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에 위치한 S그룹의 창업자 L씨가 생전에 살던 한옥 내에는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이 나무는 본래의 거목이 죽자 죽은 나무 등걸에서 새순이 나와 사람의 팔뚝 굵기까지 자란 것이다. 보통 그 정도 크기의 나무는 은행이 열리지 않는데 그 나무만은 굵은 은행이 주렁주렁 열린다. 이유는 고목과 새 나무는 뿌리가 동일하고 고목의 정기가 뿌리를 통해 새순의 나무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고목은 쓰러져 형체마저 문드러졌지만 새순이 싱싱하게 돋았으니 그 삶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사람이 자식을 두는 의미도 그러할 것이다. 자신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 사라지지만 자신의 세포 속 DNA가 그대로 전수되니 자신의 존재가 자식을 통해 계속 살아 있는 셈이다. 불가에 ‘나고 죽는 것이 없다(不生不滅)’란 말도 있다. 우주는 누구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고,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뫼비우스 띠와 같은 것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나타나는 것은 전부터 나타나게끔 오랫동안 준비된 것이 드디어 사람의 눈에 보일 뿐이다. 사람의 죽음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육체가 쇠해 변화된 것에 불과하니, 애당초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변하는 일은 있어도 사멸(死滅)하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자살하는 동물은 오직 사람뿐이다. 사람만이 자기의 목숨을 스스로 끊어 영생(永生)의 고리를 잘라내는 악업을 행한다. 풍수에서는 삶의 원동력인 생기가 부족하거나 생기를 받지 못할 때 자살을 한다고 본다. 사람이 활기차게 사는 데 꼭 필요한 생기로는 공기, 영양소, 물 등과 같은 생리적 요소도 있지만 꿈과 야망, 그리고 영감(靈鑑)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요소도 있다. 다른 동물은 생리적 조건만 갖춰지면 성장하고 번성하나, 영혼을 지닌 사람만은 신령적 생기까지 갖춰야 살 수 있다.
사람은 빵만으론 살지 못하니 자살은 그의 영혼에 끊임없이 삶의 에너지를 공급하던 생기가 언제부터인가 끊어져 그런 결과가 초래됐다고 본다. 모든 생기는 자연 속에 존재한다. 풍수에서는 생기가 왕성한 곳을 택해 살면 인생이 행복해지고 쇠잔한 운명도 다시 일어서고 병든 생명도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사람이 귀하거나 천하거나,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건강하거나 병드는 것 역시 생기를 받는 과소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고목이 뿌리를 통해 새 나무에 정기를 뿜어주듯 조상의 유골에서 발하는 생기와 에너지 역시 후손에게 오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후손들이 조상의 분묘를 잘 돌보는 것이 정신적 생기를 얻는 방법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지리학이 산천에서 연료와 곡식을 구하기 위한 학문이라면 풍수는 바람과 물에서 사람의 행복과 번영을 찾는 학문이다.
조제희 < 대동풍수지리학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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