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美人)'은
옛부터 세상 모든 영웅 호걸들과 고락을 함께한 좋은 파트너였고
지금도 뭇 남성들이 선망하는 로망이다.
그렇다면 '미인(美人)'은 무엇일까?
'미인'에 대한 사전적 의미은 '아름다운 여인'이다.
사전상 다른 표현의 단어들도 더 있다.
'여희'(麗姬,아름다운 여자), '여인'(麗人,얼굴이 아름다운 여자),
'원비'(媛妃,용모가 아름다운 여자), '일녀'(逸女,용모가 꽤 아름다운 여자),
'미희'(美姬,얼굴과 몸매가 아름다운 여자),
'가희'(佳姬,마음과 몸가짐이 아름답고 맵시가 있는 젊은 여자)
'만희'(曼姬,얼굴이 썩 예쁜 젊은 여자), '가인'(佳人,아름다운 사람),
또 복합어로
'절대가인'(絶代佳人,당대에는 견줄만한 상대가 없는 뛰어난 미인)과 같은 말로 '절새미인'(絶世佳人)도 있다.
그런데 '미인'의 절대 조건이 될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르면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난해해 명쾌한 답을 내기는 그리 쉽지가 않다.
역시 사전에는 '아름다움'이란 '모양이나 색깔, 따위가 마음에 들어 만족스럽고 좋은 느낌'이라 적고 있지만 미(美)의 본질을 설명하려면, 미학(美學)이 나오고 철학으로까지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허기사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데스나 철학자이면서 미학자인 플라톤도 '미(美)란 무엇이가?'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평생을 두고 토론하고 고민했었으니까 말이다.
모든 물체의 비례가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고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줄 수 있는 조화로운 비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연구한 황금비율(1:1.168)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람의 신체도 황금비율을 적용해 보면 좌우 대칭과 상하 균형이 잘 이루어져 서로 조화를 이룬 얼굴이나 몸매를 지닌 사람이 역시 아름다운 사람, 즉 '미인'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미(美)'와 '미인(美人)'과 관련한 고 문헌이나 근년에 발표한 연구논문과 전문서적은 수 없이 많고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소개된 자료들도 무한정(?) 쏟아져 누구나 쉽게 찾아 접해 볼 수가 있다.
그러나 함께 모아 정리한 자료들은 그리 많지 않는 것 같아 '미인'과 관련한 여러 자료들을 찾아 관심있는 분들이 쉽게 재미삼아 가벼운 마음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정리해봤다.
자료들에 의하면 미인(美人)에 대한 기준은 시대와 나라 그리고 사람마다 보는 관점과 느낌이 다르고 또 변해와서 그 기준은 천차 만별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며 미학자인 플라톤은 대화체로 된 『대히피아스』편에서 "소크라데스가 '미(美)란 무엇인가?' 묻자 그리스의 귀족 히피아스는 망설임없이 '미란 바로 아름다운 아가씨가 아닙니까?' 라고 말했다"고 적고있는가 하면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철학자 볼테르는 미(美)에 대하여 <철학사전>에서 "시험삼아 두꺼비에게 미가 무엇냐고 한 번 물어 보라 아마 그는 돌출한 커다란 눈, 귀밑까지 찢어진 입, 노르께한 배를 뒤뚱거리는 암두꺼비를 가르키며 그것을 미(美)라할 것이다.
다음은 아프리카 흑인에게 물어보라.
그는 미의 기준을 번들 번들한 검은 피부, 파묻힌 눈, 납작코를 들 것이다.
악마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그는 분명이 이렇게 대꾸할 것이다.
미(美)란 두 개의 뿔, 갈퀴같은 앙상한 손가락, 그리고 엉덩이의 꼬리라고,"
이렇듯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사람 마다 다를 수 있어 결국 '제 눈에 안경'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각종 자료에서 살펴본 구체적인 <시대별 '미인'에 대한 기준>을 정리하면,
1) 원시 시대는 굶주림에 대비해 지방을 축적하고 다산을 위한 이상적 몸매라고 보는 절구형의 비만한 히프, 풍만한 가슴과
배를 가진 여성이 미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2) 그리스 시대는 건강한 인체미를 중시해 자연형의 탄력있는 몸매, 사과 모양의 가슴, 화장기 없는 창백한 얼굴이 미인으로 인기를 끌었다.
3)로마 시대는 신민지로 부터 얻은 물질이 풍부해 여성이 미를 가꾸는 것에 대한 관심이 컸다.
화려한 유형의 야한 화장에 일자 눈썹, 하얀 치아에 날씬하고 털없는 몸을 가진 여성이 미인으로 칭송 받았다.
4) 중세 시대는 성욕구가 억제 되었던 암흑기로 순결함을 연상시키는 작은 가슴과 히프, 흰살결, 금발에 넓은 이마를 가진 여성, 성녀처럼 느껴지는 그런 외모를 가진 여성이 최고로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5) 르네상스 시대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커져 성숙미를 풍기는 여성이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뿔 모양으로 솟은 가슴이나 통통한 턱, 풍만한 허벅지를 가진 성숙한 여성이 미인이었다.
6) 19세기 말은 염세적이고 회의적인 분위기에 걸맞게 유행처럼 핏기없는 피부에 야윈 몸매, 쾡한 눈, 파인 볼을 가진 여성이 대두되는 때였다.
7) 20C 전반(1950년대)은 전쟁으로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2차대전 직후로 다산을 해야하는 생물학적인 욕구로 인해 큰 가슴과 굴곡이 있는 풍만한 몸매, 뇌쇄적인 표정을 가진 여성이 미인으로 각광 받았다.
8) 20C 후반(1980~1990년대)은 환경 문제와 개성이 테마였던 시대로 자연스런 피부를 드러내는 내추럴 화장,
지적이면서도 섹시함을 겸비한 개성적인 여성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눈길을 끌었다.
9) 21C 새천년의 미인상은 아무래도 변신술이 능하며 당당하고 자유분방함이 있는 여성이 사랑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 동안 뚜렷한 이목구비와 성적인 매력을 미인의 조건으로 봤지만 이제 시간마다 변화하는 불확실성에서 정형화된 이미지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기 힘들고 건강미가 넘치는 개성 있는 여인이 미인으로 받아지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 미를 다루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서양의 미인에 대한 일반적인 기준은 얼굴이 갸름하고 광대뼈의 윤곽이 선명하며, 적당한 크기의 코와 눈 꼬리가 살짝 올라간 눈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미의 기준은 서양인들의 실제 신체 골격 구조와는 약간 다른 미인형인 것이다.
서양인은 광대뼈가 거의 없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동양권에서는 과거에는 동그랗고 살집이 있는 얼굴을 선호했으나 요즈음은 모든 것이 서구적인 것을 지향하다보니 미의 구조도 서구적으로 변했다.
우리나라 여성들도 예전에는 갸름하고 작은 얼굴을 선호했었던 것이 현대에와서는 서양인들처럼 생긴 오똑한 코와 서글서글하고 큰 눈을 좋아한다.
다시 말해 동서양이 서로 반대되는 얼굴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인으로 보이는 서양남자와 동양여자를 볼 때 동양여자는 우리 기준으로 보면 박색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광대뼈는 튀어나오고 눈꼬리가 찢어진듯 올라간 눈이 서양남자들에게는 예뻐 보이는 것이다.
문화와 습관으로도 미인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미인박명(美人薄命)', '경국지색(傾國之色)'으로 지목되는 '미인'하면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프로디테', 서양에서는 '클레오파트라', 중국에서는 '양귀비', 우리나라에서는 '삼국 유사'의 기록을 근거로 하여 신라 성덕왕 때 강릉태수의 부인이었던 '수로부인(水路夫人)'과 고구려 '관나부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학자는 트로이 전쟁의 계기가 되었던 스파르타의 미인 왕비 '헬렌', 중국의 '초선'과 '양귀비', 조선에서는 문집에 남아 있는 기록을 근거로 '황진이'와 '장희빈'을 대표적인 미인으로 꼽기도 한다.
송도 기생 '황진이'는 이웃집 총각을 상사병으로 죽게할 정도의 미인으로 30년을 수행한 '지족선사'를 하룻밤에 미모로 파계시키고 대학자 벽계수 화담 '서경덕'도 황진이의 아름다움을 보고 한 눈을 팔아 타고 가던 나귀에서 떨어지게 했다는 미모와 기예의 재능을 함께 갖춘 천하의 미인이었다고 한다.
장희빈은 천민 출신에서 빼어난 미모와 권모술수로 숙종의 왕비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끝내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아야했던 '미인박명'한 여인이었다.
이제는 우리와 미의 기준이 다소 근접할 것으로 짐작되는 동양권의 주변 몇 나라를 중심으로 다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중국 미인의 기준> 과 관련해서는 중국의 고전 「금병매」를 보면 미인의 기준을 이렇게 삼고 있다.
○ 흑대백소(黑大白小) ; 눈은 검은 눈동자가 3분의 2, 흰자가 3분의 1이고
○ 상연하중(上軟下重) ; 아랫 입술이 두툼하고 윗 입술이 얇게 얹혀야 하며
○ 난안장발(卵顔長髮) ; 긴 머리로 얼굴을 계란꼴로 감싸야 하며
○ 견둔반구(肩鈍半球) ; 어께와 엉덩이는 반구형으로 둥굴어야 하고
○ 담홍유훈(淡紅乳暈) ; 젖꼭지와 젖무리는 담홍색이어야 하며
○ 백수풍흉(白鬚豊胸) ; 흰 목덜미와 풍만한 젖가슴
○ 미륵풍협(彌勒豊頰) ; 미륵보살의 볼처럼 풍만한 볼이며
○ 세요경신(細腰經身) ; 초희(우왕의 첩)같이 가는 허리와 연(鳶)같이 가며운 몸
그리고 발의 크기는 3치를 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이목구비가 박힌 자리의 비율이 횡삼종삼(橫三縱三) 즉, 머리끝-눈썹-코밑-턱 끝이 삼등분이 돼야 하는 것이 횡삼이고
왼쪽 눈 가장자리, 입술 왼쪽 끝, 입술 오른 쪽 끝, 오른쪽 눈 가장자리가 삼등분 돼야 한다는 것이 종삼이다.
중국도 서양처럼 시대에 따라 미인의 기준이 바뀌었지만 슬립형에서 글래머 형을 거쳐 오늘날 서구인들이 중국미인으로 꼽는 '소-항 형'(소주-항주 미인)으로 굳어졌다는 것을 정설로 보고 있다.
한(漢)나라에는 초왕이 가는 허리를 좋아하여 굶어 죽는 궁녀가 많이 생겼듯이 세요(細腰,가는 허리)가 미녀의 조건이었을 때가 있었는가 하면 동양의 르네상스를 구가한 당나라 때에는 기준이 바뀌어 양귀비는 현종으로 부터 "몸이 풍만하여 왠만한 강풍에는 끄떡 않겠다"는 농(弄)을 들을 정도로 육감적이었다고 한다.
고대 중국의 4대 미인은
춘추 말기 월나라 '서시', 한(漢)나라 '왕소군',
삼국시대 때 '동학'과 '여포'의 모두의 여인이었던 '초선',
당나라 현종 때 '양귀비'를 꼽고
4대 미인에 들지는 못했지만 '조비언'도 절세미인으로 꼽고 있다.
♡ 서시(西施) - '침어(沈魚)'
- 서시의 미모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조차 잊은 채 물 밑으로 가라 앉았다.
♡ 왕소군(王昭君) - '낙안(落雁)'
- 왕소군의 미모에 기러기가 날개짓하는 것조차 잊은채 땅으로 떨어졌다.
♡ 초선(貂嬋) - '폐월(閉月)'
- 초선의 미모에 달도 부끄러워서 구름 사이로 숨어버렸다.
♡ 양귀비(楊貴妃) - '수화(羞花)'
- 양귀비의 미모에 꽃도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 조비연(趙飛燕) - '작장중무(作掌中舞)'
- 가볍기 그지없어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출 수 있을 정도였다.
대륙의 기질을 타고난 중국인들다운 과장과 풍이 들어간 표현이지만 시적인 묘사가 아닐 수가 없다.
<중국 미인의 10대 조건>이라는 것도 전해지고 있다.
1) 옥지소완(玉指素腕) ; 옥처럼 아름다운 손가락과 흰 피부의 팔. 즉, 옥처럼 아름다운 손가락과 곱고 가는 손, 섬섬옥수를 말한다.
2) 새요설부(細腰雪膚) ; 가는 허리와 눈처럼 흰 피부.
3) 연보소말(蓮步小襪) ; 전족을 한 작은 발. (소말은 그 발을 싸는 조그만 양말을 말함)
4) 홍장분식(紅粧粉飾) ; 뛰어난 화장술
5) 기향패훈(肌香佩薰) ; 피부에서 발산되는 향기.
6) 오발선빈(烏髮蟬嬪) ; 까마귀처럼 검은 머리와 매미 날개같이 옅은 귀밑 머리.(숱이 구름처럼 많아야 하고 발끝에 닿을 정도로 길어야 하며 윤기가 흐르고 향이 은은하게 풍겨야 한다.)
7) 운계무환(雲繫霧環) ; 구름처럼 높게 튼 머리 스타일과 계, 환이라는 장식을 사용.
8) 아미청대(蛾眉靑黛) ; 누에 같은 눈썹, 곧 초승달같이 휘어지고 짙고 푸른 눈썹.
9) 명모유반(明眸流盼) ; '명모'란 해맑은 눈동자. '유반'은 눈을 흘겨 보는 것.
10) 주순호치(朱脣皓齒) ; 붉은 입술과 흰 이(齒).
일본은 <미인의 기준>을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일본은 헤이안(평안) 시대까지만 해도 독자적인 이상형이 없다가 애도(강호) 시대에 들어 미인형을 정립했다고 한다.
미인의 기준은 길고 좁은 얼굴형에 눈꼬리가 올라간 눈, 길고 오똑한 코를 가진 여자이다.
또 일본인들이 미인의 기준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여인들의 머리 모양이다.
달처럼 둥글고 크게 부풀어 오르는 머리 모양은 일본 여인들의 미의 기준이되었다.
또한 이들은 백짓장처럼 하얀 얼굴과 작고 붉은 입술을 선호했으며 기모노를 입는 일본 사람들의 특징 때문인지 뒤태를 중요시 하였다고 한다.
일본 여성들은 옷으로 신체의 단점을 보완하는데 능해 기모노에 사용하는 오비(허리를 묶는 천)는 시선의 포인트를 위로 주게해 전체가 짧은 여성의 하체를 길어 보이게하고 전체적으로 날씬해 보이는데 큰 몫을 하게 했다.
당시 일본에 머물며 「일본의 몸」이라는 책을 집필한 독일인 슈트라츠는 미인을 가리는 32개 기준을 제시했다.
이마는 거울처럼 빛날 것.
눈은 이슬처럼 젖어 있을 것.
코는 꽃봉오리처럼 끝이 볼록할 것.
허리는 호랑이처럼 길 것.
등이 그 몇 가지다.
현대의 일본 여성들은 '덧니가 있어야 미인'으로 보고 있고 '키가 작은 아담한 체형의 미인'을 선호하고 있단다.
우리나라에서의 미인의 기준은 어떻게 변모해왔을까?
조선시대 미인은 화가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에 잘 집약되어있다.
눈, 코, 입이 작고, 전체적으로 다소곳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미인의 조건으로 삼았다.
세부적으로 표현하면 눈썹은 초승달, 코는 마늘쪽, 입술은 앵두같아야 하고 이마는 반듯, 이마와 머리의 경계선은 각이진 형을 선호했다.
그래서 머리를 쪽졌을 때 각진 모양을 만들기 위해 이마 양 끝에 황새의 똥을 탈모제로 바르고 명주실로 잔털을 뽑았다고 한다.
또 눈두덩을 넓게 보이게 하기 위해 눈썹 밑을 정돈하는 것은 기본이어서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쪽집게가 미용도구로 활용 되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왕조의 왕비 간택 과정을 보면 왕비 후보는 키가 1m60cm 이하, 가슴둘레 90cm 이하여야 했는데 가슴이 크면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 때문이었다.
후세를 잘 보기 위한 조건으로 유두가 검붉어야 했고, 배꼽은 우묵하게 깊고 배는 두툼해야했다.
얼굴은 온화하고 덕과 복이 넘쳐야 했는데 너무 미인이면 교만해지고 남의 손을 탄다는 속설 때문에 기피했다.
특히 입술 색깔이 붉고 입술선이 분명해야하고 손은 섬섬옥수 보다는 두텁고 손가락은 봄에 막 솟아난 죽순을 닮아야 했다.
손바닥 혈색은 붉은 색을 선호했다.
이런 조건을 종합해 보면 왕비후보들이의 얼굴과 몸매는 요즘의 팔등신 미인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왕비 간택 과정과 기준》
조선왕조실록과 실학자 이익의 '성호사설'에 조선의 왕비 간택제도가 생긴 연유와 과정, 왕비 간택 기준이 설명되어 있다.
1)왕비 간택 제도가 생긴 연유
- 조선초 태종이 이속(李續)의 아들을 부마로 삼고 싶어 장님 매파 지화를 보냈는데 손님과 바둑을 두던 이속이 바둑을 끝까지 둔 후 매파를 만난 뒤 태종의 제안을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왕실과 결혼하기가 싫다는 것이었다.
이를 들은 태종은 왕실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해 격노했고, 이속을 서민으로 강등시키고 집을 몰수한 뒤 그 아들은 영영 장가를 들지 못하게 금혼령을 내렸다.
그리고 사대부집 자제들을 궁궐로 불러들여 그 중에서 직접 한명을 선택해 부마로 삼았던 것이다.
이 일로 정통성 문제에 컴플렉스를 가진 이조왕실이 간택제도를 도입했다는 설명이다.
2) 왕비 간택 과정
- 왕비를 간택할 때는 먼저 전국에 금혼령을 내렸다.
금혼령에 해당되는 인물은 사대부집 규수로 대체로 아홉 살에서 열일곱 살 정도의 처녀였다.
- 간택은 초(初)간택, 재(再)간택, 삼(三)간택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초간택에서는 약 30~40명의 후보들을 각기 자신의 아버지 이름을 적게한 뒤 그 방석위에 앉아서 다과를 먹게 했다.
그러면서 용모와 행동거지를 살피는 것이다.
- 초간택, 재간택 절차에 따라 최종 세명의 후보를 선택한 후 마지막 삼간택은 왕과 왕비 앞에서 치러지며 이를 전후로 정승들과 논의하여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3) 이 때의 기준
- 키는 크지 않아야 했고 이마와 머리결 사이의 선이 갈매기 모양(M자 모양)이 아닌 둥근 모양이어야 했다.
눈은 쌍꺼풀이 지면 안 되고, 눈꼬리가 약간 처져야 했다.
코는 끝이 뽀족 나오지 않은 둥근 모양에, 입술은 얇아야 했고 목도 길지 않아야 했다.
손과 발은 작은 반면 엉덩이는 커야했다.
다만 피부는 희고 고와야 했다.
게다가 가슴이 작고 턱도 주걱턱이어야 했다.
- 가슴이 크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주걱턱은 성품이 착하다는 징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목이 두꺼우면 안되는데 이는 처녀가 아닐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 탓이었다.
양미간이 좁아서도 안 되었다.
이는 남자를 밝힐 우려가 있다는 판단이 근거였다.
게다가 입술이 자색(紫色)이어서도 안되었다.
건강하지 않아서 출산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 이런 기준은 미적 외모를 갖추기 보다는 인자하고 어진 호감형 인상을 주는 사람을 뽑는데 맞춰져있다.
조선시대에 왕비에 대한 평가는 인자함과 지성이 우선이고 미모는 나중이었었던 셈이다.
이 기준이 당시에는 정설로 받아들여져 중전, 세자비 간택 때는 물론 민간에도 널리 퍼져 일반 가정에서도 며느리를 들일 때 적용했다고 한다.
그러면 조선시대 일반적 미인의 기준은 어땠을까?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종종 소개되고 있는 조선시대 미인의 기준을 살펴보자.
구체적인 자료 근거 제시가 없어 명확한 출전은 알 수없지만 아마도 민속자료나 고전문학 작품 등 옛 문헌에서 빌러온 내용이 아닐까 짐작을 해본다.
그 내용은
〈조선시대 미인의 기준 - 구색(九色)〉
1. 삼백(三白)
세가지는 희고 예쁘다 하였으니 이는 피부, 이(齒), 손이로다.
2. 삼흑(三黑)
세가지는 칠흑처럼 검다하였으니 이는 눈(눈동자), 머리카락, 눈썹이로다.
3. 삼홍(三紅)
세가지가 발그레하니 입술, 빰(볼), 손톱이로다.
4. 삼단(三短)
세가지는 아담하니 짧은 진데 귀, 이(齒), 턱이로다.
5. 삼광(三壙)
세가지가 적당한 간격으로 넓어야 하니 가슴, 이마, 눈과 눈 사이(미간)로다.
6. 삼세(三細)
세가지가 보드라니 가늘어야 하겠는데 손가락, 허리, 발이로다.
7. 삼박(三薄)
세가지가 애처롭게 가늘어야 하니 손바닥, 발목, 콧날이로다.
8. 삼후(三厚)
세가지가 깜직하게 도톰하니 입술, 팔, 엉덩이로다.
9. 삼장(三長)
세가지가 훤칠허니 길어야 하니 목, 머리카락, 팔이로다.
옛 조선 시대 미인을 지금은 직접 만나 볼 수 없지만 그 시대 화가들이 그린 '미인도' 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는 있겠다.
가장 흥미있는 '미인도'는 '채용신'의 『팔도미인도(八道美人圖)』이다.
채용신(蔡龍臣)은 조선 철종이 즉위하던 해인 1850년에 출생하여 1941년에 사망한 조선 말기의 화가이다.
초상화, 화조화, 인물화 등을 잘 그린 화가로 유명하며 무과출신 관료이면서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御眞) 제작을 총괄하는 우두머리 화가인 주관화사(主管畵師)로 활약하였다.
채용신이 그린 '팔도미인도(八道美人圖)'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삼아 그린 그림이라서 그 시대 미인들의 구체적인 얼굴형과 특징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작품이다.
8폭 짜리 병풍으로 그린 미인들은 서울(한양), 평양, 경남 진주, 전남 장성, 강원 강릉, 전북 고창, 화성, 함경도 등 8개 지역의
미인과 기생 8명의 전신상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평양기생 계월향(桂月香), 장성관기(官妓) 지선(芝仙), 진주관기 산홍(山紅), 강릉미인 일선(一善)처럼 각각의 화폭에는 주인공의 실명(實名)이 적혀 있다.
'팔도미인도'의 인물들은 모두 역사상 실존 인물들로 조선초기부터 구한말 시대에 이르기까지 500년 역사속에서 각 시대를 풍미하던 유명한 미인과 기생들이다.
이들은 모두 시서화(詩書畵)에 능하여 선비들과 풍류를 논함에 부족함이 없었고 그들이 남긴 시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현대 교과서에 실려있을 정도 이다.
그러나 이들이 진정한 미인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그녀들의 아름다운 행실과 마음 때문이다.
평양기생 계월향은 임진왜란 당시 평양성에 침입한 왜장(倭將)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며, 진주기생 산홍은 을사오적 중 한 명이 천금을 주며 첩(妾)으로 삼으려하자 단호히 거절한 의기 높은 인물이다.
또한 고창 기생 매창(梅窓)은 의병장 유희경(劉希慶)을 사모하여 평생을 수절하는 높은 절개를 보였다.
매창은 전북 부안 출생으로 시조와 한시 58수를 남기고 그의 시 '이하우(梨花雨)'는 가곡원류와 교과서에 실렸을 정도로 유명해
개성의 황진이와 함께 조선의 기녀(妓女) 시인의 쌍벽을 이루었다.
조선의 북쪽에는 황진이가 있고 남쪽에는 매창이가 있다고 했단다.
소문을 듣고 팔도에서 몰려드는 한량들을 피하고 절개를 지키기 위해 자신 얼굴에 칼집을 내기도 했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현재 그의 묘소는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의 유희경의 묘소 앞에 모셔져 있다.
(수년전 필자가 대학 동창들 여려명과 함께 호남지방 여행중 매창의 묘소를 찾았던바 당시 묘소 주변 공원에 매창의 대표적 시비 다수를 세우고 매년 그를 추모하는 '매창 문화제'를 열어 불꽃같은 사랑을 가슴에 품고 30대에 요절한 천재 문인 기녀 매창을 기리며 묘소도 잘 가꾸어 보존하고 있어 잠시 옛 풍류의 흔적을 살펴 볼 수 있었다.
○ 강릉미인 일선(一善)은 이마가 넓고 넓어 서글서글한 인상이다.
○ 평양미인 계월향(桂月香)은 턱이 뾰족하고 광대뼈가 도드라지지만 이목구비가 작아 전형적인 미인의 모습이다.
○ 함경도 미인 취련(翠蓮)은 입술과 눈이 작으면서도 맵시가 있다.
○ 고창미인 매창(梅窓)은 다소곳한 모습이 기품이 있다.
○ 장성미인 지선(芝仙)은 눈이 크고 눈썹이 길어 아담한 느낌이다.
○ 화성미인 명옥(明玉)은 기다란 눈과 코가 매력적이다.
○ 진주미인 산홍(山紅)은 둥그스럼한 얼굴에 이마가 평평해 우아한 멋을 자아내고 있다.
○ 서울(한양)미인 낭랑(浪朗)은 볼이 통통하고 콧방울이 커 애교 넘치는 모습이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이능화의 '조선여속고(朝鮮女俗考)'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이름난 정치가, 학자, 예술가, 군인 등은 대다수 남쪽 출신이고, 반면 뛰어난 미모의 여인들은 강계미인(江界美人), 회령미인(會寧美人), 함흥미인(咸興美人) 이란 말에서 보듯이 북쪽 출신이 많다.」
이 말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서 '남남북녀(南男北女)'라는 말이 처음 쓰이게된다.
즉, 남쪽은 남자가 잘 나고 북쪽은 여자가 예쁘다는 뜻임을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후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는 얼굴이 갸름하고 피부는 희며 외꺼풀 눈에 허리가 긴 여성을 미인으로 기준으로 삼았다.
기후의 영향으로 북쪽으로 갈 수록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여성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대의 미인의 기준은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자.
현대여성의 아름다움의 기준과 미인의 요건은 무엇일까?
미인의 기준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져 여성들은 자기가 속한 시대와 장소(나라)에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들의 노력과 고통은 끊이지 않고 있다.
각가지 다이어트를 비롯해 성형수술, 운동, 화장 등으로 아름다워지기 위한 여성들의 끊임없는 활동과 그에 대한 열기가 대단하다.
미인을 선발하는 미스코리아와 미스유니버스, 월드미스 대회 등의 미인의 기준은 대개 용모에 40~50%, 품성에 30~40%, 재질에 10~20% 정도를 평가 기준으로 하고 있단다.
미적 기준은 현대에 와서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크고 쌍거풀진 서글서글한 눈에, 오뚝한 코, 작은 턱과 작고 갸름한 얼굴형으로 바뀐 것이다.
'미인대회의 기원'은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부인 헤라, 지혜의 여신 아테나, 미의 여신 비너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주어지는 '금사과'를 차지하기 위해 트로이 왕자 파리스 앞에서 경연을 벌이는 '파리스의 심판'이 미인대회의 기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1957년 5월 19일에 한국일보 주최로 시작해 올해(2014)로 58회를 맞게된다.
그러나 실제의 미인대회는 지금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훨씬 이전인 해방전 1940년「모던일본」조선판 주최의 제2회 '미스조선
선발대회'에서 '미스조선'에 박은실(당시19세, 1921년생), '준미스조선'에 정온녀,이순진, 김영애가 선발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수여 상패는 은제컵이며 부상으로 조선의상이 기증된 것으로 나온다.
'미스조선' 박은실의 신장은 157cm, 체중은 45kg이며 심사는 잡지사(모던일본)에서 참가자들이 제출한 사진을 중심으로 한 서류 심사였으며 남북의 여성을 함께 대상으로 한 미인 대회라고 한다.
또 해방 이후인 1953년 5월 전쟁으로 암울한 사회분위기를 일신시키려는 의도에서 부산에서 '제1회 여성경염대회(女性競艶大會)'가 개최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 본선 진출자는 10명이었는데 본선 수영복 심사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속살을 드러내는 수영복 심사는 당초 비공개였지만 수영복을 입은 미녀들을 보겠다고 심사장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개회식도 못하고 본선심사를 취소하는 사태가 빚어졌다고 한다.
첫 미인대회 예선 심사 조건은
○ 미혼 여성일 것.
○ 키는 다섯자(151.151Cm) 정도일 것.
○ 몸매는 키에 맞춰 깡마르거나 뚱뚱하지 않아야 할 것.
○ 얼굴 형태는 동그스럼하고 복이 있다고 느껴질 것.
○ 전체적인 몸의 균형은 장래 현모 양처로서 품위가 있을 것 등이었다고 한다.
한국일보 주최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1996년 40주년 대회부터 왕관을 다시 만들고 채점 방식도 얼굴의 아름다움, 심성의 아름다움, 능력의 아름다움을 숫치화하여 컴퓨터 채점을 하고 있단다.
현대의 미스코리아 선발 세부 기준은 외모, 심성, 능력별로 각각 세분화된 심사 항목과 심사 방법 등으로 나뉘어 상당히 복잡한데 외모를 중심으로 요약 정리해 보면 이렇다.
기본적으로 당연히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지녀야하는데 건강하고 청결한 피부를 유지하고, 자신감 있는 역동적인 표정과 분위기를 보여야 한다.
전체적으로 얼굴 40%, 몸매 40%, 교양 20% 비율로 본다.
개성적인 첫인상,
쌍꺼풀과 큰 눈,
끝이 약간 올라간듯한 눈썹,
길고 풍성한 속눈썹,
넓지 않는 미간과 좁은 안검,
반듯한 코와 희고 가즈런한 치아,
갸름하고 길면서 크지 않고 작은 얼굴,
전체적으로 어색하지 않고 균형 잡힌 눈과 코,
상체는 긴 목과 부드러운 양 어깨 선,
밖으로 구부러지지 않은 양 어깨,
유방의 바른 크기와 위치, 선,
체격에 비해 긴 팔이 보기 좋으며 고르고,
탄력성이 있는 팔의 선과 워킹시에 자연스러우면서 자신감 있는 팔 동작,
하체는
곧은 등과 허리의 선, 날씬한 배,
처지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히프의 크기와 선과 모양,
벌어지지 않고 가지런한 허벅지,
곧은 탄력성있는 다리의 선 등이다.
전체 체격의 균형은 상반신이 전체 신장의 3.5/8,
하반신이 전체 신장의 4.5/8,
상반신: 하반신 = 7:9 의 비율이 적당.
특히, 심사시에 하반신을 우선 보는 경향이 많으므로
곧고 긴 다리 선, 근육이 너무 튀어나 보이지 않는 다리,
서로 붙어 있는 종아리, 벌어지지 않는 허벅지 등이 중요하다.
키는 매년 상향 조정되고 있어
최근에는 1m80cm를 상회하고 있고,
반대로 몸무게는 줄어들어
50kg 이하로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경향이라고 한다.
그외에도 훨씬 더 까다롭고
더 많은 항목별 세부 기준이 있으나 소개에서는 생략한다.
이러한 미인 대회 선발 기준을 참고하면 현대 미인의 기준은 어떠한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요즈음은 성형수술과 화장술의 발달로 순수한 자연미를 지닌 미인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미스코리아는 타고난 미인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요즈음은 미인 천지다.
TV나 길거리에서 보면 굳이 연예인이 아니어도 미인이 아닌 여성이 없다.
그중 상당 수의 미인들은 성형미인일꺼란다.
조선 시대에 '추녀는 벌금을, 미녀는 그냥 통과'였단다.
그 내용과 속 사정은 무엇일까?
조선시대에도 지금의 차량 '음주 단속' 같은 길거리 '가마 단속.이 있었다.
조선 시대의 가마는 아무나 가마를 마음데로 타는 것이 아니고 가마의 종류에 따라 탈 수 있는 신분이 정해져 있어 계급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남자가 타는 가마와 아녀자가 타는 가마가 다 달라 신분과 벼슬에 따라 그냥 말을 타는 사람, 덮게가 있는 가마, 바퀴가 있는 가마, 그리고 몇 사람이 메고 가는 가마인지도 구분이 있었다.
그런데 더러는 그 규정을 어기고 신분 과시를 위해 신분보다 더 높혀 타는 경우가 있어 이를 단속하는 관원과 몰래 타고 다니려는 사람과 실랑이도 많았단다.
또 이걸 단속 하는 관원이 신분을 확인하고 단속하는 과정에서 뇌물을 받기도 했다.
이 때 단속하는 관원이 가마를 탄 부녀자의 얼굴을 보고 여인의 얼굴이 못생겼으면 뇌물을 봤고 얼굴이 예쁘면 봐줘서 그냥 통과 시키는 등 부조리가 심해 정조 4년 3월 4일 정언(正言) 이제만(李濟萬)이 이의 책임을 물어 형조 참의를 파직하라는 상소문을 올린 사건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현대의 요즈음도 얼마전 현직 검사가 자신이 담당했던 미모의 피의자인 연예인의 편의를 봐주다가 법을 어겨 구속되는 사건도 있었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더니 예나 지금이나 '추녀유죄 미녀무죄'인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미인이 끄는 힘은 황소보다 세다」라는 영국의 속담과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아도 세상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
이라한 파스칼의 말처럼 미인은 나라를 흥하게도 하고 때로는 망하게까지도 한다.
미인은 법도 허물고 도덕도 마비시키며 세상을 바뀌게도 하는 오묘한 마력을 지녔을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구나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욕망, 아름다운 사람을 원하는 욕망은 세월 가고 세상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영원 불변의 소망일지 모르겠다.
<참고문헌>
ㅇ 미인( 조용진 지음, 해냄출판사)
ㅇ 미모의 역사(아서마윅 지음, 채은진 옮김)
ㅇ 이중톈의 미학 강의(중국 이중천 지음, 김영사)
ㅇ 서양 고대 미학사 강의(김율 지음, 생각하는 사람들)
ㅇ 고전 소설 속 역사 여행 -조선시대 미인은 어떤 모습일까?
(신병주, 노대환 지음)
ㅇ 조선왕비오백년사(윤정란 지음, 이가출판사)
ㅇ 조선의 속사정(권우현 지음, 원고지와 만년필)
ㅇ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신병주 지음, 효형출판)
ㅇ 궁에서 왕을 만나다(국립고궁박물관)
ㅇ 오천년 중국사 속의 사랑과 욕망(김문학 지음, 곽수경 옮김)
ㅇ 아름다운이란 이름의 편견(데버러 L. 로우드, 권기대 옮김, 베가북스)
ㅇ 조선시대 여성의 미인상-리포트(해피캠퍼스)
ㅇ 미인, 미녀의 시대에 관한 논평 - 전문자료(해피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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