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충격 약초가 씻은듯 낫게 해줬죠"
영동고속도로 진부IC를 빠져 나가 59번 국도를 따라 정선 방향으로 12km를 달리면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마평리에 닿는다.
누에머리를 닮은 잠두산 허리 중턱(해발 650m)에 약초 농원 운중천삼방(雲中天蔘房)이 멀찌감치 보인다. 이 약초농원은 전직 은행지점장 임종철씨(53)가 부인 이성희씨(52)와 함께 8년 동안 일군 삶의 터전이다. '운중천삼방'은 '깨끗한 곳에서 천삼(天蔘)으로 불리는 오가피를 재배하는 곳'이란 뜻으로 부인이 지었다.
임씨 부부는 3000평의 밭에 오가피를 비롯해 헛개나무 당귀 벌나무 구기자 곰취 천궁 엄나무 백지 등 약초를 재배하는 한편 약초건강식품도 가공·판매하고 있다. 약초밭 입구에 농가를 리모델링해 지은 50평 남짓한 살림집은 나무로 온돌방을 데우는 재래식 웰빙 하우스다.
임씨 부부는 저녁 10시에 잠들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산물로 밥을 짓고 곰취 쌈과 된장찌개로 아침 식사를 한 다음 약초밭으로 나간다. 거실 벽에 걸린 현판의 글귀가 눈길을 끈다.
'사는 게 별거 있나요. 마음 나눈 사람끼리 오순도순 마주 앉아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여 놓고 밥 한 그릇 맛나게 먹는 것이지요. 사는 게 별거 있나요. 진실한 사람끼리 도란도란 가슴 안고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는 것이지요.'
경기도 군포 출신인 그는 경기은행에서만 20년간 근무하다 지난 98년 6월 외환위기 구조조정 태풍에 휩쓸려 부천 원종지점장을 끝으로 은행을 떠나야 했다. 퇴직금으로 1억2000만원을 받았지만 당시 고교생 딸 2명과 초등학생 막내아들을 둔 임씨에겐 충격이었다.
임씨 부부는 고심 끝에 자녀들을 서울 목동 집에 두고 부부만 강원도로 가서 약초 재배를 하기로 했다. 임씨는 은행 재직 시절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을 섭렵했고 조경수와 관엽식물은 부업 삼아 2년간 재배한 경험도 있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마침 노후 대비용으로 사둔 땅도 있었다.
'명퇴'를 한 그해 가을 이곳으로 내려온 임씨는 이듬해 봄까지 밭을 일궈 인근 오가피농장에서 오가피 묘목 1만 그루를 사다 심고 헛개나무 벌나무 곰취 등으로 차츰 재비 약초 종류를 늘려 나갔다. "약초는 버릴 것이 없어요. 뿌리부터 줄기 잎 열매까지 모두 약재로 사용하죠. 오가피와 헛개나무 등은 한 번 심으면 20여년간 자라기 때문에 잘라내도 계속 나오지요. 약초가 나에게 연금을 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임씨는 약초 재배로 아이들 공부도 시켰고,인생 후반기에 신혼 같은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는 3년간은 약초만 열심히 재배해 팔다 자신감이 붙자 2001년 말 1억3000만원(강원도 지원금 5000만원)을 들여 30평 규모의 약초 가공시설을 갖추고 약초건강식품 생산·판매도 겸하고 있다. 주5일 근무제가 본격화하는 추세에 맞춰 오가피탕 좌욕장을 마련해 놓고 주말 이틀간 손님을 받고 있다.
임씨는 평창군 지원자금을 합친 5000여만원을 들여 약초체험장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강원도 도립대학 산학연 컨소시엄센터와 공동 연구로 오가피 부산물을 활용한 사료 개발에도 성공,특허 출원까지 했다.
이진호 진부면 산업계장은 "워낙 성실하고 청년학도처럼 열심히 연구하면서 동네 오가피 작목반장까지 맡아 주민들과 고향사람처럼 융화됐다"면서 "강원도에서 손꼽히는 귀농 성공사례"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부인 이씨는 실업고에서 고객판매관리를 가르쳤던 교사 출신으로 남편 임씨의 내조자를 넘어 사업 파트너나 다름없다. 남편의 약초사업을 도우는 틈틈이 노인을 돌봐주는 케어복지사와 상담사 자격증을 딴 이씨는 이곳에 자그마한 실버타운을 세우는 게 꿈이다.
최종수 평창군 원예특작계장은 "귀농에 대한 낭만과 의욕만으로 덤볐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임씨는 평소 약초 공부를 많이 했고 무엇보다 나이 들어가면서 부부가 같이 농촌생활과 식물재배에 뜻을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게 성공의 비결인 것 같다"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임씨는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 올림픽에 대비해 약초 전시판매장을 만들어 지역홍보에도 앞장설 생각이다.
전시판매장 한 쪽에는 대학에서 금속디자인을 전공한 큰딸을 위해 토속민예품 공방도 마련해 볼 계획이다.
"제겐 외환위기와 명퇴가 전화위복이었던 것 같아요"라며 담담하게 귀농기를 들려주는 임씨의 얼굴에서 인생 후반기 도전과 변신에 성공한 중년의 멋이 배어났다. 약초농원
2.산청서 약초식물원 만드는 김승주씨
토종약초로 ‘보약마을’ 일군다
김승주(55)씨는 지리산 토종 약초에 푹 빠진 사람이다. 2003년부터 경남 산청군 산청읍 내리에 약초 식물원을 만들고 있다. 그가 짓고 있는 식물원에는 희귀한 토종 약초들이 자연 상태에서 자란다. 대부분 그가 구해다 심었다.
식물원은 여느 산과 다름없어 보였다. 아름드리 나무도, 물 좋은 계곡도 없다. 그저 평범한 동네 뒷산 같다.
들머리에 이르자 구절초가 가을바람에 한들거리며 방문객을 맞는다. 김씨는 그 옆 바닥에 나즈막하게 깔린 작은 풀을 가리켰다.
“이것은 세신이라고 합니다.
기혈순환에 탁월한 효능이 있습니다.” 뿌리를 입에 넣어 씹자 화한 느낌이 입 안에 가득 퍼지고 조금 있으니 몸이 후끈거린다. “은단과 비할 바가 못됩니다”라는 김씨의 말이 이해가 됐다. 비탈길을 조금 올라가자 그가 키작은 나무를 가르켰다. 산마가목이라고 했다. 빨간 열매와 단풍이 아름다워 관상수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것은 토종이 아니라고 김씨는 말했다. 산마가목은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신경통과 관절염 특히 기침에 아주 잘 듣고 늙은이나 몸이 쇠약한 사람의 기력을 살리는 데 특효라고 했다.
“채찍으로 쓰면 죽은 말이 벌떡 일어난다고 해서 마가목이라 불립니다. 지팡이로 만들면 앉은뱅이가 일어설 정도로 기력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해요. 지팡이용 나무로 첫째가 마가목이요, 둘째가 청노장, 세째가 명아주라고 하지요. 한의학에서는 이를 정공등이라고 한다는데 저는 우리나라 토종인 산마가목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6만6천여평 식물원엔 550여종의 약초가 있다
약초 제대로 키우고 보급하려 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둬 6만6천여평의 식물원에 자라는 토종 약초는 모두 550여 가지. 신경통과 피로회복에 좋다는 구룡목, 부러진 뼈를 붙이는 데 탁월한 효능을 가진 접골목, 간질환에 특효라는 노각나무 등 목본류가 200여종이고 산작약, 산마늘, 삼지구엽초, 석방풍 등 초본류가 350여 종이다. 그는 지리산에서 자라는 2000여종 식물 가운데 1000여종 가까이 된다는 토종약초를 모두 모으는 게 꿈이다.
김씨가 토종 약초에 관심을 가진 것은 10년 전. 그는 공무원이었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뒤 초대 관광계장을 맡은 그는 마구잡이 개발 대신 산청군의 특성을 살린 독특한 지역발전 사업을 고민했다.
벤치마킹을 위해 강원도 정선, 충남 보령, 전북 무주 등 국내뿐 아니라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 외국에도 다녀왔다. 결론은 약초였다.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산청군은 약초 재배에 안성맞춤의 땅이었다. 좋은 약초를 찾는 한의사도 늘고 있어 판로 확보에도 자신이 있었다. 산청군에 들어서면 어디에서나 한약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자. 그는 산청군 전체를 한방타운화 하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약초 재배와 관광을 결합한 내용을 담은 계획서를 들고 관련 부처를 설득하기 위해 뛰어 다녔다. 주무 부서를 찾기도 어려웠다. 보건복지부와 문화관광부는 서로 소관 업무가 아니라고 했다.
“말은 그럴 듯한데 당신이 한의학이나 약초에 대해 뭘 아냐, 중앙정부는 물론 도청도 설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군수님도 다른 지역의 사례를 보자고 말씀하데요. 외부 전문기관에 용역을 맡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키우면
품 덜들고 약효도 좋아요 누군가
그 일을 해야겠죠” 그는 군수와 군의회 의원을 찾아다니며 사정사정해 용역연구비 3천만원을 따냈다. 공신력 확보를 위해 서울에 있는 이름난 회사를 찾아가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공개입찰을 않은 데 대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을 문서로 남겼다. 나중에 이 때문에 도에서 감사할 때 문제가 됐지만 다행히 ‘선의’가 입증됐다.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밤이면 약초에 대해 공부했다. 그의 방에는 약초나 동의학 관련 책들이 빼곡이 꽂혀 있다. 그렇게 만든 보고서가 1998년에 나온 민족전통의학성지조성사업 기복계획. 이를 들고 도청을 찾아가 담당 과장에게 사정사정해 결재를 받고 중앙 정부를 찾아갔다.
“지금도 이름을 기억합니다. 한국관광연구원 이광희 개발연구실장님이 보고서를 보더니 도와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정성이 닿았는지 그가 만든 계획은 문화관광부의 중점과제 가운데 하나로 선정됐고 지금 전통한방휴양관광단지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꿈은 이뤄졌지만 그의 눈길은 더 근본적인 데로 향했다. 군에서 대규모로 추진하는 사업과 달리 제대로 된 방법으로 토종 약초를 기르고 보급하는 일이 필요했다. 99년 말 그는 아예 사표를 던졌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이 일을 시작하는 걸 보고 정신나간 사람이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약초를 대량 재배하면 비료나 살충제를 써야 합니다. 약효도 없어요. 자연 상태에서 키우면 품도 훨씬 덜 들고 약효도 좋은 약초를 기를 수 있습니다. 환경도 보호하구요.
누군가 그런 길을 보여줘야지요.” 산청/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효능 직접경험…‘약효’ 연구 제대로 해봅시다”
饔쩝羚쓴?우리나라 토종 약초가 세계岵막?경쟁력이 있다고 믿는다. 알면 알수록 그런 확신이 커진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도 자주 한다. 20년 넘게 천식으로 고생하던 그는 3년 전에 활인초라는 토종 약초를 달여 먹은 뒤 천식을 “한방에 날려 버렸다”. 몇달 동안 병원에 다녀도 하혈이 그치지 않던 장인도 그의 권유로 한련초를 달여 먹은 뒤 나았다고 했다.
“제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요. 그런 점에서라도 토종 약초의 효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져야 합니다.” 산청의료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부인 하상순(52)씨도 처음에는 그의 일이 미덥지 않았으나 효능을 눈으로 본 뒤 지금은 그의 지지자가 됐다. 하씨는 공직을 떠나 무농약 청정농산물로 된장, 청국장, 밑반찬 등을 만들어 팔며 김씨를 돕고 있다.
하지만 김씨는 요즈음 고민이 많다. 토종 약초를 찾고 연구하고 보존·보급하는 식물원을 만드는 일까지 혼자 힘으로 하기에는 너무 버겁다고 느낀다. 최근에는 약초 재배 농가들로부터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을 맡아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 “개인돈을 들여가며 해야 하는 힘든 일”이지만 지역민들을 돕는 일이라 마다할 수도 없다고. 괜한 일을 벌였나, 하는 생각에 펑펑 울고 싶을 때도 있다고 했다.
“저와 뜻이 맞는 분들과 인연이 닿아 토종 약초에 대한 정보도 교환하고 식물원을 만드는 일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젊은이들 가운데 이 분야에 관심있는 분들이 있으면 더욱 좋구요.”
3.약초단지
[고장] '약초단지' 꿈 부푼 경남 함양
옛부터 '약발' 좋은 땅 이젠 약초산업 '허브'로
“함양 노루 한 마리가 딴 동네 노루 열 마리 맞재비(맞잡이)라 캤어요. 조상들이 없는 말 했겄십니꺼?” 노루 고기를 약(藥)으로 쓰던 시절 이야기지만 주민들에게는 지금도, 함양 산물(産物)의 약효에 관한 한, 1대10의 등식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어서 ‘개똥도 약에 쓰려면 함양 땅에서 주워 써야 좋다’는 믿음으로 구전(口傳)되고 있었다.
‘약발 좋은 두메마을’ 경남 함양군이 약초로 떨쳐 일어서겠다는 것은 그 같은 고집과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쪽 사람들은 백두대간의 기점을 지리산으로 친다. 거기서 발원한 산맥이 덕유 속리 태백 오대 설악으로 줄달음쳐 금강 백두에 이르러 장하게 맺었다는 것이다. 뻗어올라 넘고 맺는 대간의 힘이 모인 곳이 지리산이라는 말인데, 그 주봉 천왕봉을 아랫마을 산청과 함께 나눠 품은 고장이 함양이다. 그 정기가 산이고 들에 넘쳐 함양에서 나고 자란 곡식이며 풀이 예사 것들과 다르다는 것인데…. ‘설마…’하며 듣다가도 금새 세뇌가 되는 것은 무식한 기자만은 아닌 것이 인근 경상대며 진주산업대며 마산대 등 전문 연구진이 함양의 토질과 전통약제 시험 연구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방면에서 이름이 알려진 한국토종약초연구소 최진규 소장이 괘관산 기슭으로 주소를 옮긴 것도, 10여년 전부터 경남농업기술원 약초시험장이 함양 땅에 터를 잡은 것도 비슷한 연유일 것이다. 군 면적의 77%가 산지인 탓에 예부터 약초며 산채가 풍부할 수밖에 없었고, 토질이 배수성 좋은 부엽토인 데다, 백두대간을 남서로 둘러 볕이 길고 좋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지리ㆍ지질학적 배경이다.
“9,000여 농가 가운데 약초 상업농 축에 드는 집이 500여 가구는 되고, 텃밭에 두릅이며 작약 당귀를 심은 집까지 치자면 한정이 없을 낍니더.” 워낙 전통이 오래되고, 관습적으로 약초를 심는 집이 많아 현황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게 군 농업기술센터 관계자의 설명. 함양(咸陽)을 우리 말로 풀어 쓰면 ‘다볕’이고, 옛 지명 천령(天嶺)은 터가 높아 하늘에 닿는다는 의미일 터이니, 저절로 나고 자라는 약초에게는 물론이고 재배를 하는 데도 천혜의 조건이겠다.
“식솔 모두가 무병장수하는 집이 있어 이유를 캐봤더니 그 집 도마가 구지뽕나무 도마였던기라.” 항암 당뇨에 효험이 있다는 구지뽕 성분이 칼질을 하면서 음식 재료에 섞여 병이 들 틈이 없었던 것이라는 말. 어떤 동네 사람들은 술이 전통적으로 센데 그건 마을 샘으로 헛개나무(숙취해소 효능) 뿌리가 뻗어 든 까닭이라고도 했다. 대대로 약초와 친하다 보니 주민들이 조약(調藥)에도 밝아 개화한 뒤로도 한동안 서양 병원이 터를 못 잡았다는 우스개 소리가 아직 들리는 곳도 함양인데, 올 초부터 군이 약초ㆍ산채 산업화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도 그 같은 배경에서다. “애탕가탕(애면글면) 논 갈아놔 봐야 나락을 사주니 안 사주니 캐?患쨉? 이 참에 가장 함양적인 걸로 한번 덤벼보자는 기지요.”
군은 병곡면 원산리 임야 100만평을 털어 약초를 심는 것을 시작으로 2008년까지 군 전역에 500만 평의 전국 최대규모 산약초 단지를 조성할 참이다. 대한한의사협회와 제휴, 협회가 추천하는 오갈피 등 30여 품목을 단지화해 서하에는 산초, 백전에는 하고초 등 작목을 특화한다는 구상. 임금님 쓰던 옻은 약이며 칠이며 모두 ‘마천 옻’이었다는 그 명성과 자부를 살려 마천면에는 옻나무 10만주를 추가 식재하는 등 252개 법정마을마다 1㏊ 이상의 특화 약초단지를 꾸민다는 계획이다.
거기에 장뇌산삼도 포함된다. 연전 한 바이오 벤처업체가 함양 토질과 지형에 반해 먼저 청해오기를, 산삼을 심고 관리해주는 조건으로 묘삼 1,000만 포기를 제공하고, 판매수익금의 30%를 군에 넘기겠다는 것. 군은 육십령 너머 남덕유산 어깨자리에 맺은 깃대봉 600~900고지 군유지 등 100만평을 할애해 지난 달 초부터 올해 식재분 250만 포기 묘삼 식재를 시작했다. 11개 읍ㆍ면 별로 두락을 정하고 산삼 작목반을 꾸렸다. 행여나 손을 탈 지도 모를 일이고, 맷돼지와 두더지 횡포도 염두에 둬야겠기에 군은 삼밭 둘레에 전기철책과 땅 속 전기충격선을 두르고, 멀찍이 무인카메라도 설치할 참이다.
이 달 초에는 남들 다 하는 ‘축제’도 처음 열었다. 연암 박지원이 현감으로 재직하면서 전국에서 처음으로 물레방아를 시설했다는 유래에서 빌어 축제 이름은 ‘물레방아 축제’다. 갖가지 산물과 청정한 자연을 알리자는 취지였다. 함양 땅에서 나는 갖가지 약초며 산채를 전시하고, 근동의 심마니 약초마니들을 초빙해 구置?입담도 선뵀다. 군은 지난 봄 누렁호박 모종 4만 여 본을 각 마을과 공무원들에게 나눠주고 가꾸게 한 뒤 축제 기간에 맞춰 수확, 참가객은 물론이고 고속도로 휴게소 과객들에게도 한 덩이씩 무료로 나눠줬다. 내년에는 맷돌호박을 준비할 참이라고 했다. “사업하는 사람들도 찾아와서 약초 드링크며 음식으로 공장을 해보겠다고 청하더라구요. 좋은 일이지예.”
이 같은 시도에 대한 주민들의 동조를 뒷배로 군을 전국 최고의 약초산업 허브로 가꾸겠다는 게 함양군의 장기 구상. 군은 도 농업기술원 및 인근 대학들과 지리산 자원 산업화단지 조성을 위한 협약을 맺고, 한약재 품종개량과 약성 연구, 가공, 상품화 사업에 착수했다. 약초 테마공원과 상설 전시장을 꾸미고, 한약상 한의원 등을 두고, 한방 찜질방과 사우나ㆍ숙박시설, 한약재를 활용한 전문 음식점을 유치해 군 전체를 한방 타운화 하자는 계획도 세웠다. 장뇌삼 수확철에 맞춰 산삼캐기를 체험행사로 꾸며보는 구상도 구체화하고 있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자고 사람을 보냈던 삼신산 가운데 하나가 지리산 아니던가. 그 명산을 타고 앉은 함양이 불로촌(不老村)의 꿈을 익히고 있다.
/함양= 글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사진 배우한기자
[약초꾼 정성도씨]
정성도(54ㆍ사진)씨가 약초꾼 선친을 따라 산 자락을 타기 시작한 게 14살 때 부터다. 하지만 그의 약초마니 경력은 30년이라고 했다. “약초와 얼굴을 익혀 밥값이라도 하자면 적어도 10년은 걸리기 때문”이다.
“한창때는 하루 산 타면 80근(50㎏)은 너끈하게 지고 왔는데 지금은 잘해야 30~40근입니더.” 산이 우거지니 약초도 묻히고 덜 나더라는 것이다. 30년 전만해도 산삼과도 안 바꿨다는 지초도 군락으로 흐드러졌는데, 이제는 구경하기도 어렵게 됐다. “지초 그기 장복하면 마누라가 셋도 모자란다는 거 아이요. 인자는 없어요.”
그는 약초도 채취하는 시기에 따라 약효가 다르다는 것도 안다. 봄에 천마 줄기를 보면, 오그랑망태 못 채우는 한이 있어도, 그 자리에 자기만 아는 표식을 해두고 산을 내려선다. 줄기가 시들어 땅속 뿌리만 남는 가을 녘에 캐기 위해서다. 그는 산마도 가을에 봐뒀다가 겨울에 캔다. “가을 천마, 겨울 산마 아입니꺼. 조랭이 채우는 게 다가 아잉기라예.” 그는 제 자랑처럼 들릴까 저어하듯 “그건 약초꾼 상식”이라며 순되고 숫접게 웃었다.
그렇게 걷어 온 하루치 약초를 말리고 손질해 내다 팔면 5만원도 받고 10만원도 받는다. 그나마 값 싼 중국산 한약재가 넘쳐 나 주인을 잘 만나야 대접을 받는다. 소아마비를 앓은 그는 다리를 전다. 나이가 들면서 산 타는 일도 예전 같지 않다. 그래서 아들(22)이 약초 일을 마다해도 서운할 것도, 안타까울 것도 없다고 했다. 예전만 못하다고는 하나 산이 있으니 약초는 날 것이지만, 그렇게 넘쳐나던 지리산 약초꾼의 시대는 그의 대에서 끊어질 것이다.
/최윤필기자
4.“농업이야 말로 우수한 인재가 해야죠”
인삼·더덕 재배농 홍천 원두상씨 서울 떠나 15년전 귀향, 농사에 재미
농사로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5>
천년 고찰 수타사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한 홍천군 동면 덕치리. 넓게 펼쳐진 논밭 여기저기 인삼을 키우는 삼포가 눈에 띈다. 1만 5000평 규모의 원두상(54)씨의 삼포에서도 첫해를 맞는 것부터 6년근까지 자란다. 원씨는 도라지 3000평과 양구 해안면에 8000평 규모의 더덕도 재배하고 있다.
15년째 농업에 종사하는 원씨의 올해 예상수입은 2억원. 영농비를 제하고 1억원의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원씨는 재배면적을 꾸준히 늘린다. 올해 2000평을 수확한 후 내년에는 8000평에 새로 인삼을 심을 예정이다.
15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서울에서 문구도매상을 차렸던 원씨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모든 걸 바꿔야 했다. 보상비와 납품 지연에 따른 손해로 미수금은 회수할 수 없었다. 이익금이 날아간 것이다. 버스회사에 취직했지만 몸이 나빠졌다. 매연으로 속이 항상 메스꺼웠고, 하루에도 몇번씩 닥치는 돌발상황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심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홍천으로 귀향한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
원씨가 고향인 홍천에 돌아온 것은 지난 90년. 고향에 내려온 그는 주위의 권유로 6000평의 밭을 임대해 도라지를 심었다. 트랙터로 깊이갈이를 해 뿌리가 길고 곧았다. 도라지를 심은 후 3년. 첫 수확한 도라지를 경동시장에 냈다. 도매상들은 웃돈을 얹어주면서 서로 구매하려고 했다.
수입액은 3000만원. 홍천읍내에 집 한 채를 사고도 돈이 남았다. “좋은 시절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해마다 재배면적을 늘려 3만평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중국산 도라지가 대량으로 수입된 것이다. 값은 폭락했다. 영농비와 임대료를 지불하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기대했던 1억 5000만원의 순수익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도라지값이 폭락하자 더덕과 인삼재배를 시작했다. 건강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꾸준하게 판매량이 늘고 있다. 홍천인삼 경작자 모임인 홍삼회 회장을 맡은 원씨는 “홍천에 수삼도매센터를 만들어 홍천을 인삼의 중심지로 육성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인삼의 경우 생산에서 가공과 판매까지 할 경우 kg당 4만5000~5만원의 수익이 가능해 노력여하에 따라 매출 5억원 규모의 기업농이 가능합니다. 아들이 원한다면 장려할 생각입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게 많단다. 토양관리와 병해충관리, 마케팅과 컴퓨터 활용은 물론 농기계수리까지 모두 농부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농업은 우수한 인재들이 이끌어 나가야 할 산업”이라는 게 원씨의 생각이다.
(〈유경석·농촌생활기고가·kangsan0691@naver.com〉 )
5.[지방이 경쟁력이다] 가구당 4억 매출 "나무에 돈 걸렸네~"
◆ '묘목의 메카' 이원 땅= 21일 오후 묘목상이 밀집한 옥천군 이원면 대흥리의 '묘목거리'. 평일인데도 길가에 늘어선 수십 곳의 농원마다 전국각지에서 묘목을 사러 온 사람들로 종일 북적거렸다. 가게 옆 소규모 임시 묘포장을 갖춘 이곳 농원 사람들은 가격흥정에 나무관리 요령을 전하랴,전화 받으랴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이들에겐 적어도 4월 초순까지 이런 날이 계속될 것이다. ◆ 묘목에서 꿈을 딴다=이곳이 전국적 생산단지로 발돋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농민들이 파종부터 엄격한 품질관리와 품종개량에 정성을 쏟은 덕분이다. 묘목재배는 병충해 관리와 퇴비주기가 관건이나 정성 없이는 고품질 달성이 쉽지 않다. 육안으로 묘목의 품질과 품종을 선별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도 노력해야 한다. ◆ 묘목은 옥천의 미래=인구 5300여명의 이원면에는 젊은이들이 다른 면지역보다 많다. 20,30대가 적어 청년회 조직을 못하거나 있더라도 활동이 미약한 농촌지역이 허다한데 41명으로 구성된 이곳 청년회는 왕성하게 활동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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