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으로 건물의 주가를 높여라
앞 장에서 임차인 재구성, 리모델링, 신축 등으로 임대수익을 올리는 세 가지 방법을 알아봤다.
건축물의 구조 변경이나 임차인 교체를 통해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도 있지만, 건물 자체의 가치를 끌어올려 임대수익의 상승을 꾀할 수도 있다. ‘100% 임대 완료’가 아닌, 스토리텔링을 통해 건물 자체의 주가를 높이는 것이야말로 부동산 투자 ‘고수’들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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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공간 자체가 주인공이었지만 지금은 그곳을 채우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공간 과잉의 시대, 빌딩을 소유하는 게 답이 아니라,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이창길 토리 대표)
“건물을 짓고 100% 분양만 되면 끝나던 시대가 지나갔다. 빌려주고 잊어버리던 공간에서 임차인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패러다임이 완전히 달라졌다. 건물주들이 빨리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 (김성순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 리테일 선임상무)
건물을 사거나 새로 짓고 공실 없이 임대를 완료하는 것이 여전히 많은 건물주들에겐 일차적인 목적이다. 강남대로 한복판 더없이 좋을 수 없는 입지에 들어선 건물들도 공실이 넘치는 상황이니, 어떻게 하면 꼬박 꼬박 월세를 잘 낼 임차인을 찾을 것인가가 당연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이름 있는 브랜드, 사람들 몰리는 핫한 업종이 들어와 준다면 금상첨화다. 더구나 지금은 사상 최저금리 시대이고, 수명이 길어지면서 꾸준한 ‘수입’ 창출처가 필요해졌을 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격 상승이 그리 기대할 만한 상황이 아니란 점에서도 임대수익에 대한 니즈가 커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건물 외관·내부 인테리어·콘텐츠…스토리의 3요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고,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임차인들에게 월세를 받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공간 자체, 건물 자체의 가치를 높이면 돈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간 컨설팅 업체 토리의 이창길 대표는 “사람들이 소비하는 형태가 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시간을 보기 위해 시계를 사지 않잖아요. 똑같습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에 가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데 커피라는 소비와 카페라는 공간이 동원되는 거죠. 그러면 당연히 기분 좋은 공간이 어디인가 생각하고 찾아가지 않겠어요. 공간의 역할 자체가 달라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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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가치가 올라가고 덩달아 임대수익까지 높아진다는 데 마다할 건물주가 어디 있을까만, 문제는 이 ‘가치’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다.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드는 예가 있으니 바로 ‘장진우 식당’이다. 이제 이름만 들으면 알 정도로 유명해진 이곳이 이태원 경리단길 뒷골목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그저 입지가 별로 좋지 않은 허름한 골목길에 자리 잡은 식당에 불과했다. 간판도 없이 매일매일 메뉴가 달라지는, 예약도 받지 않는 그 식당이 유명해지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경리단길은 핫한 상권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상가 건물은 물론이고 인근의 주택 가격까지 덩달아 뛰었다. 빌딩매매 전문 업체 알코리아에셋이 경리단길 85개 건물 매매현황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0년 3.3㎡당 3108만 원이던 평균 매매가가 2014년엔 5426만 원까지 올랐다. 땅값은 더 올라 같은 기간 3.3㎡당 3413만 원에서 6183만 원으로 두 배가량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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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단길이라는 하드웨어에 장진우 식당이라는 스토리 소프트웨어가 들어선 결과다. 이를 건물주와 임차인의 관계로 비유하자면, 건물 가치를 높이는 데는 어떤 건물이냐보다 어떤 임차인들이 공간 활용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하드웨어 자체에 스토리가 있는 경우도 있다. 40피트짜리 컨테이너 200개를 쌓아 만든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커먼 그라운드’, 버려진 정미소가 패션쇼 및 파티 장소로 변신한 ‘대림창고’를 비롯해 공장지대에서 예술과 문화의 거리로 거듭나고 있는 성수동 등이 대표적인 예다.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광고 카피처럼 인위적으로 만드는 경우와 그 자체가 가진 역사, 두 가지가 있다”는 김성순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 리테일 상무의 말을 적용해보면 커먼 그라운드는 전자요, 대림창고는 후자에 속하는 케이스다.
외관이 가진 스토리 외에도 스토리를 입히는 또 다른 요소들이 존재한다. 유럽의 골목길을 재현한 판교의 명소 ‘아브뉴프랑’과 오피스 공간을 리테일로 리뉴얼한 목동 ‘테이스티(Tasty) 41’ 등을 성공시킨 김 상무는 “‘상환경’이라고 해서 내부를 독특하게 꾸미는 것과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가 공간 가치를 좌우하는 스토리”라며 “보통 건물주들은 본인이 직접 영업을 하는 게 아닌 만큼 좋은 스토리를 찾아다니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건물은 하나의 유기체예요. 어떤 콘텐츠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색깔이 바뀌죠. 건물주들은 남의 스토리를 사는(buy) 겁니다. ‘그랑서울’의 ‘식객촌’도 허영만 작가의 스토리를 산 것이지 원래부터 갖고 있던 게 아니죠. 그러려면 건물주 자체가 공부를 많이 하고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요즘 건물주들은 브랜드 답사를 위해 직접 해외에 다녀오기도 하는 등 노력을 많이 해요. 그렇게 준비된 건물주들은 같은 땅에서 훨씬 더 밸류를 높이는 결과를 낳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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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차인이 중요하다는 데는 이창길 대표도 의견을 같이 한다. 건물 자체의 가치를 높여줄 임차인을 끊임없이 찾는 것이 더 큰 미래의 이슈라는 것. 그도 그럴 것이 부동산 투자 경험이 많은 자산가들은 당장 매월 규칙적인 임대수익을 발생시키는 것을 넘어 장기적으로 건물 가치를 띄운 후 되팔거나, 건물 가격이 올라간 만큼 대출을 발생시켜 다른 건물에 투자하는 식으로 수익 규모를 키운다. 물론, 건물의 가치가 올라가면 좋은 임차인들이 서로 들어오기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임대수익이 발생하니 ‘선순환’이 이뤄지는 구조다.
입지보다 공간 활용이 중요, 부동산 가진 자산가들에게 ‘기회’
이처럼 절대적으로 ‘스토리’가 공간 가치를 좌우하게 된 배경에는 스마트폰의 보급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라는 배경이 깔려 있다. 예전처럼 교통이 편리하고 입지가 좋아야 상권이 뜰 수 있었던 시대에는 로케이션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의 지도를 이용해 어디든 찾아갈 수 있게 돼 ‘어디(where)’보다는 ‘무엇(what)’인지가 중요해진 것. 더구나 스토리가 좋으면 사용자들이 알아서 사진을 찍고 퍼다 나르며 홍보를 해줄 뿐만 아니라, 이를 보고 다시 사람들이 찾아가기 때문에 위치 개념은 그리 심각한 요소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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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자 환경이 녹록지 않다고 하지만, 오히려 자산가들에게는 지금이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성순 상무는 “개인이 상가 투자 등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이미 공간을 보유하고 있는 자산가들이 명확한 콘셉트를 갖고 건물에 색깔과 스토리를 입힌다면 입지에 상관없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건물주가 임차인을 ‘함께 건물 가치를 높여가는 동업자’로 생각하고 파트너십을 유지해야 한다”고도 덧붙인다.
박진영 기자│사진 김기남·이승재 기자, 한국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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