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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연 < KNL그룹 대표 >
서울 성북동 모 재벌가 집이 과도한 대출로 경매에 내몰렸다. 재벌가라는 문패에 성북동이라는 부촌 프리미엄까지 얹혀져 호사가들 입에 오르내린다. 재벌가의 내밀한 경제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보여지는 것은 오직 텃자리. 결국 망한 이유가 ‘집터 탓’이라며 입방아를 찧는다.
사람이라곤 살지 않아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이 한양 수비를 위해 이주대책까지 마련했던 성북동은 근래 들어서야 ‘부자들이 사는 명당’으로 자리매김했다. 1970~1980년대 청와대 권력과 경제성장의 주역들이 뒤섞여 탄생한 인작(人作) 명당이다. 이곳엔 대기업 오너 80여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집터가 명당일 가능성을 확률 50%로 잡으면 한 개 동(洞) 면적에 국내 최다인 40개의 명당이 존재하는 셈이다. 시쳇말로 이건 ‘풍수대박사건’이다. 명당터여서 대기업 오너가 많이 탄생했다기보다는 대기업 오너가 들어가니 평범한 땅이 명당으로 변한 것에 가깝다.
풍수학에서 혈은 서로 엮인 감자처럼 줄줄이 존재하지 않는다. 역량이 큰 혈의 경우 남은 기운을 내뿜어 또 하나의 소혈을 맺는 정도다. 성북동 재벌 터들이 조각보 엮듯 엮여 있어 다 크고 좋아 보여도 혈 위에 지어진 집은 소수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명당에 지어진 객의 신세일 뿐이다.
하늘이 감동해 혈 자리가 내 집터가 됐다고 기뻐할 일도 아니다. 혈은 땅의 기운이 모여 뭉쳐 있는 자리인데 한 치만 벗어나도 기운에서 멀어지는 예민하고 섬세한 곳이다. 이런 곳에 집을 짓겠다고 중장비를 동원해 일정 깊이 이상 땅을 파내려 가면 혈은 파헤쳐지고 기운은 달아난다.
얼마 전 완공된 삼성동 모 그룹 회장댁 일이다. 주택을 설계할 때 용적률이 낮아 지상층을 높이 올릴 수 없었다. 결국 용적률 산정에서 제외되는 지하층을 넓히기로 하고 땅을 깊이 파들어 가는 좋지 않은 방법을 선택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출생이 풍수지리 건축설계를 따른 양택(陽宅)에서 연유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선은 송악산 남쪽 기슭 말머리 형국의 혈을 찾아 임금의 천운과 연계된 집을 짓게 한다. 동양학에서 물(水)은 생수(生數)인 1과 성수(成數)인 6을 의미한다. 이 중 6×6의 서른여섯 칸 집은 긴 수명을 타고날 아이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한다. 터잡이와 집 형태 구성의 간잡이가 훌륭한 아이의 탄생이란 하나의 목표에 맞춰진 것이다.
태어나고 살아가야 할 사람에 맞춰 집을 짓는다는 것은 사람과 집의 조화로움으로 의식과 환경적 균형을 맞춘다는 의미다. 그러니 타인에게 좋은 터와 건물이 나에게도 반드시 좋으라는 법은 없다.
맹자는 ‘공손추(公孫丑)’에서 “하늘의 때는 땅의 이득만 못하고, 땅의 이득은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고 했다. 좋은 땅과 건물이 주는 이로움을 어찌 쓰고 다스려야 할지는 결국 사람의 몫이다. 사람이 올바로 노력할 때 하늘과 땅이 감동해 움직이는 것도 풍수지리의 기본 원리다.
(출처:한국경제/강해연 KNL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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