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군조선을 개국한 단군왕검의 14세때의 모습 | |
졸본부여의 토착세력들에게 쫓겨나 소서노와 연타발,그리고 비류부족의 도움으로 압록강변 골본성에서 일어난 고추모의 고구려는 끝질긴 의지와 생명력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결국 만주와 한반도.연해주.내몽골지역을 지배하고 고추모 선조들의 고향인 북경까지 지배했다. 900년 고구려(高九黎)의 기원은 B.C 239년에 해모수(解慕漱)에 의하여 건국된 나라이다. 해모수의 고구려이전인 단군조선의 제후국 시절인 고리국까지 올라가면 1천년이 넘는 나라가 고구려다. 북부여를 해모수의 고향이름(고리국=북경근처에 위치했던 단군조선의 제후국)을 따서 고구려(高九黎)라 불렀다고 [한단고기(桓檀古記)]의 [단군세기(檀君世紀)]에 기록되어 있다. 고리[=골=구리=구려]는 고리족을 의미하고 고리국은 고리족의 나라를 의미하고, 고구려[고고리=고씨의 구리]는 지배층이 고씨이고 구성원들은 고리족의 나라를 의미한다 하겠다.
▲ [지도설명] 원 표시는 세계문명의 시원이 되는 홍산문화가 일어난 곳이며, 청동기문화가 일어난 지역. ? 플러스코리아 | |
고리족(코리족)의 실체는 무엇인가?
백두산지역의 신시배달국에서 산동.중원지역으로 내려와 청구국을 개국한 치우천황이 바로 고리(구리.구려)족의 황제이며, 치우천황은 옛날의 천자였다고 사마천의 [사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고리족은 청동기문명을 일으킨 단군족으로 중국문헌에는 예맥족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부여.고구려의 선조라고 기록하고 있다. 전쟁의 신 치우천황이 철갑옷을 입고 쇠가면을 썼다는 것은 치우의 고리족이 그 만큼 쇠를 제련하는 기술이 뛰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동기문명을 일으킨 고리족의 일부가 홍산문화가 있는 요서지역에서 동북으로 이동하여 단군조선을 개국하였고, 요서지역에 남은 원 고리족이 단군조선시대에 단군왕검의 아드님(부소)이 제후로 임명된 고리국으로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 존재했고, 단군조선의 붕괴후 일부가 동북으로 이동하여 단군조선을 계승하여 부여와 고구려를 개국한 것이다. 참고로 단군왕검에게는 4아들이 있는데 후에 2대 단군이 되는 부루 그리고 부소(고리국왕) 부우(진번국왕) 부여(부여국왕) 이있었는데 역시 고리족이 개국한 부여란 이름은 후에 이 단군왕검의 넷째아들 부여를 따서 세운 국가다. 그러니까 고리족은 단군조선을 개국한 중심종족으로 단군조선을 계승할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단군조선의 계보상 54대 단군이자, 해모수가 개국한 부여(고구려)의 7대 단군이자, 고구려의 1대 태왕이라고 할 수 있는, 해모수의 손자 고진(한나라에서 도망하여 번조선을 무너뜨린 위만조선의 위만의 아들 우거의 침략을 격퇴)의 아들 고추모이 얼마나 고난을 당하며 고생을 했던가!! 동부여에서 대소형제들의 시기질투음해로 사경을 헤매다가 결국 고두막이 해모수왕가를 무너뜨리고 개국한 졸본부여로 피하여 동명성왕 고두막의 아들 고무서 단군이 아들이 없어 졸본부여의 단군에 오르지만, 결국 또 토착세력들에 의해 ?겨나 남하하여 결국 소서노와 연타발, 그리고 비류부족의 도움으로 압록강변에 고구려를 개국하지 않았던가! 동부여에서 피신할때 혼인한 예씨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유리, 그래서 3번이나 결혼을 해야하는 가정사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졸본부여 고무서 딸이 낳은 아들은 왕위에 오르지만, 결국 졸본부여 토착세력의 허수아비노릇만하다가 결국 동부여 대소에게 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 고구려(고고리)-전쟁에서 승리한 후 개선하는 고추모의 모습묘사 | | 결국, 부러진 칼자루를 들고 아버지를 찾아온 예씨부인이 낳은 유리가 고구려 2대왕이 되고, 아버지 고추모의 고난과 비젼을 공유하면서 고구려의 초석을 쌓는다. KBS'바람의 아들'의 유리왕(정진영 역)은 해명태자.여진왕자 등 아들들의 죽음에 슬퍼하며 왕이전에 중앙집권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5부족 세력들에게 자신의 자식들을 보호하고 왕권을 강화하여 왕실을 보호하려는 아버지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유리가 아버지 고추모의 고난과 비젼(다물정신)을 공유하지 못했다면 민족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고구려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북방의 맹주는 무휼(송일국 역)의 대사처럼 추모신검이 아니라, 고난을 이겨내는 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결국 대무신왕이 고추모와 유리왕의 애환을 부여을 정복하고 대소왕을 죽임으로 깨끗히 씻어준 것이 아니겠는가!!
KBS'바람의 나라'의 주인공[대무신왕]이름은 무휼(無恤)이다. 고구려 제2대 유리왕(琉璃王)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다물국왕(多勿國王) 송양(松讓)의 딸이다. 14년(유리왕 33) 11세 때 태자가 되어 정사를 맡아 보다가 15세 때 즉위했다. 27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고구려의 국가체제 정비와 영토확장에 큰 공헌을 했다.
22년 동부여를 병합하고, 26년에는 압록강 상류의 개마국(蓋馬國)을 정복하여 국토를 살수(薩水) 이북까지 확대시켰으며, 이어 구다왕국(句茶王國)을 정복했다. 28년 한(漢)나라 요동태수(遼東太守)의 침략을 막아 냈다. 32년 왕자 호동(好童)에게 낙랑국(평양지역에 위치한 동이족인 최씨 낙랑국. 단군3조선 중 번조선에 속했던 요서지역 낙랑에서 한반도로 이주했다)을 공격하게 했고, 37년에도 낙랑을 공격했다. 안으로는 좌우보(左右輔)체제를 확립하여 국정전반의 중요문제를 다루게 함으로써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 성립의 기초를 마련했다. 외교면에서도 32년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고구려를 공략하기위해 고구려 남부지역인 한반도 평양지역에 후한의 낙랑군을 설치. 후한의 낙랑군의 유물들과 묘비석들이 평양에서 발굴되자, 일제 식민사관론자들은 한4군을 한반도에 설정하려는 배경이 되는 이유다. 그러나, 한나라가 번조선을 무너뜨린 한나라출신의 위만조선을 침력하다가 번조선 북부의 졸본부여(진조선)의 고두막 단군에게 패배한 나머지, 후에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졸본부여의 고두막 단군이 위만조선지역에 설치한 4개의 군이 소위, 한4사군의 실체이며, 이들 4군은 번조선에 해당하는 요서지역에 있던 지역이다.고로 식민사관론자들이 주장하는 한4사군은 없었다)에게 사신을 보내 국교를 열었다. 44년에 죽었으며, 대수촌원(大獸村原)에 장사지냈다. 시호가 대무신왕인 것은 재위중에 주위의 많은 나라를 공격하여 혁혁한 무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동명성왕은 고추모가 아니라,졸본부여를 개국한 고두막이다.
▲ 12한국시대 <1대 안파견 환인: 김산호 화백의 상상도> | | B.C 108년에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요하 동쪽 부여의 일부 지역을 점령하였을 때 졸본부여를 개국하게 되는 동명성왕 고두막은 스스로 장수가 되어 한나라 군대와 싸웠다.
[한단고기]에는「계유년(B.C 108년) 이 해는 북부여 고우루 단제(高于婁檀帝) 13년이다. 고두막은 사람됨이 호탕하고 용맹하여 군사를 잘 다루었다. 일찍이 북부여가 쇠약해지고 한나라 도둑들이 왕성해짐을 보고 분연히 세상을 구할 뜻을 세워 골본(忽本=고리가 적통이라는 의미다)에서 즉위하고 스스로 동명(東明)이라 하였는데, 어떤 이들은 단군조선 47대 고열가(高列加) 단군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을해년(B.C 106년)에 고두막이 스스로 장수가 되어 격문을 전하니 열흘이 못되어 5,000명이 모여 들었다. 이르는 곳마다 무적이니 한나라 도적들은 먼 곳에서 그 모습만 보고도 흩어져 버리므로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구려하(九黎河:고대에는 혼하 또는 요하 옆에 구려(고리) 또는 고구려(고추모의 고구려로 보면 안된다. 고추모의 선조들의 나라였던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였던 고리국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경근처가 본래 동북으로 이동하여 부여.고구려.몽골을 개국했던 고리족의 고리국 본거지였다)의 수도가 있었다고 요하 또는 혼하를 구려하라 불렀다.)를 건너 요동의 서안평(西安平)에 이르니 바로 옛 고리국(고離國)의 땅이었다.」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 [한단고기]기록을 보면 졸본부여를 개국한 동명(東明)성왕의 원래 이름은 고두막이고, 동명은 천제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부른 칭호이다. 그리고 요하근처가 수도였던 고리국(고離國)은 고리국(高離國)을 발음대로 다른 한자로 적은 것으로, 고리(古離=高黎)는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무리라는 뜻이다. 즉 천손족이란 의미로 부여와 같은 뜻이다. 그리고 요동의 서안평이 고리족의 옛땅이였다고 하니 압록강변에서 일어난 고추모의 고구려가 왜 그렇게 요동지역과 북경지역을 공략하려고 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위 문구에는 동명이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가 자꾸 고리족의 땅을 공격하니 격퇴시키기위해서 구려하(九黎河)를 건너 요동(遼東)의 서안평(西安平)에 이르렀다고 적혀 있다. 환단고기 대진국본기에는 서안평이 서요하(西遼河) 부근에 있는 임황이라고 적혀 있으므로, 위에 나온 구려하는 서요하를 가리키고, 요동은 북경위쪽인 난하 동쪽 지역을 가리킨다.
따라서 고고리를 개국한 고추모를 고구려인들이 왜 졸본부여를 개국한 동명성왕 고두막과 동일시한 개국신화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고리족이라는 자랑스런 혈통적 자부심과 고리족의 나라인 단군조선과 부여를 계승했다는 정통성때문인 것이다.
▲ 배달한국 건국시조 커밝한 한웅 ?플러스코리아 | |
* 개천 원년 ( BC 3,898년 ), 커밝한 한웅은 백성들이 추대를 받아 한웅(天皇)의 자리에 오르면서, 배달한국의 개천(開天)을 만천하에 선포하였다. 천황의 통치이념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즉 홍익인간(弘益人間)이었다. 지구상에 수많은 나라가 있었지만 이렇게 지도자가 통치철학을 내세우고 개국(開國)한 경우는 없다.
* 홍익인간의 이념 *
1. 사랑의 윤리 (愛倫) : 부모 자식간의 사랑
2. 예절의 윤리 (禮倫) : 통치자와 백성간의 예법
3. 도리의 윤리 (道倫) : 스승과 제자간의 예법
* 커밝한 한웅은 풍백,우사,운사에게 명하여 백성들의 생활이 유익하도록 기본법을 제정하도록 하였다. 법이 생기면서 사람들의 분쟁이 사라지고, 사회의 질서가 바로 서게 되었다.
* 기본법 *
1. 결혼예물은 짐승의 가죽으로 한다.
2. 곡식 물건을 교환하는 시장법
3. 부자(父子)와 군신(君臣), 남녀의 행동거지를 명확히 구분함
4. 음식, 의복, 주거의 제도
5. 미혼자들은 머리를 땋아야함
* 나라의 각종 행사엔 백성들이 모여 열을 지어 돌면서 공수(貢壽), 두열(頭列)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한님을 찬양하고 나라의 번영과 백성들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 농사일을 원활히 하기위해 1년을 365일로 정하는 달력(月曆)을 만들었다. 또한 원활한 교역을 위해 산목(算木)이라는 숫자와 계산법을 만들어 보급하였다.
* 커밝한 한웅이 고시례(高矢禮)에게 명하여 새로운 작농법을 연구, 개발하게 하니 새로운 농사법이 개발되어 큰 성과를 거두었다. 농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고시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도 수확의 일부를 고시례에게 바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 신치 혁덕(神誌 赫德)이 사슴의 발자국을 본떠서 녹도문(鹿圖文)을 만들었다.
▲ 중국의 입장에서 그린 중국 벽화 속의 '치우천황' | | 1대 거발한 환웅(居發桓, 94, B.C 3897, 120세, 일명 배달 환웅) 2대 거불리 환웅(居佛理, 86, B.C.3803, 102세) 3대 우야고 환웅(右耶古, 99, B.C.3717, 135세) 4대 모사라 환웅(慕士羅, 107, B.C.3618, 129세) 5대 태우의 환웅(太虞儀, 93, B.C.3511, 115세) 6대 다의발 환웅(多儀發, 98, B.C.3419, 110세) 7대 거련 환웅(居連, 81, B.C.3320, 140세) 8대 안부련 환웅(安夫連, 73, B.C.3239, 94세) 9대 양운 환웅(養雲, 96, B.C.3166, 139세) 10대 갈고 환웅(葛古 또는 독로한(瀆盧韓), 96, B.C.3070, 125세) 11대 거야발 환웅(居耶發, 92, B.C.2970, 149세) 12대 주무신 환웅(州武愼, 105, B.C.2878, 123세) 13대 사와라 환웅(斯瓦羅, 67, B.C.2773, 100세) 14대 자오지 환웅(慈烏支, 109, B.C.2706, 일명 치우천황, 151세) 15대 치액특 환웅(蚩額特, 89, B.C.2597, 118세) 16대 축다리 환웅(祝多利, 56, B.C.2453, 99세) 17대 혁다세 환웅(赫多世, 72, B.C.2452, 97세) 18대 거불단 환웅(居弗檀, 48, B.C.2380, 일명 단웅(檀雄), 82세) 감국의 부왕에 오른 단군
단군세기(檀君世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 분(단군)의 덕망(德望)이 신인(神人)과 같아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복종하였다. 그의 나이 14세 되던 갑진(甲辰, BC 2,357)년에 감족의 임검 웅씨(熊氏)왕이 그의 신성(神聖)함을 듣고 그를 부왕(副王, 裨王)으로 삼아 나랏일을 대행하도록 하였다.``
초대 단군임검∼21세 소태(蘇台) (B.C.2333∼1286 : 1048년간) 1대 단군 임검(王儉, 93, B.C.2333) 2대 부루 단군(扶婁, 58, B.C.2240, 태자) 3대 가륵 단군(嘉勒, 45, B.C.2182, 태자) 4대 오사구 단군(烏斯丘, 38, B.C.2137, 태자) 5대 구을 단군(丘乙, 16, B.C.2099, 羊加) 6대 달문 단군(達門, 36, B.C.2083, 牛加) 7대 한율 단군(翰栗, 54, B.C.2047, 羊加) 8대 우서한 단군(于西翰, 8, B.C.1993, ? ) 9대 아술 단군(阿述, 35, B.C.1985, 태자) 10대 노을 단군(魯乙, 59, B.C.1950, 牛加) 11대 도해 단군(道奚, 57, B.C.1891, 태자) 12대 아한 단군(阿漢, 52, B.C.1834, 牛加) 13대 흘달 단군(屹達, 61, B.C.1782, 牛加) 14대 고불 단군(古弗, 60, B.C.1721, 牛加) 15대 대음 단군(代音, 51, B.C.1661, ? ) 16대 위나 단군(尉那, 58, B.C.1610, 牛加) 17대 여을 단군(余乙, 68, B.C.1552, 태자) 18대 동엄 단군(冬奄, 49, B.C.1484, 태자) 19대 구모소 단군( 牟蘇, 55, B.C.1435, 태자) 20대 고홀 단군(固忽, 43, B.C.1380, 牛加) 21대 소태 단군(蘇台, 52, B.C.1337, 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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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 색불루(索弗婁)∼43세 물리(勿理) (B.C.1285∼426 : 860년간) 22대 색불루 단군(索弗婁, 48, B.C.1285, 욕살 고등의 아들, 우현왕을 거쳐 즉위) 23대 아홀 단군(阿忽, 76, B.C.1237, 태자) 24대 연나 단군(延那, 11, B.C.1161, 태자) 25대 솔나 단군(率那, 88, B.C.1150, 태자) 26대 추로 단군(鄒魯, 65, B.C.1062, 태자) 27대 두밀 단군(豆密, 26, B.C.997, 태자) 28대 해모 단군(奚牟, 28, B.C.971, ? ) 29대 마휴 단군(摩休, 34, B.C.943, ? ) 30대 내휴 단군(奈休, 35, B.C.909, 태자) 31대 등올 단군(登 , 25, B.C.874, 태자) 32대 추밀 단군(鄒密, 30, B.C.849, 아들) 33대 감물 단군(甘物, 24, B.C.819, 태자) 34대 오루문 단군(奧婁門, 23, B.C.795, 태자) 35대 사벌 단군(沙伐, 68, B.C.772, 태자) 36대 매륵 단군(買勒, 58, B.C.704, 태자) 37대 마물 단군(麻勿, 56, B.C.646, 태자) 38대 다물 단군(多勿, 45, B.C.590, 태자) 39대 두홀 단군(豆忽, 36, B.C.545, 태자) 40대 달음 단군(達音, 18, B.C.509, 태자) 41대 음차 단군(音次, 20, B.C.491, 태자) 42대 을우지 단군(乙于支, 10, B.C.471, 태자) 43대 물리 단군(勿理, 36, B.C.461, 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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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세 구물(丘勿)∼47세 고열가(古列加) (B.C.425∼B.C.238 : 188년간) 44대 구물 단군(丘勿, 20, B.C.425, 욕살) : 나라 이름을 대부여라 고치고 三韓을 三朝鮮으로 개정 45대 여루 단군(余婁, 55, B.C.396, 태자) 46대 보을 단군(普乙, 46, B.C.341, 태자) 47대 고열가 단군(高列加, 58, B.C.295, 대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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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 58년(B.C.238) 단군조선을 폐관하고, 이후 6년간 오가(五加)들이 함께 다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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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 배달국 단군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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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메소포타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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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7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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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 국(3301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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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3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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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국(1565년간) 태호복희시대(B.C 3528~3413) 치우천황시대(B.C 2706~2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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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인의 메소포타미아 정주 황제 헌원(B.C 2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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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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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2096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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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夏)왕조(B.C 2232~1762) 상(商)왕조(B.C 1762~1452) 은(殷)왕조(B.C 1452~1118) 주(周)왕조(B.C 1118~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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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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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왕조(B.C 250~207) 한(漢)왕조(B.C 206~A.D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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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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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桓紀) 9202 *개천(開天) 5901 *단기(檀紀) 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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