타고 지상으로 나왔더니 또 걸어야 했다. 거리가 얼마 안된다는 이야기에 버스를 타려고 하였더니 버스가 문이 앞에도 있고 뒤에도 있는 것이었다.
어느 쪽으로 타야 하는지를 몰랐다. 집에다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려고 휴대폰을 꺼냈는데 집 전화번호를 알 수가 없었다. 며칠 전까지 매일 비서가 집에 연결을 해주어서 자기 집 전화번호를 기억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버스를 타는 사람들을 쳐다보니까 전부 앞으로 타길래 자신도 그냥 올라탔다. 사람들이 무슨 백이나 지갑 같은 것을 버스기사 앞에다 대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그냥 지갑을 꺼내서 대고는 들어갔다.
운전기사가 “버스비를 내라”고 부르자 그는 “아까 다른 사람처럼 나도 똑같이 지갑을 보여주지 않았느냐”고 말해서 버스기사는 물론 그 버스 안의 모든 사람이 어이없어하였다. 정말 아주 오랜만에 버스를 탄 어느 부자가 겪은 일이다.
어느 벼락부자는 갑자기 많은 돈이 생기자 큰 마음 먹고 최고급 외제수입차를 한 대 샀다. 그동안 2천만원짜리 차만 한 20년 이상을 몰아왔던 터에 갑자기 시가 1억원 이상을 주고 산 최고급 차를 타보니까 아주 편안하였다. 무엇보다 이 차는 소음이 전혀 없었고, 외부에서 들려오는 경적 소리나 차 소리, 떠드는 소리 등을 완벽하게 차단해주고 있었다. 자신만이 별천지에 따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비싼 것이 좋긴 좋구나’ 하는 흡족한 마음으로 운전하던 그는 어느 날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왔다. 창문을 살짝 열고 달렸는데 바람 소리가 심하게 들렸다. 이 벼락부자는 차를 한 곳에 세우고는 며칠 전에 자신에게 “요즘 신기술로는 뭐든지 안되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너스레를 떨던 세일즈맨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여보, 난데 창문을 여니까 바람 소리가 너무 심해. 바람 소리 안 나는 차는 얼마 정도 해?”라고 묻더라나? 그야말로 돈이면 뭐든 안 되는 것이 없다고 믿는 졸부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 해프닝이었다.
10. [가족경영으로 판 키우는 법] 제대로 ‘사람’ 심어야 ‘돈’ 열린다
“교수님,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막연하게 물어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참 딱하게도 필자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다. “당장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장사를 하시오”라고.
부자가 되는 가장 근접한 방법 가운데 첫 번째 길은 ‘혼자서 장사해서 자수성가하는 것’(self-employed business)이다. 이렇게 해서 돈이 웬만큼 모이면 아내, 동생, 처남, 자녀들과 같이 자신이 하던 장사를 확대해야 한다.
즉 부자가 되는 두 번째 길은 ‘가족이 모여서 장사를 하는 것’(family-owned business)이다.
유럽의 전통적인 부자 가문은 거의 전부 가족경영을 하면서 부자가 된 경우다. 이것은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텍사스에서 부를 일으켜 유명해진 ‘부시 가문’이 가장 비근한 예다. 세계적인 명품을 생산해서 성공시킨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부자 가문 역시 거의 전부가 가족경영을 통해 부를 축적하였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은 가족경영의 사례들이 곳곳에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서 상경해서는 막노동판을 전전하고, 여기서 돈을 조금 모으자 사채놀이와 점포 운영을 통해 부를 이룬 김아무개 사장은 필자가 만나본 부자들 가운데 여기에 가장 적절하게 해당하는 사례다. 김 사장은 자신이 애써 키운 점포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자 이 가게를 아내에게 맡겼다.
장사 경험이 전혀 없던 아내가 점차 가게에 소홀해지자 김 사장은 “한 번만 더 소홀히 하면 이혼당할 줄 알라”는 ‘협박’도 불사했다. 아내는 한번 한다면 기어이 하고 마는 남편의 성격을 잘 아는 터였다. 김 사장은 가게를 아내에게 맡기고 자신은 사채놀이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돈이 돈을 낳는다’는 것이 또한 김 사장의 돈 버는 철학이었다.
사업 영역이 확대되고 일손이 달리게 되자 김 사장은 형제들과 처가 식구들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안양에서 교사를 하고 있던 누이동생 부부를 불러 올렸다. “내가 돈을 대줄 터이니 점포를 맡아라. 네 올케 언니가 하는 것을 잘 보고 그대로 해라.” 오빠의 엄명에 마지못해 떠맡았지만 의외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
김 사장은 어느 날 라디오에서 한 경영학 교수가 “점포가 여러 개 있어야 규모의 이익이 생긴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곧바로 책방으로 달려갔다. 점포 경영에 관한 책들을 사가지고는 밤새 읽었다. 김 사장은 처가의 처남과 처사촌까지 끌어들였다. 자신도 사채놀이 틈틈이 점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회 있을 때마다 점포를 내곤 해서 모두 다섯 개를 운영하였다.
김 사장은 이내 준재벌 수준에 올랐다. 매월 들어오는 현찰만 3억원이 넘었고, 이 돈을 적절하게 아내와 인척들에게 나누어주고, 온갖 비용을 제해도 최소한 한 달에 7천만~8천만원씩은 고스란히 김 사장 수중에 떨어졌다.
김 사장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더 이상 맡길 가족이 없으면, 가족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종업원들 중에서 비교적 품행이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직원에게 가게의 돈을 조금씩 맡기기 시작했다. 인간성을 떠보는 데에는 돈이 최고라는 나름대로의 철학을 그대로 행동에 옮긴 것이다.
믿을 만한 직원에게 “밖에 나가서 물건을 사오라”며 5백만원이나 혹은 1천만원을 쥐어준 적도 있었다. 돈을 받고는 그대로 줄행랑을 친 경우도 있었다. 반면에 물건을 사고 영수증에 나머지 돈까지 정확히 챙겨오는 이들도 있었다.
김 사장은 ‘제대로 된 우리 식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그 정도 손해쯤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직원 식구를 넓혀 나갔고, 그만큼 그의 가게는 점차 늘어났다. 가게 수가 10개가 넘어서자 김 사장의 현금동원력은 50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조그만 가게라도 자신이 직접 영업하면서 이후 가족을 활용해 가게를 확장하는 것은 부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학력은 자수성가나 가족동업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지 내가 일을 열심히 한번 해보겠다고 결심하고 이를 실천하다보면 자수성가의 부자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많은 이들은 스스로의 부자됨에서 그치고 만다. 그 다음으로 도약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과 비슷한 마인드를 가진 ‘부자 복제’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줄기세포를 복제해서 온갖 질병을 고쳐 새로운 가치를 만들겠다는 것과 동일한 원리로 필자는 ‘부자 복제’를 말하고 싶다.
나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르고, 그리고 나와 생사고락을 같이 할 수 있는 ‘동지’로는 ‘피를 나눈 가족’이 최고다. 좀 심한 표현으로 가족은 밀어붙여도 별 항의하지 않고, 때려도 별로 마음에 두지 않으며, 욕해도 그냥 넘어간다.
자수성가한 부자가 창업자가 되고 가족들이 창업자의 일을 그대로 복제하게 되면 엄청난 파워가 생긴다. 어느 화장품 전문업을 하는 사업가는 80년대 후반에 화장품전문점 사업에 뛰어들어서 재미를 보자, 주변 모든 친인척들을 다 끌어들여서 화장품전문점 10여 개를 내고는 공동브랜드까지 만들어서 팔면서 1백억원대의 재산을 금방 모은 적이 있다.
어느 PC방 점주도 PC방 사업에 초기에 뛰어들어 성공하자 8촌 이내의 친척이란 친척은 모두 끌어들여서 어느 지역의 PC방 업계를 석권한 적이 있다. 이것은 나이트클럽 비즈니스에서도 나오고, 음식점 비즈니스에서도 나오고, 여관과 이발소 비즈니스에서도 나온다.
가족경영이 성공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이유는 ‘부자 창업자의 마인드가 일사분란하게 거의 그대로 현장에 심어지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이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강한 그룹이 된 것은 ‘창업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바로 진리로 통하면서 전 조직에 심어졌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주식회사의 대표적인 형태다. 그러나 조그마한 자영업으로 시작해서 이것을 창업자의 가족들이 일사분란하게, 그리고 동일한 목표를 향해서 진군해나가면서 탄탄한 그룹을 일궜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삼성 경영 현상과도 별 차이가 없다.
필자는 대한민국에서 부를 획득한 수천 명 이상의 부자 사례를 분석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점 한 가지가 있다. ‘돈은 자신을 위해서 일할 때 가장 많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미국의 경영학 책에서는 ‘시장논리에 따라서 자기헌신을 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국내의 수많은 가족 경영인들이 거의 전부 ‘창업자의 말 한마디에 바로 바로 실행하고 자기 일처럼 하였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부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가족을 적극 활용하라. 가족이 없으면 ‘가족과 거의 같은 종업원을 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자가 되는 비법 IV
11. 【 부자들의 실생활 】
- 현금서비스에 세일 기다리며 그들도 우리처럼 ‘헉헉’
부자들이 소비하는 것을 언뜻 보면 “돈 많은 부자라서 역시 마구 써대는 구나” 하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실상 자세히 보면 “돈 많은 부자도 쓰는 것은 별 게 없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된다.
TV가 만들어낸 ‘허구의 부자상’(fake image of the wealthy)을 보고 사람들은 마치 ‘부자들은 항상 대단한 것들만 사댄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러한 부자는 대한민국에서 5천명도 채 안된다고 필자는 믿고 있다. 대부분 부자들의 소비 행태는 일반인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다만 극소수가 워낙 ‘요란법석’을 떨며 튀다 보니까 마치 대단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어느 날 한 호텔 앞에 고급 자가용이 한 대 들어와서 섰다. 호텔 직원이 나와서 차 뒷문을 열었으나 차 주인은 나오지 않았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도 꿈쩍도 않고 차 뒷좌석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호텔 매니저가 이 광경을 보고는 밖으로 뛰어나와 주변 직원에게 “야, 빨리 카펫 깔아”라고 소리를 쳤다. 카펫이 자가용 뒷문 앞에서부터 깔렸다. 그러고 나서야 차 주인이 천천히 내렸다. 왜 그랬을까?
이 부자가 신은 구두는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한 아주 ‘가냘픈’ 구두였다. 몇 백g이 채 안 될 정도로 솜털같이 가벼워 전혀 신은 듯한 느낌도 없는 그런 명품이었다. 이 구두는 너무나 섬세해서 그냥 호텔의 바닥을 걸으면 불과 몇 십m 가지 않아서 구두가 너덜너덜해진다고 했다. 이 구두를 신고는 오로지 카펫 위만을 걸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부자가 고급 술집에 갔다. 어느 날 호기롭게 아주 비싼 양주를 시켜 마셨다. 얼마였을까? 보통 발레타인 30년산이 1백만원 정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이것보다 더 비싼 고가품들도 더러 있지만 서울 강남의 최고급 술집에서도 한 병에 1천만원을 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날 이 부자가 호기롭게 마신 술은 ‘한 잔에 3백만원’이고 ‘한 병에 8천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어느 부자는 자동차를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전 세계에 단 6대 뿐인 자동차를 1995년에 수입해서 현재 소유하고 있다. 10년 전에 미화로 1천만달러를 주고 샀다. 요새 돈으로 치면 자동차 한 대에 약 1백억원을 주고 산 셈이다. 그런데 더욱 더 필자를 기가 막히게 만든 것은 이 차가 ‘미국사람이 타던 중고차’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부품이 수제로 만들어진 수제차로 알려져 있다.
국내 부자들의 이 같은 ‘휘황찬란한’ 소비 행태는 필자가 알기에도 이것 말고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실제 하늘하늘한 솜털 같은 구두를 신는 사람은 국내에 단 세 명 정도고, 8천만원짜리 양주를 마신 사람은 단 한 명이며, 1백억원짜리 자동차를 가진 이도 단 한 명 정도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일반인들의 눈과 귀를 의심스럽게 하는 이 같은 ‘아주 특별한 제품’은 국내에 아무리 많아야 열 개도 채 안 들어온다는 것이다.
현찰 50억원을 예금하고 있는 사람은 국내에 현재 3천8백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찰 1백억원 이상을 가지고 있는 개인도 수백 명 정도로 파악된다. 물론 강남의 어느 부자가 집안에만 현찰 80억원을 쌓아두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한 금융기관 종사자의 얘기도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대단한 부자들도 위에서 언급되었던 아주 희한한 제품들을 볼 기회가 별로 없다. 아니 대다수는 알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부자들의 소비는 어떠할까.
강남의 고급아파트 두 채와 빌딩 세 채 외에도, 금융자산이 꽤 되는 어느 ‘사모님’은 지금도 소원이 백화점에 가서 유명 상표의 수백만원짜리 화장품세트를 ‘한꺼번에’ 사보는 것이다. 이 ‘사모’의 생활비는 한 달에 4천만원 내외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일년에 생활비가 약 5억원인 셈이다. 그런데 ‘그깟’ 화장품 세트 정도에 벌벌 떤다는 것은 언뜻 생각해도 말이 안될 수밖에. 하지만 이 사모의 푸념을 옮기자면 이렇다.
“한 달 생활비가 4천만원이라고 해도 운전기사와 생활도우미 등 인건비에다가 미국에 유학간 아들, 그리고 여기서 미술대학을 목표로 재수하는 딸 등의 교육비, 그리고 남편에게 들어가는 돈 등이 있다. 집안의 각종 잡다한 생활비로도 너무 많이 나가서 내가 정말 쓸 수 있는 돈은 5백만원도 채 안된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수백만원짜리 화장품 세트를 한번에 살 수 있겠나.”
물론 이런 말을 일반인이 들으면 “복에 겨운 소리”라고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부자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생각하는 규모가 있고, 생활 방식이 있다. 즉 ‘자기 기준에서 나름대로 그들도 매월 생활고에 허덕인다’는 말이다.
현재 서울 강남구에는 약 4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 부자 중 35~40% 정도가 강남구에 거주하고 있다. 이처럼 가히 ‘대한민국 특별구’라 할 수 있는 강남구 거주자들의 한 달 생활비는 얼마나 될까.
약 1천5백만원에서 5천만원 이하가 거의 대부분이다. 월 생활비가 1천5백만원이라는 것은 일반인들이 상상하기에는 힘든 액수지만 그들로서는 외제차를 굴리기에도 너무나 힘에 겨운 ‘생활고(?)’의 연속이다.
한 달 생활비가 5천만원인 가정은 어떠할까. 그 집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들은 한 가정에 약 5대 정도의 고급 외제차를 굴린다. 이것 저것 쓰면서 차 5대를 관리하다보면 월 생활비 5천만원으로도 헉헉댈 때가 있다. 어떤 때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한 달에 2천만원씩 써대는 경우도 있다. 다음 달에 비싼 이자를 치르는 것이 너무나 속이 쓰리지만 할 수 없는 것이 이러한 부잣집의 체면이고 또 실상이다.
TV에서처럼 그렇게 화려한 신데렐라는 대한민국에 거의 없다. 필자가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그런 제품을 구매하는 부자도 거의 없다. 한국의 부자는 대부분이 일반인들에 비해 (물론 일반인들과 소비하는 방식과 규모의 차이를 감안해야 겠지만) 좀 여유 있게 쓰는 수준이거나 그나마도 ‘헉헉거리면서’ 강남의 백화점이 세일할 때만 은근히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부자 체면에 세일 기간에 샀다는 것이 조금은 자존심이 상하나 그래도 정가로 사기에는 비싼 것을 느끼는 것이 상당수 부자의 본모습이다. 부자들과 생활을 같이 해보거나, 부자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면 ‘우리나라의 부자들이 별 것 아니다’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미국에는 1천만달러(약 1백억원) 이상의 소유자가 40만 명이 훨씬 넘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1백억원 이상의 소유자는 아무리 찾아내도 1만 명이 채 안된다. 1백억원 이상의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할아버지, 평소 4천원짜리 국밥을 먹으면서 어쩌다 기분나면 5천원짜리 제육볶음을 어렵게 시켜먹는 중년의 아저씨가 강남구에는 아직도 많다.
30억원짜리 진주가 국내에 들어왔다고 해도 실제는 아무리 많이 팔려야 1년에 2개가 채 안 팔린다. 1천9백만원짜리 수제양복을 러시아 쪽의 부자와 대구의 한 거부가 사갔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그것이 그 해에 팔린 유일한 두 벌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실제 대부분의 부자들은 ‘별것’ 아니다. 일반인이 돼지갈비 먹을 때, 부자는 소갈비 먹는 정도다. 먼저 부자에 대한 환상 말고 실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12. 【 부동산 투자의 전망 】
- 아파트 열풍 40년은 더 간다
“교수님, 앞으로도 부동산이 부자 되는 데 도움이 될까요?”
최근 국내 금융기관의 부장급 인사 10여 명과 식사를 함께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들이 필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애초 그 자리에서 활발히 거론된 관심사는 부동산보다는 오히려 ‘동산’ 쪽이었다. 한 부장은 “내 고객 중에는 채권 1백20억원과 현금 3백억원을 갖고 있는 이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 옆의 또 다른 부장은 “요즘 디벨로퍼(developer·개발자) 중에 현찰로만 1조원을 가진 사람들이 서너 명 있다는 소문이 있다”라고 거들었다.
결국 부동산이 아니라 동산 시대가 열렸다는 얘기였는데, 이 부분에 대해 필자는 제동을 걸었다.
“앞으로도 부동산이 부자 되는 데 가장 강한 방법이 될 것이다. 최소한 향후 수십년은 계속될 것이다. 물론 과거보다는 부동산의 비중이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국내에서 부동산의 위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이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과거(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부자들은 재산의 70% 정도를 부동산으로 모았다. 강북에는 40년 만에 2백배 정도 뛴 경우가 있고, 강남에는 약 6백배까지 뛴 경우도 있다. 앞으로(현재부터 2040년까지)의 부자들은 부동산의 비중이 50%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의 비중이 10~20%대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곧바로 반론이 이어졌다.
“앞으로는 부동산 값이 오르기가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너무 올랐고, 또한 정부가 ‘반부동산 정책’을 앞으로도 계속 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부장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설명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전역에서 주택보급률이 1백%를 약간 넘는다. 다시 말해서, 가구 수보다 주택의 수가 더 많은 셈이다. 그러나 다수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들 때문에 실제로는 가구 수보다 주택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서울은 단독주택과 아파트의 비율이 약 50 대 50이다. 부산도 비슷하다. 그러나 그 이외의 지역들은 단독주택의 비율이 60~70%를 넘어서서, 아파트의 비율이 상당히 적다.
또한 대한민국은 앞으로 국민소득이 계속 늘어갈 수밖에 없다. 환율이 이 상태로 계속 떨어지면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기 전에 국민소득 2만달러에 도달한다. 그리고 아무리 경제가 불경기라도 경제성장률은 포지티브로서 적어도 1~2%는 된다.
다시 말해서, 해가 갈수록 경제가 상대적으로 매년 발전하면 앞으로도 아파트의 비율은 계속 늘어간다. 단독보다 아파트가 편하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초등학교만 입학해도 다 안다. 따라서 아파트의 비율이 50%가 안되는 지역들은 아파트의 공급이 계속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토는 한정되어 있다. 또한 대한민국의 사유지 중에서 부자들이 점유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다.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1% 정도 되는 최고 부자들은 대한민국의 전체 사유지 중의 40% 내외를 보유하고 있다.
사유지는 정해져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아파트가 계속 필요하다. 따라서 평당 효율을 높이려면 당연히 단독보다는 아파트를 짓게 된다. 아파트가 앞으로 약 35~40년 동안 계속 건립될 수밖에 없다고 볼 때 당연히 앞으로도 약 40년간은 아파트를 포함한 부동산이 부자가 되는 유효한 투자 방법 중의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필자가 미국에서 부자마케팅을 공부하고 귀국한 지 이제 12년 정도 됐다. 미국에서 만난 부자들은 상당수가 아주 오래전에 부동산으로 돈을 번 경우였다. 그러나 그 자손들은 주식과 현금으로도 부자가 되었다. 미국은 부자 역사가 1백년을 훨씬 넘어섰다.
한국에 와서 만난 수천 명의 부자들 중 거의 대부분이 부동산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아파트가 30여 채에 은행통장이 1백여 개 되는 부자들도 있었다. 필자가 알고 있는 어느 미혼 여자교수는 홀어머니가 아파트를 10여 채 가지고 있는데, 그 관리가 잘 안돼서 결국은 본인이 대학을 떠나서 현재 전업으로 아파트만 관리하고 있는 경우도 봤다.
동산은 한정되어 있다. 대한민국에서 부자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금융기관의 프로들의 고객 중에는 아파트에 현찰만 80억원을 쌓아두었다는 고객도 있고, 62억원을 단독주택 장롱 속에 가지고 있다는 부자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많아야 수백억원 현찰을 보유할 뿐이다.
그러나 부동산은 무한정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에만 빌딩을 12개 가진 한 부자는 최근에 중국 부동산에 눈독을 들이고서 상해를 빈번히 다녀온다. 호주의 빌딩을 사두는 부자도 늘고 있고, 3천만원 내고는 합법적으로 태국의 부동산을 취득하는 부자도 늘고 있다.
필자가 예상하기에 앞으로 한 40년 정도 지나면 대한민국 기업체들의 투명도가 약 95%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대한민국 기업들의 주식가치가 보다 향상되고 그리고 제대로 평가될 것이다. 그때에는 부를 축적하는 하나의 좋은 방법으로 주식회사를 만들어서 회사의 잠재가치를 극대화하고 미래가치로 평가를 받으면서 부를 획득하는 것이 상당히 활발해질 것으로 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 기업체의 투명도는 아무리 좋게 보아야 50% 정도이다. 따라서 주식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에는 아직은 대한민국의 기업 역사가 너무 짧다. 주식으로 투명한 부를 축적하는 방법이 물론 앞으로는 점점 늘 것이다.
현재에는 주식을 통한 부의 축적이 전체 부자의 재산 중 10%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35~40년이 지나면 30~40%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부동산이 부를 획득하는 데 가장 유효한 방법으로 존속할 것이다.
필자가 단언하건데, 설사 차기나 차차기 정권이 앞으로 지속해서 반부동산 정책을 펼치더라도 부동산의 열풍이 약간 줄어들 뿐이지 근절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2만명 정도 된다는 ‘부동산의 프로’들은 순수한 상아탑적인 경제학박사들이 만들어내는 부동산 정책의 허점을 너무나 쉽게 파악한다는 게 필자가 현장에서 터득한 깨달음이다.
다시 말해서 정부 정책과 큰 상관없이 대한민국 사람들이 보다 편안한 문화생활을 유지하려고(따뜻한 물이 항상 나오는 아파트를 찾는 한) 하면 할수록 부동산 열풍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부동산은 무한하다. 심지어는 이런 생각까지 해본다. 부동산의 진짜 프로들을 정부 행정 부서에 특별 채용하는 것이 혹시 부동산 정책수립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한동철 교수의 <부자도 모르는 부자학개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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