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만년의 역사(버클리 대학 한국학교재 서문)
[자료의 근거]
글쓴이 한국학교재, 서프라이즈 http://www-nozzang.seoprise.com/board/view.php?uid=6067&table=forum1
율곤학회
(2002년 강상원 박사님이 미국에서 율곤선생님께 보내온 자료입니다.
서툰 영어로 번역을 했습니다.
해석을 먼저 싣고 뒷편에 원문을 올립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역사에는 두 가지 역할이 있다. 하나는 파괴자로서의 역할이며 다른 하나는 구원자로서의 역할이다.
인류의 역사가 과거로부터 전달하는 메시지는 인간의 정신이나 능력을 죽일 수도 있고 혹은 보다 강력하게 증대시킬 수도 있다.
만일 인간의 역사가 압제, 온순, 복종 및 노예근성으로 얼룩져 있다면, 그로부터 그들은 무능력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고 추론해 낼 수 있다.
이러한 억압의 역사는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유전되고 있는 버전이다: 온순한 농부와 같은 민족이며, 항상 반도 안에서만 으르렁거렸던 까닭에 그들은 그들의 정신 속에 매우 많은 한을 쌓아올렸다. 외부로부터 966번의 침략을 받았음에도 모두 물리쳤으며(그것에 자부심을 느껴야하는가?), 결코 다른 나라의 영토를 침범한 적이 없었으며, 숱한 압제와 정복으로부터 살아남아 생명력 있는 나라를 세운 민족, 이것이 오늘날의 한국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관의 가장 명백한 원인은 일제 식민시기에 있다. 모든 식민 지배세력들은 피지배인들의 정신 속에 열등감, 패배감 그리고 좌절감을 주입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일제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허락되는 모든 힘을 다하였다; 이는 16년간에 걸친 한국역사의 편집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사(조선의 역사), 조선사를 근본적으로 말살하지는 못했는데, 현대 남한 역사학 분야의 창시자인 이병도가 (일제의)조선사 편집에 있어 열성적인 참여자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이병도는, 일본인들이 그들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우회적으로) 여러 세기에 걸쳐 사대주의를 행했던 이씨 왕조를 이용하는 것에는, 저항하지 못했다.
사대주의는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히 중국의 중도정치(유교정치)와 우세한 중화문화를 기꺼이 받아들여 주체성을 손상시키는 관념론이었으므로, (일본인들이) 왜곡할 한국역사의 근거가 이미 정립되어 있었는데, 일본인들은 이미 준비된 그 토대 위에 한국인은 열등하다는 그들의 버전을 단지 세웠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역사에 있어 현재의 패러다임(통설) 속으로 침투하고 있는 또 다른 역사적 관점이 있다. 민족사관 혹은 민족주의 역사다.
현재의 (역사적)통설로 주장하고 있는 모든 사실을 부인할 뿐 아니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웅대했던 역사관을 그려 보이고 있다.
한국은 강대하고 강력했던 대륙의 강국이었다.
지배 영역은 남시베리아의 바이칼호로부터 양자강에 이르렀으며, 동이(東夷)라는 강력한 전사(戰士)들이 존재했는데, 이들이 중화문명의 창시자로 일컬어졌다. 동아시아에 있어 군사와 문화적 힘이 가장 뛰어났던 민족이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바대로 모든 생각과 은유들을 구사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지난 역사는 다음의 몇 구절로 표현될 수 있다.
거대한 나라였다. 거대한 나라 : 나라는 왕(king)이나 봉건 영주들(vassals)이 아닌 하느님의 아들(son of heaven)과 제왕(emperor)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리고 피지배자가 아니라 지배자였으며, 문명의 수신자나 전달자나 아닌 문명의 건설자였다. 그리고 유약한 농부가 아니라 강한 전사들에 의해 통치되었다.
이것이 국민들에게 긍지를 심어주는 역사적 전통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약소국으로서의 현재의 대한민국, 그리고 강국으로서의 한국이라는 관점이 대립과 분열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원이 어디든, 형성과정이 어떠하든, 한가지 관점이 다른 한가지 관점을 누르고 널리 퍼지게 된다면 결과는 철저하게 달라질 것이다.
만일 전자의 관점이 우세하다면, 국민들은 그들이
현재 향유하고 있는 중용적이며 평범하며, 적당히 민주적이며 자본주의적인 국민적 임무 속에서, 언젠가는 일본을 능가할 것이라는 간절한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에 매우 큰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만일 후자의 관점이 우세하게 되면, 그들은 예전처럼 거대한 나라, 한국을 건설하기 위해 무엇에든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 페이지는 한국사람들에게 매주 주요한 부분인, 동이(東夷)라고 알려진 민족의 초기역사를 담고 있다.
동이(東夷)는 동아시아의 다음과 같은 다른 민족들까지도 포함한다. : 쥬신족(만주족:여진), 몽고족, 키탄족(거란족), 흉노(훈족), 기타 등등.
http://www.berzinarchives.com/e-books/historic_interaction_buddhist_islamic/map27.jpg
아주 오랜 시대에 민족적인 역사기술이 대부분 이루어졌다.
그러나(그런데) ‘공식으로 인정된 자료’에 비해 이 시대를 말할 수 있는 자료들은 매우 빈약하다고 할 수 있다.
B.C.7193. 환인(하느님)은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의, 한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한국은 열두 민족으로 구성되었다. 이것은 동이(東夷)라는 민족으로 구성된 민족공동체 안에서의 부족연맹으로 생각된다.
B.C.7193∼B.C.3898. 한국은 7명의 환인에 의해 계승되어 7대나 통치되었다.(환인은 아마 한 개인의 이름이라기보다 통치자의 칭호였을 것이다)
B.C.3898. 박달나라 건립. 최초의 동이(東夷) 나라. 판도는 다음과 같다. (각 방향으로의 최대 넓이)
• 북(北):바이칼호 주변. 스타노보이 산맥
• 남(南):양자강( 지금의 강소성(Jiangsu), 상해(Shanghai), 안휘성(Anhui)을 포함한다)
• 동(東): 러시아 연해 지방
• 서(西):돈황(燉煌)
http://www.magma.ca/~mtooker/cities/images/jsu_map.gif
B.C.3898∼B.C.3804. 제1대 환웅, 거발한 통치(환웅은 이름이 아니라 왕의 칭호)
• B.C.3804∼B.C.3718. 제2대 환웅, 거불리 통치.
• B.C.3718∼B.C.3619. 제3대 환웅, 우야고 통치.
• B.C.3619∼B.C.3512. 제4대 환웅 모사라 통치.
• B.C.3528. 왕세자의 아들인 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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