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이야기

[스크랩] [맛있는 월요일] 성질 급한 사람은 몰라예, 대구회에 숨겨진 쌀밥 맛

arang 2519 2014. 12. 29. 18:08
외포항에서 생대구를 말리는 모습. 건대구를 찌면 생대구에는 없는 졸깃한 맛이 살아난다. [송봉근 기자]

입 이 커 ‘대구(大口)’라 부르는 생선. 이 대구회를 처음 맛본 이들은 대부분 “도대체 맛을 모르겠다”고 한다. 기름기가 별로 없어 특별한 풍미가 느껴지지 않아서다. 하지만 계속 씹다 보면 달라진다. “씹을수록 고소한 쌀밥 맛이 난다”는 이들도 있다. 풍부한 아미노산 때문이다.

 요즘 대구회를 맛보려는 발길이 몰리는 곳이 있다. 경남 거제도 동쪽에 자리 잡은 장목면 외포항이다. 외포항의 대구잡이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 말까지다. 한류성 어종이라 추운 겨울철에만 잡힌다. 외포항이 한창 붐비는 이유다.

외포항에서 대구탕집을 처음 연 전행자 할머니.
  외포항에는 대구 요리식당이 11곳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곳은 중앙횟집이다. 전행자(71) 할머니가 29세 때인 1972년 16.5㎡(5평) 남짓한 작은 식당으로 시작했다. 외포에서 태어나 결혼한 전 할머니는 2남4녀의 학비라도 보태려고 식당을 열었다. 부둣가 사람들이 밥 먹을 데가 없어 헤매는 것을 보고 대구탕을 끓여주기 시작했다. 어부였던 아버지가 노 젓는 배로 고기잡이를 나가면 밥을 해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던 처녀 시절을 지낸 터라 밥장사에는 자신이 있었다고 했다.

 식당을 열자 마침 외포항 방파제 공사가 벌어지면서 손님이 몰렸다. 그 후 2곳이 더 생겼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대구가 잡히지 않으면서 식당들은 겨울철에는 거의 장사를 못 했다. 봄이 오면 멸치회와 도다리국 등 다른 생선을 팔며 겨우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2000년 이후 대구가 다시 잡히면서 식당이 8곳 더 생겼다.

대구탕만 먹을 때는 살탕, 대구회를 먹은 뒤엔 뼈탕이 나온다. 모두 맑은 탕이다. [송봉근 기자]
  원조요리는 대구탕이다. 어느 집이나 요리 방식이 비슷하다. 전 할머니의 대구탕은 납작하게 썬 무와 미나리를 넣고 멸치액젓과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고춧가루는 전혀 쓰지 않는 맑은 탕이다. 전 할머니는 “생대구를 쓰느냐, 냉동대구를 쓰느냐에 따라 맛이 천양지차”라고 말했다. 국물에 맛이 배게 하려고 오래 끓이면 생대구는 육질이 부드러워지지만 냉동대구는 맛도 잘 우러나지 않고 육질이 질겨진다는 설명이다.

 이곳의 원조요리가 탕이라면 별미는 회다. 대구에는 ‘감칠맛’을 느끼게 하는 아미노산이 많다. 하지만 이 맛을 느끼려면 한참을 씹어야 한다. 그래서 외포항 사람들은 “성질 급하면 대구회 맛을 모른다”고 한다. 일부 미식가는 5일가량 말린 대구를 회로 먹기도 한다. 말리는 동안 아미노산이 더 많아져 맛은 좋아지고 육질은 부드러워진다는 이유에서다. 쇠고기를 며칠간 공기 중에 노출시켜 숙성시키는 ‘드라이 에이징’과 같은 원리다. <본지 12월 15일자 20면>

회로 먹고 남은 대구는 전으로 부쳐낸다. [송봉근 기자]

  대구전은 횟감 크기로 썬 대구 속살에 밀가루·계란·파·고추 등을 입혀 부쳐낸다. 남긴 회를 부쳐달라고 해도 오케이다. 생대구찜도 맛보기 힘든 요리다. 소쿠리 속 생대구 위에 된장과 마늘·고추 양념을 얹어 한 번 찐 뒤 미나리와 야채를 얹어 두 번 더, 모두 세 번을 쪄낸다. 그래야 간이 살 속 깊이 배어든다고 한다. 찌는 데만 40분 넘게 걸려 예약이 필수다. 식당에 들어가 주문하면 나올 때까지 하세월이다. 이래저래 대구는 쉽게 제맛을 보기 힘든 생선인 셈이다.

 외포항에서는 대구를 말려 건대구로 만드는 작업도 볼 수 있다. 부둣가 햇볕이 드는 곳에는 어김없이 내장을 빼고 나무꼬치로 꿴 대구가 널려 있다. 생대구로 다 팔지 못하면 건대구로 만들어낸다. 건대구를 쪄서 양념 간장을 찍어 먹으면 생대구에선 맛볼 수 없는 졸깃한 맛이 살아난다. 코다리찜과 비슷하다. 속살의 기분 좋은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다.

대구회는 풍부한 아미노산 때문에 씹다 보면 고소한 쌀밥 맛이 난다. [송봉근 기자]
  외포항 식당들의 대구탕 가격은 1인분에 1만5000~2만원. 대구찜은 반 마리에 5만원이고 한 마리는 10만원이다. 대구회는 그날 시가대로 받는다. 5~6명이 먹을 수 있는 한 마리가 12만~13만원 선이다. 대구회를 시키면 뼈탕은 거저 나오고 공깃밥 값만 받는다. 지난 27일 경기도 수원에서 가족과 함께 온 정용수(59)씨는 “네 명이 10여만원에 회도 먹고 탕도 먹으니 푸짐하다”고 말했다.

 북태평양산 대구보다 우리나라 연안에서 잡은 대구가 맛있는 이유는 냉동 여부보다 영양 상태 때문이다. 태어난 곳을 찾아오는 회귀성 어종인 대구는 북쪽 오호츠크 해에 서식하다가 날씨가 추워지면 한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다. 그동안 암놈은 알을 배고 수놈은 정액 덩어리인 이리가 차게 된다. 산란기의 대구는 영양을 비축해 맛이 좋다. 그러나 산란이 끝나고 북태평양으로 돌아간 대구는 맛이 떨어진다. 대구 내장은 아감젓·내장젓·알젓 등 전통 발효식품으로 만들기 때문에 버릴 것이 없다.

  요즘 외포항에서 잡히는 대구는 하루에 2000~3000마리 정도다. 한 마리당 평균가 2만원만 잡아도 4000만~6000만원어치다. 거제수협 집계 결과 대구잡이철인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 말까지 석 달간 잡은 대구는 17만여 마리에 경매가는 25억원이었다.

 대구는 한때 우리나라 연안에서 잡히지 않아 ‘금대구’라고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어쩌다 한두 마리가 잡히면 수십만원에 팔렸다는 기사가 신문에 소개될 정도로 귀한 생선이었다. 그랬던 대구가 많이 잡히게 된 것은 대구알 방류 사업 덕분이다. 80년대 1만여 마리씩 잡히던 대구가 90년대 들어 점차 줄어들다 93년에는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거제수협은 경남도의 지원을 받아 94년 대구알 방류 사업을 시작했다.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대구 인공수정란을 뿌린 덕분에 요즘은 10만 마리 넘게 잡힌다.

전팽완(65) 외포어촌계장은 “대구 어획량 증감에 따라 외포항 식당들도 흥망성쇠를 겪었다”며 “수산자원 보호의 중요성을 실감한 어민들이 이젠 대구를 남획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탕을 먹으러 외포항에 왔다가 자녀들에게 대구 인공수정 작업을 보여주면 자연학습도 된다.
출처 : 우리가 사는 세상★
글쓴이 : 승승장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