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선사의 선사상(仙思想) 특강
제가 먼저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어느 정도나 공부를 하셨는가 보려고. 그 전 송광사에서 있었던 일인데 불교를 어느 정도 아는 선비 하나가 승려들을 골탕을 먹일 생각으로 송광사를 찾아 왔어요. 스님에게 절을 하고 나서
"스님 하나 물읍시다." 하니
"물으쇼." 그랬죠. 그러니까
"시방 삼세에 어느 곳에나 (동서남북 사유 상하) 부처님이 안 계신 곳이 없죠."
"아 그렇죠. 다 계시죠."
그렇죠 다 계신다고 배웠죠. 왜 대답들 안 하세요. (웃음) 계신다고 그랬죠. 그러니까 사방 사유하면 동서남북에다가 그 사이까지 하면 팔방이 되죠. 상하하면 전부가 다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우주 허공에 부처님이 충만해 계신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스님이 그렇다고 그러니까
" 내가 지금 똥이 마려운데 어디다가 싸면 좋겠읍니까?" 라고 물었읍니다. 한 번 대답해 보세요. 공부들 얼마나 하셨는가 한번 봅시다. 한 아주머니가 말하길 "화장실로 가죠." 청산께서 말씀하길 화장실로 가요. 거기엔 부처님 안 계시가니...아 싸긴 싸야겠죠. (웃음...) 말씀들 해보세요. 생각나는대로. 틀려도 좋으니까. 이제 법사반은 졸업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 정도 대답은 하실 수가 있어야 되겠죠.
...............
대답이 없으니까 청산께서 이제 대답을 해드리겠습니다. 이건 제 대답이 아니라 송광사 주지스님의 대답입니다.
"네 상투 끝에다 싸라!"
바로 이렇게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다보면 다 아는 것 같지만은 어떤 질문이, 불교의 핵심을 딱 집는 질문이 들어오면 또한 막힙니다. 이것을 제가 그 간에 불교를 공부하면서 많이 느낀 것이고, 또 우리 큰 스님들을 뵈면서도 많이 느낀 것이고, 그 간에 이곳에서 강의를 해주시는 선생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도 또 그런 생각들을 느껴봤어요. 다시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들이 어떻게 생각하면 금방 불법을 알 것 같은데 또 냐면 어떻게 생각하면 금방해낼 것같이 쉽게 쥐어지는 것 같았는데 어떻게 들으면 도저히 우리는 할 수 없이 수백 수천생을 수도해야, 될 수 있는 느낌을 가지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들을 해봅니다. 더우기 훌륭한 학자나 훌륭한 스님이 말하는 것을 뒤에서 가만히 들어보면 저 양반이 알기는 많이 아는데 불교의 핵심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들이 가끔 듭니다.
그러니까 표현을 자기 아는만큼에서 자꾸 전개시키다 보면 말이 이상스럽게 들릴 수 있겠지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느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딱 닥쳐놓고 보니까 그전이나 지금이나 다른 데가 없다 그런 얘깁니다. 그것은 뭐냐. 핵심을 알 수가 있어야지. 그러니까 그것은 노트나 사전이나 녹음테잎같이 수록은 많이 해놓았는데 내것이 아니니까 네말을 해봐라 하면 할 수가 없다는 얘깁니다. 그러겠죠. 그런 생각을 머리속에 담어 두시고 지금부터 한시간을 저하고 싸움을 해보십시다. 그래가지고 이 자리에서 도대체가 부처님은 무엇을 가르쳤고 나는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무엇을 어떻게 배웠으며 어떻게 하면 불법의 진면목을 알 수 있을까~ 오늘 당장 끝을 냅시다.“
저는 조금 질이 안 좋았던 사람이에요. 지금 학인들을 보면 너무나 착실해. 과거에 저는 山寺를 다니면서 큰스님들을 뵈올 때 의문이 있으면 놔주질 않았습니다. 내가 의문이 있으면 그 스님에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그것을 해결할려고 노력을 해야지 그 기회가 자주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산사에 힘들여서 갔다가 그 스님 뵙고 절 몇자리 하고 대중들과 같이 강의하는데 잠깐 듣고 알던 모르던 간에 인사 한번 꾸뻑하고 와버리고 말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좋은 선물 가져다가 준다고 해서 극락 빨리 가거나 자기 마음 빨리 깨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고 와버리면 항상 도로아미타불이여. 그러니 오늘 한 번 저를 애를 먹여 보세요. 그래 가지고 여기서 무엇인가 한 번 소득이 있는 시간을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이 뭐입니까?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게 뭐냐. 불교는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깨우치는 것이라고 그랬죠. 우리 정리를 한 번 해보면서 질문이 있으면 바로바로 하세요. 내가 누구인가를 깨우친다. 나란 무엇이냐? 나라는 것은 이 육신이 내가 아니라 육신을 마음대로 지배하는 소위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 또 이두인 이라고 하는 머리가 다른 그 무엇! 또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혼! 같은 것입니다. 영혼이나 마음이나 이두인이나 다 같은 거예요. 또는 그것을 부처라고도 하고 또 그것을 중생이라고도 하기도 하죠. 그것을 법이라고도 하고 그것을 또 소라고도 합니다. 표현만 다르지 내용은 같다 그런 얘깁니다. 그래서 불교의 근본은 나를 알자는 것이죠. 나를 아는 사람을 도를 깨쳤다고 하고 나를 아는 사람을 부처라고 그러죠. 여기까지는 정리가 다 되셨습니까? 그럼 내가 질문을 한번 해볼께요.
몸과 마음이 둘입니까, 하나 입니까? 라고 물으니
하나 입니다. 혹은 둘입니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어렵게 생각하시면 뻥뻥해서 아무 것도 안됩니다. 편안하게 생각하십시요. 조금 전에 말씀드리기를 육신이 내가 아니라 육신을 지배하는 그 무엇, 그것을 혼이라고 해도 좋고 마음이라고 해도 좋고 불성이라고 해도 좋고 소라고 해도 좋고 법이라고 해도 좋고 도라고 해도 좋습니다. 이름은 어떻게 되었든지간에 육신을 부리는 것이 있지 않느냐, 그것을 불교에서는 편리하게 부르기 위해서 약속하기를 마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과 육신을 당장 둘로 만들어 놔버렸는데 이게 하나 입니까 둘입니까? 어느 남자 학인이 말하길
"아 그런데요 분별하는 가운데에서는 마음과 몸을 둘로 볼 수가 있고, 또 몸이 먼저다 이렇게 볼 수도 있고 마음이 먼저다 라고 볼 수도 있으나 만약에 분별하지 않는 지혜로 본다면 공이 곧 색이고 색이 곧 공이기 때문에 또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경지에서 본다면 마음과 몸은 바로 없는 것일 수도 있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도 있고 하나가 아니라고도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대답하시길 그건 답변이 아니지. 명쾌해야지. 하나면 하나다. 둘이면 둘이다. 아니면 아니다 맞으면 맞다해야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면 정확한 답변이라고 할 수가 없죠. 다시 말해서 육신에서 마음이 나온다고 하면 몸의 느낌으로 마음이 나온다면 느끼는 것은 무엇이 느끼느냐 그런 얘깁니다.
우리가 어떤 물체를 봤다고 합시다. 똑같이 보는데 있어서 거기다가 마음을 쓰지 않으면은 본 것을 모릅니다. 우리 그런 경우가 많죠. 똑같이 어떤 노래를 듣는데 어떤 사람은 듣고 아 그거 기가 막힌 노래다 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 노래를 들으면서 딴 생각을 해버리고 아 그거 들으나 마나다 또는 멍하니 앉아서 들으나마나다 하는 사람이 있죠. 바로 그것은 마음의 작용이다 그런 얘기예요. 이런 것들은 중요한 얘깁니다. 육신과 마음이 하나라고 한다든지 육신에서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든지 그런다고 한다면 수양을 할 필요가 없어요. 무엇 때문에 힘들여서 공부합니까! 죽어버리면 그만인데 육신에서 마음이 나오는데. 육신과 마음이 하나라면 죽어버리면 마음도 죽어버리는데. 그렇죠. 그래요 안그래요. 육신이 썩어서 사대가 각리해 버리면 마음도 없어진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아까 그 학인이 말하길
" 환원되는 것이죠." 그러자 말씀하길 아 환원이 어디로 되느냐. 대자연으로 되어 버린다 그런 얘기라면 그럼 육신이 대자연으로 환원이 되면 마음도 대자연으로 환원이 되어 버리는 것 아닙니까. 다시 학인이 말하길
" 마음은 그렇지 않죠." 그러자 말씀하길 왜 그렇지 않습니까. 육신과 마음을 하나라고 본다면 그렇단 얘기지요. 하나로 보면 그럴 수밖에 없죠. 그렇죠. 결과적으로 오늘 여기에서 1년 반동안 공부한 것을 보면 하지 않은 것이나 똑같은 입장이 되어 버렸다 그런 얘깁니다. 그래서 녹음 테잎이나 노트해 놓은 책에 불과하지 않다 그런 얘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공부할 것은 바로 그 핵심을 꽤뚫어 버려야지 끝장이 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끝이 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제 마음가짐을 다시 새롭게 하고 오늘 여기서 제가 설명을 해드릴테니까 한 번 자세히 들어보세요. 저 옷 좀 벗어도 될런지요. 안 더우세요. (학인들의 여담과 웃음) 우리가 다 웃을 수 없어요.
세 사람의 벙어리가 달구경을 나왔다가 한 사람이 뭐라고 했냐면 "다이도 바이다" 그랬습니다. 혀가 잘 안뎬歐 달도 밝다 소리를 다이도 바이다 하니까 또 한사람 벙어리가 있다가 "마이나 또이또이 해이해." 말이나 똑똑히 하라고. 그러니까 한 사람이 있다가 "둔다 반번." 둘다 반벙어리다라고. (웃음) 우리가 지금 웃지만 정신돌지 않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여기!!! 누가 지금 정신을 차리고 있읍니까!!!
우리가 우리를 알아야지 그때 비로서 인간이지 이거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깨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버리면 다음에 개새끼도 될 수 있고 소새끼도 될 수 있고 벌레새끼도 될 수 있고 이거 형편없는 귀신도 될 수 있고 아수라도 될 수 있는데 이거 뭐 정신 차렸다고 할 수 없읍니다. 도저히 정신 차렸다고 할 수 없어요. 그러자 한 아주머니가 말씀하길
" 지금까지 교수님들이 불교의 핵심적인 선사상을 집중적으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불교의 이론적인 면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그러자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작년에 참선을 두 달이나 배웠는데, 그리고 이제는 불교가 무엇인가를 알았으니까 강의는 그렇게 듣더래도 집에가서 연구를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우선 줄여서 얘기를 하죠. 맨처음에 부처님께서 무엇부터 설하셨다고 그랬죠. 아함경을 설했다고 그랬죠. 각 경마다 그 경의 핵심이 사구게로 나와있읍니다. 우리가 잘 아는 금강경 사구게와 같이 그 경의 핵심이 사구게로 나와있읍니다. 이 나와 있는 사구게를 가만히 보면 거기서 무엇이 보이느냐, 나의 마음이 보인다 그 말입니다. 부처님의 근본이 보이고 나의 마음이 보여. 부처님의 근본과 나의 마음과 다릅니까? 같죠. 바로 그래서 이것을 잘 보고 그 뜻을 알면 바로 나를 아는 것입니다. 금강경 사구게부터 말씀드리죠.
凡所有相이 皆時虛忘이다. 若見諸相 非相하면 卽見如來라
그랬죠. 자 봐요. 범소유상이 즉 모든 나타나는 현상들이, 모든 전개되는 현상들이, 앞에 나타난 頭頭物物을 상이라고 그러죠. 생각으로 나타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생각 속에서 생각을 일으키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앞에 보이거나 냄새 맡거나 듣거나 또는 안이비설신의로 느끼는 모든 이런 것들이 처음부터가 허망한 것이다. 약견제상 비상하면 즉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닌 것을 보면, 그것은 허망한 것을 알면 즉견여래라. 그 사람은 바로 여래를 본 것이다. 그렇습니다. 금강경 전체의 뜻이 여래가 무엇인가 여래를 보는 것이 어떻게 보는 것인가 하는 것을 가르쳤죠. 여래가 무엇입니까? 부처님 이름 중에 하나죠. 부처와 우리는 같다고 그랬죠. 如來는 바로 나의 實相입니다.
모든 상이 상 아닌 것을 알면 그리고 모든 것들을 그렇게 보면 그 때 부처를 본 것이다. 아주 간단합니다. 제가 비유를 하나 들어볼께요. 여기 이렇게 거울이 있습니다. 그 거울에 이 사람이 그 앞에 서면 그렇게 보이고 저 사람이 그 앞에 서면 그렇게 보이고 또 저 사람이 그 앞에 서면 그 사람 모습으로 보이고, 산 앞에다 대면 산이 보이고 들 앞에다 대면 들이 보이고 꽃 앞에다 대면 꽃이 보이고 또 노란 것을 앞에 갖다 놓으면 거울이 노래지고 파란 것을 갖다 놓으면 거울이 파래지고 형형색색 그 앞에 갖다 놓은대로 거울이 그렇게 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울의 실체가 아니다 그런 얘깁니다. 실체입니까? 아니죠. 바로 그겁니다. 범소유상이, 거울에 비치는 모든 하나하나의 얼굴들이 상이, 개시허망이다, 처음부터 거울의 실체가 아니다 라는 말입니다. 약견제상비상이면, 만약 거울에 비치는 상들이 거울의 實相이 아닌 것을 안다면 그 사람은 거울의 실체를 본 사람이다 그런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런데, 거울은 형체가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은 형체도 없기에 거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수용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거울에는 보이지 않는 감정까지는 넣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형체가 없는 것이기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이 다 들어갈 수 있읍니다. 조금 이해가 가십니까? 자 봐요. 우리 여기 흰 종이가 있다고 그럽시다. 흰 종이가 있는데 거기다가 좋은 말을 쓰면 좋은 말이 쓰이고 나쁜 말을 쓰면 나쁜 말이 쓰이고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 그려지는대로 나오고 색을 칠하면 색이 칠해진대로 나옵니다. 그러죠.
그러나 종이의 근본은 깨끗한 이 상태였었지 거기다가 이것 저것을 그려 놓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죠. 분명하죠. 이제 허공을 한번 얘기하죠. 작은 거울 보다는 큰 허공에다가 비유해 봐요. 허공은 비어있기에 이 나무도 심을 수 있고 저 나무도 심을 수 있고 인공위성도 보낼 수 있고 로켓트도 보낼 수 있고 비행기도 날 수 있고 애드벌륜도 띄울 수 있고 불꽃놀이도 할 수 있고 고층빌딩도 들어가는 등 못들어가는 것이 없읍니다. 그렇죠. 우주 이 허공 속에 달도 있고 해도 있고 별도 있고 다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허공의 실체는 아닙니다. 그래요~. 허공은 허공으로해서 남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허공보다도 더 큰 것은 뭐냐. 분명하긴 하지만은 찾을 수 없는 것이 뭐냐! 이것이 바로 마음입니다. 마음이란 그 형체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부처도 몰랐거니 가섭이 어떻게 전할 것이냐" 라고 말했습니다. 부처가 몰랐는데 어떻게 가섭에게 전해. 부처도 자기 실체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이 말은 자기가 자기를 볼 수가 없다 그런 얘깁니다. 알았어요. 왜 볼 수가 없느냐. 거울이 없다고 해봐요. 내가 내 얼굴을 어떻게 봅니까.... 못 보죠. 볼 수 있어요? 더군다나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았는데 아주 작은 생각도 하기 전인데 누가 그 본체를 찾아 낼 수가 있느냐 그 말입니다.
그래서 見性成佛이라고 하지 見心成佛이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꾸 좀 어려워집니까? 들을 만은 해요. 좀 어렵죠. 그러나 자기를 찾는다는 것은 옛 스님들 말씀에 세수하다가 코 만지는 것보다 더 쉽다고 그랬습니다. 왜 그러냐!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이기 때문입니다. 학인들이 지금 귀를 기울여서 마음을 집중시켜서 듣는 바로 당체가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쉽지요. 다른 것이라면 조금 앞에 있어도 기어가서라도 잡아야 되고 걸어가서라도 찾아야 되지만 이것은 갈데가 없어. 바로 모른다는 놈이 알아야 할 놈이고, 알아야 하네 모르야하네 하는 바로 그것이 부처고 중생이다 그 말입니다. 자 이제 금강경 사구게 설명은 이만 하겠습니다.
다음에 법화경 사구게를 한번 해보죠. 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모든 법이라는 것이 모든 현상이 모든 생각들이 처음부터가 그대로 고요해, 처음부터가 무슨 시시비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이예요. 처음부터 시시비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대로 그대로 고요해. 佛子行道已 하면, 만약 불자가 그것을 그렇게 생겼다는 것을 안다고 하면 인정을 한다고 하면, 來世得作佛이다, 바로 너는 부처가 될것이다 그런 얘깁니다. 이 얘기가 금강경 사구게하고 다릅니까? 같죠. 제법종본래, 모든 일체의 현상들이, 상자적멸상, 처음부터가 그대로 고요해, 처음부터가 그대로 고요하다는 것은 어떤 얘기냐하면 是非 分別이 없는 본래의 깨끗한 우리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니 그 쓰임은 應無所住 而生起心이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본래의 생긴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항상 편안합니다.
적멸이라는 것은 편안하다는 얘기거든. 다시봐요. 거울이 있어, 거울의 앞에가서 성질을 낸다든지 주먹을 휘두르고 인상을 써 본다던지 하면 거울이 주먹쓰고 인상을 쓰게 되지, 또 거울에 가서 환하게 웃고 기가 막히게 즐거운 표정을 하면 즐겁게 돼버려. 거울에 가서 펑펑 울어대고 금방 죽을 것 같이하면 거울이 그렇게 돼. 그러나 거울의 본체는 그것이 아녀. 속지 않어! 속지 않어! 그러니까 항상 편안할 수 밖에 없지. 앞에가서 무엇이 나타나던 간에 그것은 내가 아녀. 그래 우리는 뭐냐. 이 범부란 것은 업으로 인한 색깔이 진하게 칠해 있는 것입니다.
업이란 것은 우리가 살면서 본연청정심을 잃고 살며 망상과 분별심을 일으키어 허황된 것을 실다운 것인 줄 잘못 알고 고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업들을 하루 빨리 소멸해야 합니다. 비유하자면 빨래를 보면 그런 것을 알죠. 별거 아닌 물감이 슬쩍 묻었을 때는 지우기가 쉽습니다. 그 옷감에 도저히 지우기 힘든 물감이 묻었을 때는 잘 안지워지죠. 그럴 때는 어떻게 합니까? 예를 들어서 기름 때가 묻었다고 한다면 휘발유로 지워야 지워지죠. 바로 그런 작업이 예불하고 참회하고 주력하고 경을 읽고 참선하는 것입니다. 뭐 어렵게 생각할 것 하나도 없어요. 하나하나 쉬지않고 열심히 하면 자기도 모르게 업이 소멸되면서 스스로의 본연청정심(本然淸淨心)만 드러납니다.
자 이제 법화경 사구게를 들어보니까 조 한번 해보죠. 화엄경 전체의 뜻이 뭐냐. 우리가 언제 시간을 내서 화엄경을 다 읽어 볼 수 있습니까. 이 사구게는 화엄경의 핵심입니다.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근본을 알고 싶어 한다면, 화엄경의 근본, 인간의 근본, 우주의 근본, 삼세일체불의 근본, 나의 근본입니다. 應觀 法界性하라.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조해 봐라 법계의 성품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봐라. 법계의 성품이 뭐예요. 나의 성품이지, 나의 근본이지 그렇죠.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삼세일체불의 근본을 알려며는 모든 부처님의 근본을 알려고 하면 나의 법성을 너의 불성을 찾아라 그말입니다. 그렇게 해놓고 마지막에 一切有心造이라, 다른 것이 아니라 마음 하나다, 마음 하나로 이렇게 생각했다가 저렇게 생각했다가 자꾸 집을 지었다가 허물었다가 하는 것에 지나지 않더라. 결과적으로 화엄경의 핵심사상도 다른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다, 모든 것들은 마음의 장난이다라는 얘기죠.
그 다음에 열반경 사구게가 있어요. 돌아가시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같은 경, 거기에 보면 諸行이 無相하다. 제행이 뭐입니까. 자기 모든 행동 다시 말하면 모든 전개되는 상, 모든 전개되는 앞에 벌어지는 일들이. 그러죠. 다 똑같은 얘기가 지금까지 몇번 중복되어 나옵니다. 모든 상들이, 모든 전개되는 형상들이, 모든 전개되는 일들이, 모든 생각들이 무상하다 그말입니다. 그 말은 처음부터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은 실다웁지 않다. 실다웁지 않다는 것은 본체에, 본바탕에, 근본자리에 어긋난 것이다. 그말입니다. 근본자리에서 봤을 때는. 是生滅法이라, 다른 것이 아니라 생각이 일어났다가 꺼졌다가 일어났다가 꺼졌다가 하는 것에 지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生滅滅已 寂滅爲樂이라,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이러한 생각들이 고요해지면 바로 그것이 즐거움 하나뿐이여. 여기에 즐거움이라는 것은 말하자니까 즐겁다는 얘기지 그건 즐거운 것도 아니여. 본체란 것은 절대 즐거운 것도 아니고 빛이 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작년인가 어디 가가지고 어떤 스님한테 법문을 들으니까 부처님의 자비광명이라~ 하면서 광명을 얘기했는데 그건 잘모르는 광명이여. 부처님의 광명이 어느 절에서 누가 공부를 하는데 대낮같이 환하게 빛이 비친다는데 그것이 자비광명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그것 잘못 생각하면 큰일입니다. 부처님의 근본자리를 알면은 그것 그대로가 전체 자비광명인 것입니다. 그것을 광명이라고 말해버리니까 빛이 훤하게 나는 걸로, 등불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거기에 끌려서 마음의 등불을 켜야 된다 뭐 마음의 등불을 밝혀야 된다라고 하는데 마음에 뭐 등불을 밝힐데가 어디가 있읍니까. 마음에 등불자리가 들어갈 데가 어디에 있어요. 단 마음을 찾는 것을 말을 하자면 마음의 등불을 밝힌다라고 얘기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공부하는 사람은 더욱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말끝만 따라다니는 것이 중생들이기 때문에 자꾸 어려워진다 그런 얘깁니다.
자 이제 각경의 사구게를 다 마쳤읍니다.
도움이 될런지 모르겠지만 한 말씀 드리겠읍니다.
"두번째 화살을 맞지 말아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잡아함경에 있읍니다. 그것이 무슨 얘기냐. 어떤 일이 닥쳐가지고 딱 충격을 받았을 때 그것은 첫번째 화살입니다. 그것을 마음에 새기면 그것은 두번째 화살이라 그런 얘깁니다. 그러니까 거울에 비유했듯이 거울에 성질낸 놈이 탁 나타나면 성질나 보인다고 그랬죠. 그렇다고 거울을 깨면 쓰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첫번째 맞는 화살은 그건 빨래를 한다면 쉽게 지워질 수 있는 것이 묻었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이놈의 두번째 화살이라는 것은 거기다 자꾸 칠을 또하고 또하고 해. 자꾸 칠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는 빨기가 힘들어지죠. 바로 그 얘깁니다. 어떤 불교학자 한 분이 아들을 다 키워놓았는데 그 아들이 사고로 죽어버렸다고 해요. 그래서 눈만 감으면 아들만 보이고 아들만 생각이 나고 정신이 없었더라고 그래요. 그런 것은 아마 우리가 상상으로는 알 수가 없고 정말로 아들을 잃어본 사람만이 그 심정을 이해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 육칠개월을 미친 사람같이 다녔는데 그러다가 어느 날 잡아함경을 떠들러 볼 기회가 있어서 보다가 그 글귀에 모든 그 때까지의 생각이 한 순간 무너져 버렸다고 합니다. 바로 그것은 뭐냐 그 자식을 잃은 슬픔이 우리의 본체가 아니다라는 그런 얘깁니다. 그것은 본체가 아니예요.
그런데 거기에 우리가 휩쓸려 넘어가서 그것이 우리의 본체로 알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서 여러가지 감정의 변화가 생긴다 그런 얘깁니다. 그러니까 자꾸 업이 더욱 두꺼워지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읍니다. 아함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금강경에도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땅히 주함이 없이 마음을 내라. 그것은 뭐냐면 네 생긴대로 살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긴대로 못살고 있습니다. 생긴 것이 어떻게 생긴지를 모르니까. 마음이 어떻게 생긴 것인가를 모르니까. 부처님이 응무소주 이생기심하라라고 한 것은 그렇게 생긴 것이니까 그대로 살아라 그런 말씀입니다. 본체가 우리의 실체가 그렇게 생겼어, 두 번째 화살을 안 맞게 생겼어, 두번째 화살을 맞으라고 해도 맞지 않게끔 되어있다 그 말이예요.
그러나 중생들이 그렇게 하면 못알아들으니까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아라라는 얘기도 하고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는 얘기도 하고 원래의 생김새가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인데 원래보면 깨달음의 자리에서 보면 모든 것이 그렇게 되어있어. 그런데 중생들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야 이놈들아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다 약견제상비상이면 즉견여래라 만약 그렇게 생각을 우선 해야지 앞으로 네가 너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내세득작불이다, 그렇게 생각을 해야지 다음 생에, 여기서 다음 생이라는 것은 죽은 다음이 아니라 이 순간 이후에, 이 순간이후가 내생이죠, 이 순간 이후에 네가 너를 볼 것이다 그런 얘깁니다. 이제 알겠죠.
깨우친 분이 계십니까. 몇번이나 다른 생각을 해보셨어요. ..... 바로 그것이 자기도 모르게 쌓아놓은 업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계속 정진하다보면 모든 업이 싹 없어지고 정말로 고요한 본체가 나타납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제대로 공부를 다 한것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죠. 지금까지 여러가지 책을 들춰 보았는데 내내 말은 똑같습니다. 모양새만 틀리지.
凡所有相이 皆時虛忘이다 若見諸相非相이면 卽見如來라, 應無所住 而生起心이다, 두번째 화살을 맞지 말아라... 똑같은 얘기예요. 더 이상 얘기할 것이 없읍니다. 우리가 지금 부처님의 49년 설법을 전부 줄여보니까 뭐가 나왔죠. 凡所有相 皆時虛忘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가 나와 버렸다구. 그럼 그것을 알면 49년동안 설법한 전체의 내용을 우리가 바로 아는 것입니다. 일일이 책을 하나하나 안보드래도. 경의 내용을 줄여보면 應無所住 以生起心이며 [두번째 화살을 맞지 말아라]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禪家龜鑑의 첫 장을 펴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有一物於此하니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여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
이니라.
이게 뭔 말이냐면 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종본이래로 옛적부터 지금까지, 소소영영하여 항상 밝고 밝아서, 부증생부증멸이며 나은 것도 아니고 또한 죽은 것도 아니며, 명부득상부득이니라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는 것이다. 과연 어떤 것인가??? 다시 한번 얘기해줄께요. 유일물어차하니...여기 일물은 무엇입니까? 마음이죠. 마음, 중생, 부처, 영혼, 나, 바로 그것이죠. 여기에 마음 하나가 있는데 마음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런 얘깁니다,,, 종본이래로...이것은 어저께 오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제 오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부모가 나를 낳아주기 전에도 있었고 내가 이 육신을 벗어나더래도 존재한다 그런 얘깁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모든 생명들은 저 짐승 미물까지래도 영원히 살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어. 스스로 나는 영원히 살지 않고 죽는다고 하는 것 뿐이지 부처를 믿던 믿지않던간에 예수를 믿던 믿지않던간에 이미 영원히 살게끔 되어있어. 그런데 스스로들 우리는 금방 무슨 전쟁이 나서 죽는다 뭐 불에 의해서 심판을 받는다 이렇게들 생각만 하고 있는 것 뿐이지 본체란 것은 죽음이 없다 그런 얘깁니다. 생이 없는데 태어남이 없는데 어떻게 죽음이 있읍니까! 그래서 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 하는 것은 여기 내가 있는데 이것이 종본이래로 옛날부터 지금까지 항상 존재한다. 소소영령이라는 것은 꼭 밝다고만 생각하면 안되요,밝고 신령스럽게 항상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부증생부증멸이며, 이것은 낳은 것도 아니며 죽는 것도 아니며,,,명부득상 부득이라, 이름 지을 길도 없고 그림으로 그릴 수도 없다. 우리의 이름,나의 이름이, 태어났을 때 이름이 있읍니까, 없죠. 다만 약속을 하기를 사람이라고 약속을 해놓고 다른 애들하고 구별할려고 이름을 지어주고 너는 가 죽을 때까지 그렇게 약속을 하자해서 지어놓은 것이죠. 바로 이렇게 형상이 있는 것도 그러한데 하물며 형상이 없는 것을 어떻게 이름을 짓습니까. 그러나 나는 이름도 있고 별명도 있고 절에서 부르는 법명도 있지요. 벌써 이름이 세개죠. 이 마음이라는 것은 이름을 수십가지로 붙있을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선가귀감의 첫머리가 뭐냐. 여기에서 一物이라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실체인 마음을 말한 것입니다. 그것은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고 이름지을 수도 없고 그림으로 그릴 수도 없다. 이제 알겠죠. 그게 바로 나의 眞面目입니다. 본인이 본인의 마음을 찾아놓고 보면 이와같이 생겼는가 한번 보세요.
이렇게 생긴 것이 아니면 제대로 찾은 것이 아니죠. 제가 지금 얘기하는 것은 순간순간 깨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고,똑같은 얘기를 자꾸 반복해서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어려웁다고 생각을 하시는가 모르겠네요. 어렵긴 어려운데 들을만은 합니까? 계속 해드려도 되겠읍니까?
옛 조사님들 말씀에 開口卽差란 것이 입니다. 만약 누가 있어서 자기의 본체를 드러낸다고 하면, 말로써 부처가 이런 것이다라고 얘기를 한다면 당신은 입을 열기전에 이미 틀린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부처의 실체를 말로써나 생각으로써도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표시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무슨 얘기냐며는 어떠한 성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원래 생김새가 부처의 실체가 중생의 실체고 나의 실체죠. 나의 실체는 다른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근본자립니다. 그것이 마음의 근본자리가 이야기로 하라고 하면 힘들어진다 그런 얘깁니다. 힘들정도가 아니라 한번 해볼려면 이미 틀려져 버렸다 그런 얘기지요.
도라는 것은 마음이라는 것은 알고 알지 못함에 속한 것이 아니다, 안다고 해도 틀리고 알지 못한다고 해도 맞는 것은 아니다 그런 얘깁니다. 조금 어려워요. 조금 재미있는 얘기 잠깐 또 하고 머리 좀 식힌뒤에 다시 또 머리 좀 아픕시다. 머리 안 아프면 절대 공부 못해요. 한 순간 머리 아퍼야 됩니다. 옛날에는 법거량을 했지요. 해인사 선방, 내소사 선방, 또는 송광사 선방, 또는 수덕사 선방, 법주사 선방 이런데서 참선을 석달동안 정진하는 도중에 의문되는 것을 적어가지고 다른 선방으로 보냅니다. 답을 해가지고 보내라고. 누구든 공부를 많이 했는가 답을 해서 보내라, 어느 곳 선방수자들이, 실력자들이 모여있는가 한번 보자~하는 이런 것들도 있읍니다. 이제 우리 학인들 다시 한번 머리 아프게 좀 해야겠네. 그 중에 하나가 이런게 날라왔어요.
" 산중에 사람이 없으니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대답해서 보내라."
지금 산중을 가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데 사람이 없다. 어떻게 길을 찾느냐. 답들 한 번 해보세요. 우리가 지금 답장을 해서 보내야 하는데 이렇게 멍하니 있다가는 큰일나지.한 아주머니가 "소리를 지르면 되죠" 청산께서 말씀하시길 또 뭐 좋은 답변이 있습니까? 산중에 가다가 길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길을 찾을 수가 있겠느냐 그런 얘깁니다, 물을 사람이 없으니 물을 수도 없고..... 바로 그런 것이 선방의 법거래이고, 우리가 그런 것을 충분히 답을 할 수가 있어야지 그때 비로소 노트를 덮을 수가 있겠죠. 명쾌한 답을 시원스럽게 할 수 있을 때까지 쉬지 않고 정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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