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 사이의 길을 여는 방편이었다
“고수레!”도 물의 신을 향한 기원의 하나
몸에 좋은 약수를 찾아 나서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봄과 가을이다.
강수량이 적어 약수의 효능과 맛에 치명적인 잡수가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이즈음은 나들이하기에도 좋은 때이므로 약수와 더불어 자연의 품속에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겨우내 움츠렸던 나목에서 기적처럼 새순이 돋고, 연분홍 진달래·벚꽃 같은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 산하를 물들이는 봄날.
만물이 소생하는 이 계절에 자연의 품에 안겨 생명의 물을 마셔보자.
한국인의 물 신앙
세계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물은 단순한 물리적인
위상이 아니고 정신과 감정을 지배하는 정신적·정서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오랜 농경생활, 특히 수도작의 비중이 매우 높은 농경생활을 해온 까닭에 물의
기능과 가치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신화의 원형이 잘 남아있는 ‘베포도업침’이라는 제주도 천지개벽신화의
첫머리를 보자.
“삼경개문도업(三更開文都業) 제일릅긴, 요 하늘에는 하늘로 청이슬, 땅으로
흑이슬, 중앙 황이슬 나려 합수(合水)될 때, 천지인황 도업으로 제이르자.”
위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우주의 이슬 기운이 모여 된 합수를 개벽의 계기로
묘사하고 있다.
이렇듯 한국인이 가꾸어온 물의 원형성은 신화적 천지개벽의 계기가 된 원수(源水)
관념과 농경생활에서 비롯된 풍요와 생명력의 원리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복합적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에서 천지개벽의 원수 관념은 후세의 각종 홍수 전승 및 부인들이 꾸는 물의
태몽들에 그 자취를 남기고, 그 자취는 다시 강이나 바다를 죽음과 재생의
상징으로 형상화하는 작품들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고구려
‘동명신화’에서는 동명왕의 모비인 유화가 웅심연이라는 물 출신으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신라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이 알열정이라는 물 출신인 것과 마찬가지며,
고려왕조의 여시조인 용녀 또한 개성대정(開城大井)과 맺어진 물의 여인으로
되어 있다.
물의 여신들은 물이 지닌 풍요·생명 원리의 인간적 구현으로서 그들은 결국
‘물할미’, 곧 수고(水姑)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른바 약수신앙(藥水信仰)에서 샘이나 우물의 지배자라고 믿어진 물의 여신은
바로 ‘물할미’인 것이다.
이 물할미가 여성성의 생명원리를 간직한 우물로 신앙화되었던 것이다.
이런 신앙은 현재 약수터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여러
약수터마다 이를 관장하는 신이 있다는 믿음으로 제단을 쌓고 제사를 올리는
행위, 그리고 소망의 돌탑이 약수터 주변에 즐비한 것 등에서 한민족의
무의식에 흐르는 심성을 살필 수 있다.
실제로 ‘고려의 물할미’라고 할 수 있는 용녀와 관계된 개성대정은
정사(井祠)까지 갖추고 있었다
물에 바치는 제례의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나타난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신라에서 하천제(河川祭)를 정기적으로 올렸음을 알 수 있다.
산천에 국가적으로 올리는 제례는 고려 때도 전승되었다.
고려사의 ‘팔관(八關)은 하늘의 신령과 명산대천과 동신을 섬기기 위함이다’라는
대목에서 대규모 국가행사인 팔관회가 부분적으로는 하천과 용신에게 제사
드리는 목적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남·동·서해의 3해와 한강, 경기도의 덕진, 충청도의 웅진, 경상도의
가야진을 비롯해 압록강·평양강 6독에는 중사를 올리고, 경기도의 양진, 황해도의
아사진, 청천강 등에서는 소사를 지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는 산천단·산천성황의 제도가 확립되고, 하천신 가운데
일부는 호국신으로 섬겨지기도 했다.
민속신앙에서도 물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생명·풍요·정화의 근원으로 섬겨지면서 물은 독특한 종교적 기능을 발휘했다.
이는 용신이나 용왕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용신·용왕은 풍요의 원리를 관장하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농경의 신으로
섬겨지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농부들이 논두렁에서 “고수레!”를 외치며 ‘용왕먹이기’를 하는 것은
수신에게 풍요를 빌기 위해서다. 또 물은 부정을 물리치는 기능도 하고 있다.
바가지에 담긴 찬물을 세 번 흩뿌리거나 목욕재계하는 행위는 대표적인 정화의
주술이었다. 특히 정화수는 순수 그 자체로서 치성 드리는 사람의 정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또 약수는 당연히 생명력과 풍요의 원리로서 섬겨졌다.
물의 생명력에 ‘약’이라는 말을 붙여 의술적인 치유력을 빌렸다.
약수터 전설에 용이 등장하는 곳이 많은데, 이는 약수가 ‘용왕의 물’로
관념화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 1, 한국인에게 물은 정신과 감정을 지배하는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2, 우리 민족의 서사무가 ‘바리공주’에도 신기한 약물이 등장한다.
서사무가에도 등장하는 약수
‘서사무가’는 고대 영웅들의 제전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라진 뒤 무속신앙을
기반으로 전승된 무속신화요, 서사시다.
이 서사무가가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변화의 과정을 거쳤는지
아직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서사무가는 우리 민족의 원초적 우주관·인간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텍스트다.
전국적으로 전승되는 서사무가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바리공주’에는
‘신기한 약물’이 등장한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저승으로 인도하기 위해 베풀어지는 지노귀굿·씻김굿·
오구굿 등의 무속의식에서 구연되는 바리공주는 바리데기·오구풀이·칠공주·
무조전설 등으로도 불린다.
현재 채록된 20여 편은 지역과 구연자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나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서사 구조를 갖고 있다.
옛날 나라의 임금 부부가 딸만 계속 일곱을 낳는다.
아들을 얻지 못해 상심한 왕은 마지막으로 태어난 딸을 내버린다.
버림받은 막내딸은 천우신조로 자라난다.
왕은 아기를 버린 죄로 죽을 병이 든다.
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저승의 ‘신기한 약물’이 필요하다.
만조백관과 여섯 딸은 모두 약물 구하는 것을 거절한다.
이때 버림받은 막내딸이 찾아와 약물을 구하겠다며 길을 떠나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한 끝에 저승에 도착한다.
막내딸은 약물 관리자의 요구로 고된 일을 여러 해 해주고 그와 결혼하여 아들까지
낳은 뒤 겨우 약물을 얻어 돌아온다.
그러나 국왕은 이미 죽어 상여를 내가는 중이다.
막내딸은 신기한 약물과 여러 신비로운 약초로 부친을 살린다.
이 공으로 막내딸 바리공주는 이승과 저승의 길을 인도하는 무신(巫神)이 된다.
이처럼 바리공주가 이승과 저승 사이의 길을 열어 죽은 이의 영혼을 편안하게
인도하는 힘을 지닐 수 있게 된 까닭은 바로 ‘신기한 약물’ 덕분이었다.
한민족의 우주관과 인간관을 읽는 데 중요한 서사무가 바리공주에 ‘신기한 약물’이
등장한다는 사실에서 약수를 바라보는 한민족의 시선을 단적으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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