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도 햄버거를 먹지 않았다. JTBC ‘미각스캔들’ 제작진이 시판 중인 햄버거와 감자튀김 등 패스트푸드로 세균 배양 실험을 한 결과다. 48시간 동안 세균이 잘 자랄 환경을 억지로 조성했는데도, 세균 수는 식품 규격기준 이하에 머물렀다. 심지어 ‘세균수 0’인 햄버거와 감자튀김도 있었다. 실험 결과를 담은 ‘미각스캔들’은 13일 일요일 밤 10시55분 JTBC에서 방송된다.
세균 억지로 배양해도 여전히 ‘깨끗’
‘미각스캔들’ 제작진은 패스트푸드 업체 A, B, C에서 구입한 햄버거와 감자튀김에 대해 세균 검사를 했다. 구입 후 2주 동안 실온에 방치했지만 외관상 ‘상했다’는 징후를 발견하지 못해서다. 담당 강수현 PD는 “함께 실험을 시작한 수제햄버거는 구입한 지 사흘 만에 상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지만 패스트푸드 업체에서 구입한 햄버거는 건조되기만 했을 뿐 전혀 변질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1차 검사는 세균 검출 실험. 서울 필동 동국대 식품생명공학과 김왕준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했다. 구입 후 뚜껑 없는 용기에 담아 2주 동안 방치한 햄버거와 감자튀김으로 시료를 만들어 ‘그람 염색법’에 따라 실험했다. 그람 염색법은 포도상구균·대장균·녹농균·수막염균 등 대부분의 세균이 보라색(그람 양성균) 혹은 빨간색(그람 음성균)으로 염색되는 시험법이다. 결과는 ‘세균수 0’. 충격적이었지만 세균이 살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람 염색법은 살아 있는 세균만 검출하는 시험법이어서, 번식하던 세균이 방치 시간이 길어지면서 죽어버렸을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배양을 해봐야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었다.
세균 배양 검사는 경기도에 있는 한 사설 식품위생검사기관에서 이뤄졌다. 이 기관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지정을 받아 운영하는 곳으로, 검사에 앞서 제작진에 익명을 요구했다. 세균 배양 검사를 위해 제작진은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새로 구입했다. 햄버거는 소스를 뺀 상태로 주문했다. 혹 햄버거 속에 뿌린 소스가 빵과 패티(갈아 만든 고기부침)에 스며들어 보존제 역할을 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감안했다. 구입한 패스트푸드로 배양시료를 만들어 35도인 인큐베이터 안에 48시간 동안 집어넣었다. 세균이 가장 잘 자라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결과는 A업체의 햄버거 패티에서 g당 130cfu(Colony Forming Unit·세균 군집수), 빵에서 g당 40cfu의 세균이 검출됐고, B업체의 햄버거에서는 패티에서만 g당 10cfu의 세균이 검출됐다. 나머지 C업체의 햄버거와 A·B·C 세 업체 모두의 감자튀김에서는 세균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현재 식품공전의 규격기준에 따르면 과자·사탕의 경우 세균수를 g당 1만cfu까지, 자판기 커피는 mL당 3000cfu까지 허용하고 있다. 세균이 잘 자라는 환경을 억지로 만든 상태에 48시간 동안 방치했는데도 햄버거와 감자튀김은 여전히 식품으로서 ‘매우 깨끗한’ 상태를 유지한 것이다.
이런 결과에 대해 하남주 삼육대 약학과 교수는 “패스프푸드가 무균 상태에서 제조된 것도 아닌데 놀랍다”면서 “세균도 포기한 식품을 사람이 먹어도 과연 안전할까 생각해 보게 된다”고 말했다.
썩지 않는 이유는 ?
햄버거·감자튀김 등 패스트푸드에선 왜 세균이 자라지 않는 걸까.
상온에 방치한 햄버거가 썩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 데 대해 전문가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요리연구가 김외순씨는 “식초에 담그는 장아찌도 조금만 관리를 안 하면 괴기 시작하는데…”라며 “상식에서 벗어난다”고 말했다. 또 배윤자 제과제빵요리학원 원장은 “100% 방부제가 들어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온에 놔뒀는데 변질이 안 됐다면 이는 물어볼 것도 없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곧바로 보존제(방부제) 검사에 들어갔다. 검사는 세균 배양검사를 한 경기도 식품위생검사기관에 의뢰했다. 식품에서 주로 사용하는 안식향산, 파라옥시안식향산, 프로피온산, 소르빈산, 데히드로초산 등 다섯 가지 보존제의 사용 여부에 대한 검사였다. 검사 결과, 시료로 제공된 패스트푸드 전체에서 이들 보존제는 검출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패스트푸드는 왜 상하지 않은 걸까. 혹 감자튀김의 맛을 내기 위해 사용한 소금이 보존제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제작진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감자튀김의 소금량을 측정했다. 감자튀김 1인분(90g)에서 검출된 소금의 양은 0.7g. 염도를 따지면 0.78% 정도다. 이에 대해 성신여대 식품영양학과 한영숙 교수는 “보통 김치의 염도가 2.5% 정도”라면서 “감자튀김의 소금은 보존력을 증가시킨 것이라기보다는 조미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보존제 검사 항목이었던 다섯 가지 보존제 이외의 다른 첨가제 사용이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이에 대한 패스트푸드 업체의 입장을 물었지만 업체들은 홍보팀을 통해 “첨가물이 일절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 자세한 답을 듣기 위해 지난 8일 ‘미각스캔들’ 제작진은 A, B, C 세 패스트푸드 업체에 찾아갔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담당자를 만나지 못했다. 촬영 이후 제작진은 각 업체에 서면질문을 보내 ▶햄버거와 감자튀김의 원재료와 조리법 ▶보존제 사용 여부 ▶상온에 둬도 상하지 않는 이유 등을 물었다. 하지만 11일까지 한 업체만 “답변할 수 없다”는 답을 보냈을 뿐 나머지 업체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는 상태다. 담당 강수현 PD는 “현 식품공전이 패스트푸드 등 ‘편의음식’은 원재료와 함량 표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긴 하지만 썩지 않는 햄버거를 보며 불안해하는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업체들은 패스트푸드의 구체적인 성분을 공개해 달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