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입자물리연구소(CERN)가 ‘힉스 입자일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입자를 관측했다’고 밝힌 것이2012년 7월이다. 당시 CERN은 다음 연구 대상으로 암흑물질을 지목했다. 암흑물질은 우주의 모든 물질(눈에 보이는 물질)을 합한 것보다 5배 이상 많고, 은하의 형태마저 일그러뜨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존재감이 큰 물질이다. 하지만 정체는 완벽한 미궁 속에 빠져 있다. 아직 한번도 직접 관측되지 않은 암흑물질 연구의 최전선을 가 보자. 암흑물질은 어떻게 존재가 확인됐을까. 우주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어떤 입자가 암흑물질의 후보로 꼽힐까. 특히 후보 가운데에는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입자인 ‘비활성 중성미자’도 포함돼 있다.
‘총알 모양 은하단’의 찬드라-X 망원경 그림. 암흑물질의 존재를 밝혀주는 직접적인 증거로 꼽히는, 은하단 사이의 충돌의 사례이다. 여러 방법으로 찍은 사진을 합성 한것이다.
암흑물질의 존재가 처음 제기된 것은 1960년대 미국에서다. 카네기연구소의 천문학자 베라 루빈이 우리은하에 있는 나선 팔의 회전속도를 측정한 뒤, 우리가 아는 물질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미지의 질량이 은하 안에 있음을 알아냈다. 질량만 놓고 보면 은하 안에 있는 물질의 거의 10배에 가까웠다. 이후 이 미지의 물질은 우리은하뿐 아니라 전체 우주에 존재하며, 눈에 보이는 물질의 5배 정도 질량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암흑물질보다도 세 배 이상 큰 에너지(암흑에너지)가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우리가 아는 물질은 우주의 5%도 채 되지 않았던 것이다(네이버캐스트 [암흑에너지] 참조).
암흑물질은 우리가 아는 물질과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연구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광자를 내지 않고 빛을 내는 물질과도 반응하지 않는 ‘침묵의 물질’이다. 하지만 최근 암흑물질의 존재를 밝혀주는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수십 개의 은하가 모여 있는 은하단 사이의 충돌이다. 은하단이 충돌하면 은하단을 구성하는 ‘무엇인가’는 종류에 따라 고유한 행동 패턴을 보인다. 예를 들어 가스 성분과 별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 마찬가지로 만약 은하에 암흑물질이 포함돼 있다면 암흑물질 고유의 행동 패턴을 보일 것이다. 2003년 막심 마르케비치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센터 박사팀이 발견한 ‘총알 모양의 은하단’이 이런 연구의 시작이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암흑물질은 직접 관측이 불가능하다. 다른 물질을 통해 간접적으로 관측해야 한다. ‘중력렌즈 효과’로 불리는 방법이 그 중 하나다. 질량이 큰 천체는 시공간을 휘기 때문에 뒤(먼 곳)에 있는 천체에서 오는 빛이 질량이 큰 천체 주변을 지나가게 되면 마치 볼록렌즈를 통과하듯 휘어 지구에 도달한다. 이것이 중력렌즈 효과다.
다시 총알 모양의 은하단 연구를 보자. 두 은하단이 서로 충돌해 지나간 장면을 중력렌즈 효과로 분석하면 두 개의 지점에서 중력렌즈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아래 그림 [2]). 이것은 중력렌즈 효과를 일으키는 무엇인가가 은하단이 충돌할 때 서로 충돌하지 않고 엇갈려 지나가 버렸음을 의미한다.
‘총알 모양 은하단’의 합성전 사진. [1]가시광선, [2]가시광선과 중력렌즈, [3]가시광선과 X선, [4]중력렌즈와 X선.
암흑물질의 존재를 부정하는 쪽(수정된 뉴턴 동역학1)) 에서는 이러한 중력렌즈 효과의 원인이 은하단안에 있는 뜨거운 가스라고 봤고, 암흑물질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암흑물질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X선 관측을 통해 뜨거운 가스 성분의 위치를 찾아본 결과 두 은하의 충돌 지점에 뭉쳐 있음을 알게 됐다. 가스 성분은 서로 전자기적 상호작용을 해 이동 속도가 느리다. 따라서 특별한 상호작용이 없어 이미 서로 지나쳐 통과해 버린 은하나 암흑물질과 달리 아직 통과하지 못하고 뭉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뜨거운 가스 성분은 중력렌즈 효과를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다. ‘무엇인가’는 서로 충돌 없이(즉 상호작용 없이) 엇갈려 지나갔다. 바로 암흑물질이다.
‘총알 모양 은하단’의 허블우주망원경 영상에 질량 밀도를 표시한 그림. 역시 두 개의 중력원이 나타난다.
총알 모양의 은하단 충돌 연구는 암흑물질 이론의 손을 들어주는 강력한 증거가 됐다. 이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됐다. 2005년 2월에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X선 관측선 찬드라-X가 또 다른 은하단 충돌 사례를 발견했다. ‘아벨520(A520)’이라고 이름 붙은 이 은하단 역시 2007년, 눈에 보이는 물질과 암흑물질이 극단적으로 다른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역시 암흑물질의 강력한 증거다.
하지만 이 은하단 충돌 사건에는 덧붙여 설명할 내용이 있다. 아래 분석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자. 은하(오렌지색)는 이미 충돌해 반대 방향으로 한참 지나쳐 버렸다(아래 그림 [1]) 암흑물질(푸른색)도 오렌지색 영역 끝까지 퍼져 있다(아래 그림 [2]). 하지만 뜨거운 가스는 충돌이 일어났던 가운데에 크게 모여 있다(녹색, 아래 그림 [4]) 여기까지는 총알 모양의 은하단과 많이 다르지 않다.
‘아벨 520 은하단’의 합성 전 사진. [1]휘도(은하 및 별의 밝기), [2]중력렌즈, [3]가시광선, [4]X선.
그런데 아벨 520에는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다. 먼저 아래 전체 합성 사진의 아벨 520의 왼쪽 아래 부분을 보면 밝게 빛나는 부분(오렌지색)이 있다. 은하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암흑물질(푸른색)은 없다. 은하와 암흑물질이 분리된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총알 모양의 은하단에서는 은하와 암흑물질이 이렇게 분리되지 않았다. 더 이상한 건 가운데 부분이다. 은하단이 지나가버린 한가운데(뜨거운 가스가 모여 있는 지역)에도 암흑물질이 보인다. 암흑물질이 미처 지나가지 못하고 남은 것처럼 보인다.
찬드라-X 망원경으로 찍은 ‘아벨 520 은하단’. 다양한 방법으로 찍은 사진을 합성한 것이다. 총알 모양 은하단과 미묘하게 모습이 다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암흑물질의 자기충돌(self-interaction)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원래 은하단이 충돌하면서 그 안의 은하와 암흑물질은 별다른 상호작용 없이 지나갔어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적긴 하지만 암흑물질 상호간의 충돌이 있을 수 있고, 이 때문에 은하에서 분리된 암흑물질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해석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왜 총알 모양의 은하단에서는 관찰되지 않고 아벨 520 은하단에서만 관찰되는지 석연치가 않다. 혹시 이 두 가지 충돌에 개입한 암흑물질이 다른 종류이기 때문은 아닐까. 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복잡한 충돌 과정, 예를 들어 은하단이 여러 번에 걸쳐 충돌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암흑 물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어떤 존재인지는 전혀 모른다. 심지어 종류가 하나인지, 둘 이상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학자들은 각기 여러 종류의 후보 입자들을 제안해 왔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지지를 얻는 후보는 ‘약한 상호작용을 하는 무거운 입자’ 즉 ‘윔프(WIMP)’다. 이 입자가 길고 이상한 이름을 갖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암흑물질이 될 표면적인 조건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후보 입자가 암흑물질이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우선 광자를 내지 않아야 한다. 즉 빛을 내지 않는다(‘암흑’이라는 이름은 그냥 얻은 게 아니다). 빛을 내지 않으니 보이지도 않는다. 광자로 주고 받아야 하는 전자기적 상호작용도 거의 없다. 이보다 약한 상호작용(중력과 약한 상호작용)만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무겁다.
윔프는 바로 이 조건을 만족시킨다. 하지만 윔프가 각광 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물리학자들이 표준 모형 이후 차세대물리학을 책임질 후보로 꼽고 있는 초대칭 이론 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초대칭 이론은 자연에 존재하는 기본 입자들이 사실은 모두 보이지 않는 짝이 있다는 이론이다. 다만 그 짝이 추상적이고 고차원적인 대칭성을 갖는다. 그래서 이름이 ‘초’대칭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어떤 변환을 했을 때 물리적 성질이 변하지 않는 게 대칭이다. 생활 속에서는 데칼코마니처럼 형태가 좌우로 같은 대칭이 있다. -1, 0, +1, … 이렇게 숫자도 대칭이 가능하다. 팽이처럼 회전시켜도 성질이 변하지 않으면 회전에 대해 대칭이다.
물리학에는 이보다 고차원적이고 심오한 대칭이 많이 있다. 초대칭은 그 중 하나다. 스핀2)이 1/2만큼 다른 입자가 짝으로 존재한다는 대칭이다. 예를 들어 전자에겐 초전자(스핀이 0)라는 짝이 있다.
표준모형의 입자와 초대칭 짝 입자. 17개의 기본입자로 이뤄진 표준모형은 고에너지 상태에서 불안정하다. 따라서 초대칭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초대칭 이론이다. 스핀이 2분의 1씩 차이가 나는 짝 입자의 존재를 가정했으며, 여러 가지 종류가 논의되고 있다. 최근 힉스 발견으로 의문이 늘고 있다.
만약 초대칭 입자가 특별한 조건과 함께 초대칭성을 잃는다면, 초대칭 입자 일부는 다른 초대칭입자로 붕괴하지 않고 우주에 안정하게 존재할 수 있다. 만약 이 입자가 약한 상호작용을 한다고 해보자. 말 그대로 ‘약한 상호작용을 하는 무거운 입자’가 된다. 바로 윔프다. 때문에 윔프는 물리학자들에게 유용한 초대칭 이론도 뒷받침하고 암흑물질도 될 수 있는 좋은 입자였다. 전세계에 약 20개 정도의 연구팀이 윔프 연구에 매진하고 있을 정도다. 암흑물질 후보 중에는 가장 활발하다.
하지만 윔프의 시대가 과연 계속될지는 의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입자 실험물리학의 성과가 이런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힉스로 추정되는 입자가 관측됐다. 이제 표준모형의 모든 입자는 다 발견했다(힉스는 아직 확인은 안 된 단계지만 거의 발견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입자 물리학자들이 힉스보다 오히려 초대칭 입자를 먼저 발견하리라 예측했다는 점이다. 이번에 힉스를 관측한 LHC에서도 이론상 힉스보다 초대칭 입자들이 더 많이 만들어졌어야 한다. 더 많이 만들어졌다면 관측 역시 먼저 됐어야 한다. 하지만 한 개도 성공하지 못 했다. 따라서 초대칭 입자가 과연 존재하느냐는 의문이 나온다. 일부 물리학자들은 ‘초대칭이론은 끝났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한다. 초대칭이론이 폐기되면 자연스럽게 윔프도 설 자리를 잃는다.
윔프 외에 다른 후보 입자가 여럿 있다. 윔프보다 가벼운 ‘액시온 ’은 한국도 적극적으로 연구에 참여하는 입자다. 하지만 최근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제3의 입자가 있다. 바로 ‘비활성 중성미자’다.
비활성 중성미자는 그냥 중성미자와 구분해야 하는 입자다. 일반적인 중성미자는 전자, 타우, 뮤온 중성미자 세 종류가 있으며 모두 표준모형의 기본입자다. 이들은 한때 암흑물질 후보였다. 한동안 질량이 측정 안 돼 질량이 0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작지만 질량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래서 양이 많으면(티끌 모아 태산) 암흑물질이 차지하는 비율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실제로는 전체 우주 질량의 0.5% 이하만 차지할 뿐이었다. 중성미자는 일찌감치 암흑물질 후보에서 제외됐다.
세 가지 중성미자는 서로 다른 종류의 중성미자로 변할 수 있다. 이것을 중성미자 진동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세 가지 중성미자 외에 다른 중성미자가 만들어질 수 있다. 새로운 중성미자는 약한 상호작용조차 하지 않으며, 질량은 다른 중성미자보다 무겁다. 이것이 비활성 중성미자다.
일본의 중성미자 관측시설 ‘슈퍼 카미오칸데’ 내부. 중성미자가 중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발견해 중성미자 진동현상 논의의 물꼬를 텃다.
비활성 중성미자가 부각된 것은 암흑물질의 운동성 덕분이다. 암흑물질은 운동성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운동성은 초기 우주에서 은하가 만들어질 수 있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우주 구조와 비교하면 존재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
입자가 만약 질량이 없으면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광자는 질량이 0이다). 질량이 있으면 그만큼 느려진다(상호작용이 생긴다). 중성미자는 질량이 아주 작으므로 빠르게 움직인다. 비유하자면 운동성이 좋다. 급팽창 전 우주 초기에 은하가 만들어질 때, 중성미자는 은하 규모보다 먼 거리를 활발히 움직인다(가열된 기체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그래서 이를 ‘뜨거운’ 암흑물질이라고 한다).
이 입자가 암흑물질일 경우 작은 구조의 은하는 형성되기 어렵다(입자가 마구 헤집어서 뭉치기 어렵다). 따라서 우주는 초기에 거대한 은하 덩어리에서 시작해서 마치 치즈 거품이 생기듯 그보다 작은 지금의 초은하단 구조로 나누어졌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관측 결과는 작은 은하단이 연결돼 거대한 초은하단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현실과 반대다. 안 그래도 양이 적어 후보에서 제외됐던 중성미자에게는 이런 약점도 있다.
윔프와 같은 무거운 입자는 운동성이 낮다. 따라서 이동 거리가 은하보다 크게 짧다. 이 물질은 은하단 등 거대한 구조를 만드는 데 유리하다. 이들 입자를 ‘차가운’ 암흑물질이라고 한다. 하지만 수십 킬로파섹(kpc, 1kpc=3260광년) 규모를 갖는 작은 은하의 구조는 잘 설명하지 못 한다.
마지막으로 두 후보 사이에 위치한 ‘따뜻한’ 암흑물질이 있다. 작은 은하 규모의 거리를 이동하는 운동성을 지녔고, 현재 관측되는 은하의 구조나 밀도를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 그 동안 여기에 해당하는 입자를 찾지 못했는데, 최근 비활성 중성미자가 후보로 꼽히며 주목을 받고 있다.
과연 누가 암흑물질의 정체일까. 이미 배제된 중성미자를 제외하고, 윔프, 액시온, 비활성 중성미자 중 관측에 성공한 입자는 하나도 없다. 가장 각광 받던 윔프는 초대칭 이론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위기에 빠졌다. 은하 구조를 설명하는 데에도 약점이 있다. 물론 아직 초대칭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가 많으므로 또다른 타개책을 찾을 수도 있다. 액시온은 답보 상태다. 비활성 중성미자는 이제 시작하는 느낌이다.
연구는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었다. 윔프는 과거의 영광을 유지하고 초대칭 이론이라는 금자탑을 완성해 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강호 비활성 중성미자에게 무릎을 꿇을 것인가. 액시온이 긴 기다림 끝에 왕좌를 차지할 것인가. 싸움은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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