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적벽, 그리고 천불천탑에 새겨진 백일간의 분홍꿈
- 전남 화순 초가을 적벽여행- 40년만에 문을 연 ''화순적벽''- 노루목·이서·몰염·창랑적벽 등- 천개의 석탑과 석불 ''운주사''- 화순 곳곳을 붉게 물든 ''배롱나무 꽃'' | 노루목적벽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망미정 앞에서 바라본 노루목적벽. 보통 화순적벽이라고 하면 노루목적벽을 일컫컫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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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거대한 바위절벽은 검붉게 치솟아 있었다. 그 앞을 흐르는 물은 갈수기였는지 나룻배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다.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은, 과거 천하절경으로 불린 ‘화순적벽’의 옛 모습이다. 사진 속 모습을 마지막으로 화순적벽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때가 1973년. 동북천 일대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날이었다. 이후 사람들의 발길도 끊어졌다.
그렇게 시간을 어느덧 40여년이 흘렀다. 굳게 닫아걸었던 문이 열린 것은 2014년이었다. 지나온 시간만큼 화순적벽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1985년 동북댐이 들어서면서 100여m에 달하던 화순적벽의 아랫도리도 물에 잠겼다. 나룻배가 지나던 물길도, 농부들이
가꾸던 논밭도, 옹기종기 모여 있던 마을의 집들도 모두 사라졌다.
| 망향정으로 가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보산적벽과 노루목 적벽. 앞 수목으로 뒤덮인 적벽이 보산적벽이고, 마치 산을 칼로 자른듯한 적벽이 노루목적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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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째 문 닫아건 ‘조선 10경’ 중 한 곳… 화순적벽
화순에서 적벽은 모두 네 군데다. 노루목적벽, 이서적벽, 물염적벽, 창랑적벽이다. 기골 장대한 옹성산 자락이 동복천의 물길과 만나는 곳에 네 개의 적벽이 줄지어 서있다. 그 길이만 무러 7
km다. 이 중 최고로 꼽히는 곳이 서로 마주보고 서있는 노루목적벽과 이서적벽이다. 보통 화순적벽이라고 하면 노루목적벽을 일컫는 말이다.
| 배롱나무 꽃이 활짝 핀 망미정 앞에서 바라본 노루목적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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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은 아무 때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반면,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은 적벽투어를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다. 적벽투어 중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곳은 누루목적벽을 바라볼 수 있는 망향정이다. 상수원보호구역 초소에서 보산적벽까지 이어지는 산길 5
km를
미리 예약한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산길을 몇 차례 굽어 돌자 시야가 확 트이면서 호수처럼 잔잔한 동복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노루목적벽 맞은편에 위치한 보산적벽 위의 평평한 구릉에는 망향정이 고요히 물에 잠긴 고향을 응시하고 있다. 망향정은 댐
건설 후 물에 잠긴 월평마을 등의 실향민을 위해 세운 정자다.
| 보산적벽 구릉 위에 자리한 망향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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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정에
대숲 사이로 난 수풀길을 내려가면 노루목적벽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망미정이 반긴다. 망미정은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정지준이 인조가 청 태종 앞에 무릎 꿇었다는 소식에 분개해 정자를 짓고 은둔생활을 했던 곳으로 수몰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망미정에는 반가운 글씨가 하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추협 공동의장으로 활동하던 1986년 쓴 현판으로
단아하면서도 힘찬 필체가 의병장을 기리는 민주화 투사의 기개를 보는 듯하다.
화순적벽의 웅장함은 그 앞에 서보지 않은
이들은 짐작조차 힘들다. 그 거대한 규모며 웅장한 기운은 글은 물론이거니와 사진으로도 다 담아낼 수 없다. 도저히 비슷한 곳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인 풍경이다. 이것이 화순적벽의 진짜 모습이다.
| 불사바위에서 바라본 운주사 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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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할 정도로 토속적인 천불천탑 ‘운주사’
화순에는 이름난 절집이 많다. 그중 천불천탑의 전설이 전해지는 운주사(雲周寺)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운주사는 ‘구름이 머무는 절’이란 뜻이다. 여느 절집처럼 운주사에도 전설이 있
| 운주사 곳곳에 버려진 듯 서 있는 석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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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도선 선사(827~898년)가 이 땅의 운이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운주사 골짜기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골짜기의 불상과 불탑들은 12세기 이후에 만들어졌다. 도선 선사가 죽은지 한참 뒤의 일이다. 저잣거리 중생들의 꿈이
도선 선사를 끌어들여 그러한 전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전설의 후광을 걷어내면 고려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될 뿐, 이
절의 내력과 유래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거의 없다.
절을 둘러보려면 일주문으로 들어서 대웅전까지 죽 걸으면서 양쪽으로
놓인 탑과 불상들을 보고, 대웅전 오른쪽으로 올라 불사바위까지 갔다가 다시 내려와 대웅전 왼쪽 길로 와불과 석탑들을 둘러보면
된다. 운주사의 석탑과 석불은 특이하다. 여느 절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모양도 제각각이고, 버려진 듯 아무렇게나
서 있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가만히 보면 이름난 석공이 새겼다고 하기에는 투박할 정도로 토속적이다. 불상이라기보다 벅수에
가까운 모습이다.
석탑도 모양이나 형태가 너무나 다양해 시대를 추측할 수 없을 정도다.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곳. 한 사찰에 보통 1~2기가 보통이다.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말이다. 그런데 여기 운주사의 탑은 수도 많지만 모양도
가지가지다. 어떤 탑에서는 백제의 기운이, 다른 탑에서는 신라의 기운이 느껴진다. 두 나라의 손길도 느껴지는 탑도 있다.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듯 하고, 주판알을 쌓아올린 것 같은 탑도 있다. 납작한 원반을 켜켜이 층층 쌓은 탑이며, 실 감는 실패
모양의 탑 등 가지가지다. 그렇게 운주사 곳곳에 21기의 석탑이 남겨져 있다.
수많은 석불 중 와불은 오직 하나다.
불사바위 반대편 산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다. 길이 12m, 너비 10m의 불상이 하늘을 보고 누워있다. 도선이 천불천탑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이 와불을 일으키려다 새벽닭이 울어 공사를 중단했다는 설화가 있다. 그래서 이 불상을 일으켜 세우면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이야기도 있다.
| 운주사 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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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연사 대웅전 앞 만개한 배롱나무 꽃을 사진으로 담고 있는 관광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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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염정 배롱나무 기둥은 김삿갓 기억할까
| 배롱나무 꽃이 만개한 몰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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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양반집에 많이 심었다는 배롱나무는 이름도 다양하다. 목백일홍 이라고도 하고, 가지 한 끝에만 살짝 손을 대도 온몸이 흔들리는
것이 간지럼 잘 타는 여자 같다고 해서 간지럼나무라고도 한다. 화순에는 가로수로 배롱나무를 심어놓은 곳이 많다. 도로가에는
분홍색의 배롱나무 꽃이 도열하듯 서 있다. 마치 꽃길을 달리는 기분이다. 정자나 사찰은 물론 산이나 들에도 배롱나무가 지천인 곳이
바로 화순이다. 초가을의 뜨거운 해보다 더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물염적벽의 물염정도 배롱나무가 활짝 피었다.
물염정은 물염 송정순이 16세기 중엽에 건립한 정자로 ‘물염(勿染)’은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티끌 하나 속됨 없이
살겠다는 뜻이다. 물염정은 김삿갓이 즐겨 찾던 정자로도 유명하다. 1850년대 두 번째 화순을 찾은 김삿갓은 52세 되던
1857년 아예 동복에 안주하면서 방랑생활을 마감했다고 전해진다. 물염정 옆에는 김삿갓 동상이 물염적벽을 응시하고 있다.
사평리
상사마을의 임대정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누정문화를 소개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별서정원이다. 1862년 조선 철종 때의
문신인 사애 민주현 선생이 조성했다. 사실 임대정은 여름철 연꽃이 만개했을 때가 가장 아름답지만 늦여름에 핀 배롱나무 꽃만으로도
신선이 노닐 것만 같은 정치를 자아낸다.
배롱나무 꽃여행의 절정은 만연사다. 만연산 중턱에 자리한 작은 사찰이다.
고려 희종 4년(1208년)에 만연선사에 의해 창건됐다고 전한다. 경내에는 1783년 제작한 괘불이 있는데 보물 제1345호로
지정되어 있다. 많은 이야기를 품은 사찰이지만 여행객들의 눈을 끄는 것은 단연 배롱나무꽃이다. 비록 한 그루 뿐이지만 몇백년은
되었음직한 고목은 붉은 화관을 쓴 모습이 때로는 처연해 보이기도 하고, 당당해 보이기도 한다. 초 가을의 붉은 해보다 더 붉은
만연사의 배롱나무 꽃 무릇 아래에서 잠시 한 낮의 더위를 식혀본다.
| 배롱나무 꽃이 만개한 임대정원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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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가는길=
수도권에서 가자면 호남고속도로로 장성갈림목으로 가서 고창~담양간 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담양분기점까지 간다. 담양분기점에서
우회전해 고서분기점까지 가서 창평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이어 나오는 창평나들목으로 나와 좌회전한 뒤 고서우체국에서 우회전해
887번 지방도로를 따라 담양군 남면소재지를 지나고 이서면사무소 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적벽이 늘어서있는 동복호가 나온다.
△먹을곳= 화순읍에 다슬기로 탕이나 수제비, 비빔밥 등을 내는 사평다슬기수제비(061-372-6004)와 보양식인 흑염소탕과 이서면의 적벽가든(061-372-5562)은 매운탕으로 이름 나있다.
△잠잘곳=
금호리조트 화순(061-370-5000)이 손꼽히는 숙소다. 도곡온천 부근에 숙소가 많은데
도곡온천관광호텔(061-375-0025), 도곡스파랜드(061-374-7600), 골드스파온천장(061-374-6006)을 비롯해
모텔들이 몰려있다.
| 적벽가든 매운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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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평다슬기수제비의 다슬기수제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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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록 (
rock@
edaily.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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