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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잠시 옛날 생각에...

arang 2519 2014. 6. 25. 10:44

잠시 옛날 생각에...

 

 

 

당시 까만 비누도 많았는데..



풀베기 운동(퇴비용)ㅡ4H 구락부기도 보이네요

새마을 모자를 보니 생각이 나네요~

 

 

남녀노소 불문하고 산과 들에서 풀을 베어 지게에 지고 새마을기를 든

마을 이장이나 작업 반장의 뒤를 따라 긴 행렬을 이루며

집합장소로 이동하던 그때...

높은 분들이 지나가면

잘 보이도록 도로 옆 가장자리에 산더미처럼 최대한 높게 쌓아

실적에 따라 마을별로 시상도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초가집 이을때 이엉과 용마루를 엮고 있네요~

초가지붕 이을때면 굼뱅이들이 정말 많았죠~

그땐 징그러워 먹지도 못햇는데..요즘에는 고단백으로 당뇨에 좋다죠..

 

 

내년에 심을 씨앗들 처마에 매달아 보관하였죠~

 

도리깨로 콩타작 하는 모습

 

당시 농촌에는 잔일들이 항시 많았지요.

 

노오란 옥수수가 먹음직 스럽네요~

 

감나무 사이로 벼 탈곡하는 모습..

 

등목이라하여 예전에 많이들 하였죠~

 

집집마다 장독대가 있었죠~

 

예전의 부엌모습(경상도에서는 정지라 하였죠)

 

부지간 맷돌에 메밀을 갈고 다정하게 보입니다.

 

짚신을 만들어 장날에 나가 팔기도 하고.

 

소는 재산목록 1호에 소가 없으면 농사를 못지었지요~

쟁기질 보기보담 어렵죠~



가을걷이에 새참을 나르고 있나봅니다.(막걸리에 국수..)

배가 고프면 허리가 더 아팠어요~ 어찌나 기둘렸는지..

 

옛날의 시골 풍경

 

직접 맛을 봤다 그냥 말을 듣고 알 수 없는 일

그래서 그자리에서 맛을 봤다.

 

 

옹기전, 어물전, 우시장, 철물전,
장에서 장으로 이장

저장 떠도는 온갖 장돌뱅이에 뜨거운 국물 국밥집,
갓 눈뜬 강아지도 팔러 나왔다.

 

 

사고 파는 이가 따로 정해진 것도 없었고
아마추어와 프로의 구별도 없었다.

 

 

사방의 장사꾼이 모인 장터엔 세상의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축제가 됐다.

 

한 명의 관객도 없는 역동하는 완벽한 축제의 한마당 그 자체였다.

 

 

맨바닥
장터는 원시적 거래장소다.

땅 바닥에 물건을 놓고 엉덩이를 붙이면 그만이었다.

그런 노점이 장터가 되고 장날이 생겼다

장터 국밥집에서는 주인과 손님, 초면과 구면을 불문하고

 

 

거래

거래 처음에는 물러설 줄 모르는 듯, 아슬아슬 하지

짐짓한발씩 뒤로 물러서는 듯 거래가 됐다.

"이러면 밑져요." "
그 무슨, 허허허." 그러다가
그다지 상관도 없는 사람이

끼어들면 거래는 또 늦어졌다.

 

 

지게꾼

입성이 제법 괜찮아 보이는 사람은 중절모를 쓰고 곰방대를

물고 있지만 남루한 옷차림의 남자는 이것도 저것도 없다.

 

가난에도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지게꾼은 시장이나 기차역 등에서 손님의 짐을

날라주고 품삯을 받았다.

긴 기다림에 비해 얼마 되지 않는 돈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흰 수건 곱게 쓰고 고추를 다듬는 아낙의 얼굴은

색 좋은 고추처럼 발그레하다.

 

물레방아

 

옛 시골의 물레방아간은 만남의 장소로 제격이었다.

하교길 아들을 마중 나온 엄마는 물레방아간에서

얼굴이 붉어졌다.

처녀 시절 추억이 한 순간 떠오른다.

그만 가시죠
일년 농사를 장에 팔러 가는 날
주인 아저씨는

을것 없냐고 고함을 친다

짐이 점점 높아갈수록 소는 불만이 많다

"아저씨, 그만 출발 하시죠"

 

사람들은 쌀 미(米)자를 농부의 손이 팔십팔(八八)번

거쳐야 먹을 수 있다고 풀이했다.

그들에게 농사는 지고지순한 그 무엇이었다.

 

그 천직에 온 정성을 기울이고 쌀 한 톨도

함부로 하는 법이 없었다.

 

 

 

 

옛날에 너무도 가난해
먹고살기에 급급한 사람이
늙으신 아버지를
산에 버리려고 지게에 태우고는

어린 자식과 함께 산으로 갔다

 

아버지를 버린 아들이 돌아서서 집으로 오려는데

어린 자식이 그 지게를 다시 집으로 갖고 오려고 했다.

놀란 아들은 그것을 무엇에 쓰려고 하느냐 묻자

"나중에 아버지가 늙으면 이 지게로 짊어지고 와야지요"

 

크게 뉘우친 아들은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시고 왔다고 한다.

 

머리 스타일

어른들도 머리 스타일에 꽤 멋을 부렸다.

상투 틀고 망건 매고 탕건 쓰고 조선시대 벼슬아치가 망건의

덮개로 갓 아래에 받쳐 관, 모양은 앞쪽이 낮고

뒤쪽은 높아 턱이 졌다. 재료로 말총을 사용했다.

맞담배질

17세기초 조선에 들어온 담배는 임진왜란이 끝난 뒤 급속도로 퍼진다.

피폐한 삶에 대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없던

백성들은 너도나도 담배를 피웠다.
특히 여성흡연자가 남성흡연자 보다
더 많았고 궁궐의

상궁들까지 담배를 피웠다.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맞담배를 피우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신하들의 담배 피우는 모습을 광해군이 심하게 꾸짖자

그 이후부터 몰래 피우는 습관이 생겨 흡연 예절이 만들어졌다.

젊은이는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출처 : 숯은 유기농생활
글쓴이 : 돌부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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