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현종을 사로잡은 양귀비의 체취
과학으로 해부해 보는 여자남자,
그리고 남자여자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와의 사랑을 노래한
백낙천(白樂天)의 장한가(長恨歌)의 애절한 대목은
역시 마지막 부분에서 하이라이트를 이룬다.
七月七日長生殿 夜半無人私語時
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
天長地久有時盡 此恨綿綿無絶期
7월7일 칠석날 장생전에서, 인적 없는 깊은 밤에 속삭이던 말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땅에 나무로 남는다면 연리지가 되고 싶다.
하늘이 길고 땅이 영원해도 끝날 날이 있다. 그러나 사랑의 한은 끊일 때가 없구나
비익조는 전설상에 나오는 새다.
이 새는 이상하게도 한쪽 눈과 한쪽 날개밖에 없다.
그래서 암수가 모여서 짝을 이루어야만 제구실을 할 수 있다.
연리지는 서로 다른 나무인데
얽히고 설키면서 자라다가 우연하게 하나로 된 가지를 말한다.
각기 다른 뿌리에서 나온 나뭇가지가 하나가 돼 수액(樹液)이 서로 흐르는 경우다.
얼마나 마음이 맞으면 거부반응이 전혀 없이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체취는 사람의 고유한 지문과 같아
장기이식에서 제일 문제가 바로 거부반응이다.
혈액형이 같고 가장 가까운 친지의 심장이나 간을 이식하지만
결국 문제는 거부반응이라는 부작용에 봉착하게 된다.
최근 줄기세포를 이용해 장기를 만들려는 노력도 이러한 이유다.
환자의 장기와 꼭 같은 장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전설 속의 비익조와 연리지는 현종과 양귀비의 끊임없는 사랑의 상징이다.
안록산의 난으로 양귀비가 죽었지만 현종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양귀비의 영정을 침실에 놓고 잘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양귀비는 무엇으로 천하를 호령하는 현종의 마음을 사로 잡았을까?
잘 생긴 미모?
남자의 마음을 신통하게 읽는 눈치와 애교?
양귀비는 작고 가냘픈 중국의 역대 미인과는 달리 풍만한 글래머 스타일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양귀비의 양(楊)씨들은
원래 인도나 페르시아 같은 서역 출신으로 이국(異國) 성으로 알려져 있다.
양귀비가 전통적인 중국 미인의 얼굴과 몸매가 아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아마도 현종은 양귀비의 이국적 미모에 반했는지도 모른다.
양귀비, 목욕할 때마다 향기가 장안을 진동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천하의 모든 여자가 자기 여자라고 할 정도로
중국 대륙을 한 손에 거머쥐고 있는 현종이
한 여자에게만 매달렸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 여자 저 여자를 훔치는 것이 타고난 본능이고
또 쉽게 사랑이 식는 게 남자의 본능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사람의 체취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은 겨드랑이다.
사람마다 독특한 체취가 바로 여기서 나온다. 대부분 불쾌감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양귀비는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독특한 체취가 있었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번 목욕할 때마다 양귀비의 체취가 장안을 흔들어 놓았다.
그녀가 목욕하고 난 물이 장안 시내를 흘러갈 때마다
장안은 그녀의 냄새로 진동했고 남자들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여인들은 양귀비에 대해 대단한 질투와 분노를 느꼈다.
아마 그래서 천하일색 양귀비였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양귀비의 체취 때문이 아니라 향수를 많이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욕조가 넘칠 정도로 향수를 사용했고,
그 향수가 하수구를 통해 장안 시내를 흐를 때 향수가 진동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향수라고 해도 한 두 번이지
현종의 마음을 영원히 사로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향수는 질리게 마련이다.
그녀는 그야말로 현종을 ‘뿅’ 가게 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체취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양귀비가 경국지색(傾國之色)이 된 이유가 바로 그렇다.
경국지색이란 말처럼 황제가 여색에 빠지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미색이 뛰어난 여자를 탐했던 왕들은
그로 인해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였다.
중국의 절세미녀였던 양귀비는
당나라 제6대 황제인 현종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당시 현종은 겨울만 되면 장안 동쪽에 있는 리산의 화청궁에서 머물렀는데
황제가 화청궁으로 이동할 때면 대규모의 인원이 함께 움직였다.
궁녀들의 행렬 속에서 현종은 한 떨기 장미꽃보다 더 아름다운
미모의 양귀비를 발견하게 된다.
백옥같이 하얀 피부의 양귀비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 현종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현종은 곧바로 그녀를 귀비의 지위에 올려놓는데
당시 현종의 나이는 60세, 양귀비의 나이 26세였다.
황제의 욕심이 과했던 것일까?
양귀비를 후궁으로 들어앉히면서
현종은 그녀의 마음을 사기 위해 낭비와 사치를 일삼게 된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양귀비에게 넋이 나간 현종은 양귀비의 목욕장면을 감상하기 위해
욕조 바닥에 빽빽이 에메랄드를 깔고
금은보석으로 장식한 화려한 욕실을 만들게 하였다.
양귀비의 비단결 같은 하얀 살결을 지켜보던 현종은 황홀함에 극치를 맛보았다.
양귀비는 풍만한 육체를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그 살결이 어찌나 곱고 하얀지 마치 우유 빛과 같았다.
양귀비가 현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면서 양귀비의 집안은 벼슬이 주어지고
최고의 권세를 누리게 된다.
양귀비의 언니들은 후궁이 되어 공주와 같은 대접을 받고
양귀비의 오빠였던 양국충은 재상의 자리까지 오른다.
당시 양귀비 일가의 출세를 부러워하던 사람들은 이런 노래를 불렀다.
“딸을 낳더라도 슬퍼하지 말라, 아들을 낳더라도 기뻐하지 말라.”
그러나 양귀비의 출세가 훗날 독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다.
당시 궁정에는 안녹산이란 이란계통의 혼혈아가 나타났는데
그는 배불뚝이의 외모로 궁중에 들어오면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거나
재미있는 농담을 하여 현종과 양귀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는 자진하여 양귀비의 양자가 되겠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양귀비와 현종의 총애를 받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안녹산은
그 후 반란을 일으켜 대군을 이끌고 장안으로 진격한 것이다.
결국 양귀비의 미모에 빠져 흥청망청 세월만 보내던 현종은
하는 수 없이 양귀비와 함께 장안을 버리고 양귀비의 고향인 쓰환성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현종을 보위하던 군사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다보니 불만이 싸여
더 이상 싸우려 들지 않았고 결국 반란군은 유유히 쓰환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다.
양귀비의 오빠가 먼저 제물이 되어 살해당하고
그녀의 언니들도 차례대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반란군들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양귀비의 목을 치려고 했다.
결국 현종은 눈물을 머금고 양귀비를 반란군에게 넘기게 된다.
이것은 양귀비가 원하던 것으로 현종에게 자신을 반란군에게 넘기고
현종의 옥체를 보전케 하기 위함이었다.
양귀비가 반란군의 손에 넘어가고
명주 천으로 반란군들은 그녀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하였다.
당시 양귀비의 나이 37세였다고 한다.
양귀비의 시신은 그 후 길가에 구덩이를 파서 매장하였다.
살아 있을 당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천상의 공주처럼 살아왔던 그녀의 죽음을 참으로 처참했다.
미인박명이라고 했던가?
경국지색이라고 했던가? 결국 미모를 너무 탐하던 현종 역시
황태자에게 제위를 빼앗기고 은퇴를 하여 쓸쓸히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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