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크랩] 북한 교과서에 실린 광주 5.18

arang 2519 2016. 7. 3. 12:50

북한 교과서에 실린 광주 5.18

광주단체는 이제 죽은 목숨!

 

북한의 정부기관인 교육성이 국정교과서에 5.18이 김일성의

 

주체의 기치로 저지른 사건이라고 시인하였다.

 

북한정권이 5.18에 개입하였다고 자랑스럽게 공식선언한 것이다.

북한정부기관이 공식발행한 교과서인 만큼

5.18이 북한정권의 소행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더 이상의

증거는 없을 것이다.

 

5.18이 북한정권이 저지른 사건임을 증명하는 확실하고

새로운 증거가 이 번에 또 하나 드러났다

왜 엄연한 광주폭동을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는 지 이해가 안 간다.

 

5.18이 김일성의 교시에 따른 주체의 기치로 일으킨 사건이라고
북한교과서에 실린만큼, 5.18은 북한정권이 저지른 군사침략의

확실하고 명백한 증거가 된다.

 

"북한은 남한의 민주화 시위와 반정부운동, 파업은 모두

김일성 교시에 따라 일어난 것

으로,
특히, 광주 민주화 운동은 주체의 기치에 따라

 

남조선 애국 인민이 호응해 일으킨 가장 성공한
인민혁명사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광주 민주화운동 사진.jpg

 

광주단체는 이제 죽은 목숨이다!

북한정권이 광주단체를 버렸다!

조국을 배신한 자들은 북한정권도 배신한다는 사실을

북한정권이 더욱 더 잘 알고 있다.

"배신자들에게 총살집행이 있을 뿐이다."

 

북한정권이 가장 실천적으로 행하는 말이다.

이미 5,18 북한특수군의 존재가 시각적 증거로

 모두 밝혀진 만큼 북한정권이 더 이상광주 5,18여적단체를 감싸줄 필요가 없어졌다

제35주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

북한은 광주를 버렸다!
이제 광주단체는 죽은 목숨이 되어버렸다!
글쓴이: 노숙자 담요

대북 소식통

"김정은 집권 이후 숙청 간부 100여명"

 

"北 핵심계층도 체제 못 견디고 이탈하는 경우 많아"

"김정은, 연로한 측근에게 '이 XX야' 욕설하기도"

"北 핵심계층도 체제 못 견디고 이탈하는 경우 많아"

"김정은, 연로한 측근에게 '이 XX야' 욕설하기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숙청된 북한 간부가

100여 명에 달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한 대북 소식통은 23일 "북한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이후

숙청된 당과 군(軍), 내각의 간부는 100명 이상"이라며

"이는 김정일 집권기와 비교하면 많이 늘어난 수치"라고 밝혔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11년 12월 19일 사망한 점을 고려할 때

김정은 집권기에 매년 평균 20~30명의 북한 간부가 숙청된 셈이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자료사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자료사진>>

소식통은 또 잇따른 숙청 여파로 북한 간부들 사이에서

김정은의 지도력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최근 탈북한 북한의 외화벌이 중간 간부는

자신의 동료가 안 좋은 소문에만 근거해 처형되는 것을 보

탈북을 결심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며

"과거에는 개인적 이유로 탈북하는 사례가 많았으나

김정은 시대 이후로는 핵심계층이 김정은 체제를 못 견디고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은 젊은 나이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연로한 측근들에게도

'이 XX야'(자식을 낮잡아 이르는 말)라는 등의 욕설하는 것으로 안다"며

"김정은의 즉흥적인 행동으로 인해 엘리트층이

결집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대북 소식통은 "겉으로는 김정은의 권력이 공고한 것처럼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안정적이지 않다"며 "북한 내부적으로는

당 창건일 등 행사 준비로 에너지를 소진할 대로 소진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인민들에게

'쌀밥과 고깃국'을 먹여줄 수 있을 때까지 제7차 당 대회를 열지 않겠다고 했는데

김정은은 내년에 제7차 당 대회를 연다고 공언했다"며

"(제7차 당 대회에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주민들의) 실망감도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는 "예전에는 북한에선 쿠데타가 힘들 것으로 봤지만,

요즘은 변화의 시대이고 북한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밑으로부터의 변화도 가능하다고 본다"며

"북한에 보급된 휴대전화가 360여 만대에 달한다. 북한에서도

'재스민 혁명'(아랍의 봄)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미친놈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

김대중 때 북에 퍼준 거

 

[
쌀 지원]
1. 1995. 6. 25. : 15만 톤
2. 2000. 9. 28. : 0만 톤(3,120억원)

[비료지원]
1998. 4. : 20만 톤(900억원) 1999. 6. : 11만 톤(450억원)
1998. : 20만 톤(900억원) 2000. : 30만 톤(1,500억원)
2000. : 4만 톤(민간기업에 강제 할당: 130)

 

2001. : 20만 톤(900억원)
: 104만 톤(4,660억원 상당)
(민간기구가 보낸 것은 미포함)

2002.:
정세현 통일부장관은 1“북한이 간접적으로 요청해 온다면
인도적 차원에서올해도 비료를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관광공사가 현대에 준 돈)

 

2001. : 900
(금강산 사업 독점권) 94,200만 달러(12,500)
1999-2004년까지 6년간 나누어 내기:연간 15,700만 달러.
1999. 1. 1. --- 2002. 3월말까지: 51,100만 달러 북에 제공
(관광 인두세: 11100달러)
연간 50만 기준으로 하여,
관광객 수에 관계없이매월 고정적으로 1,200만 달러 북한에 지급.
1998.11.18일부터 2002. 3.18일까지 34개월간 이미 48천만 달러 북에 제공.
금강산관광으로 인해 현재까지 북한에 간 돈: 99,100만 달러.

(
정부가 사용한 남북 협력기금)
매년 5000억 원대 수준
2000: 5,660억 원

 

2001: 5,204억 원 1,300만 관광객 지원: 9조 원

(51

조 원은 김정일에 주는 달러, 4조 원은 현대에 주는 돈)
(그 외에 다음과 같은 막대한 지원이 있었다.)
1. 러시아에서 받을 차관 14.7억 달러를북한에 주기로 협상하고 있다.
2. 1999년 한해 동안 대기업들이 부담한 준조세는업체 당 평균 745억 원 이었다.

 

이는 기업들이 부담한국세의 1.2배이며, 지방세의 20배 규모에


당하는 엄청난 액수이다.
3. 99106일 현대가20인치 칼라 TV 3만대를 북송하도록 승인했다.

445

만 달러 어치다
.

4.

99
816일 대한제당이 연간 2만톤(60만 달러)

북한에 제공하도 허가됐다.

5. 991127일 삼성도 북한에 172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6.

2000
125일 현대아산은190만 달러 상당의 기와공장 설비를 반출했다.
7. 200028,863평짜리 평양실내체육관 준공식이 거행됐다.

3,420

만 달러란다.
8. 평화자동차 공장에 금강산 국제그룹 박보희 회장이
그 당시 3억 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란다.
9. 200037일 삼성전자가 평양체육관용 전광판 시스템에

 

400
만 달러를 투입했다.
10. 2000322일 삼성이 조선컴퓨터 소프트웨어

지원에

73
만 달러를 부담키로 했다.
11. 200036일 축협에서 보낸 계란 1천만 개가 인천항을 출발했다.
새마을운동에서 곡물 1,660톤을 보냈다.
12. 20004.12일 평화의 숲에서 묘목 20만 그루를 보냈다.
인도적 차원에서 이뤄진 지원은 99년 한 해에 4,688만 달러였다.
20001.4분기에 순수 민간 조직이 보낸 대북 지원액만 해도

 

56
억 원이란다.미국 소문대로 100억 달러가 갔던 것이다
.
13. 199811월부터 지금까지 현대는 북한에 38천만 달러를 지불했다.
이는 63개월 동안 독점개발권을 갖는 대가 94,200만 달러의

일부분이다

.
지금까지의 관광객 52만 명에 대해 9,200만 달러

투자비 12,600달러를 합치면 54,800만 달러가 간 셈이다.

이렇게 돈을 퍼다 주면서 민 여인을 비롯한 수많은 관광객들이

온갖 수모를 감수해야 했고,북한의 억지에 대해정부는 언제나

북한 편을 들었다.

한국일보 기자는"한국"이라는 낱말 때문에 H일보라는 명찰을,
대한매일은 "대한"이라는 글자 때문에 D일보라는 명찰을 달아야 했다.
"한국""대한"북한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굴종을 받아들이는 정부가 과연 한국정부였던가,

 

북한의 앞잡이었던가? 국민은 죽지 않았다.
옮긴글 : 꽃돌이
출처 : 꽃돌이 블로그
글쓴이 : 꽃돌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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